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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황장애 30대 손발 묶인 채 구치소 수감 중 사망…인권위 조사

중앙일보

입력

부산구치소. 연합뉴스

부산구치소. 연합뉴스

부산구치소 독방에 손발이 묶인 채로 수감된 30대가 숨지자 유족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상조사를 요구하고 나섰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1일 조사에 착수해 90일 이내에 인권침해 여부를 판단할 예정이다.

벌금 500만원 안낸 30대 지난 8일 수감 #기물 파손 우려로 지난 9일 보호실로 이송 #보호실서 손발 묶인 채 8시간 뒤 의식 잃어 #1시간 뒤 사망하자 유족 “관리 허점” 주장

 부산구치소 등에 따르면 벌금 500만원을 내지 않아 노역장 유치명령을 받은 A씨(38)는 지난 8일 오후 11시 부산구치소에 수감됐다. 노역장 유치 사범은 통상 구치소나 교도소에서 청소 등 환경정비 활동을 하며 해당 기간 수감 생활을 한다.

 A씨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검사를 기다리며 독방에 머물렀다. 구치소측은 A씨가 호출 벨을 자주 누르는 등 기물을 파손할 것으로 우려되자 수감 하루 뒤인 9일 오후 10시 폐쇄회로(CC)TV가 있는 보호실로 옮겼다. 교도관은 A씨 손발을 금속보호대 등으로 묶었다. 보호실에서는 필요에 따라 보호장구 사용이 인정된다.

 3년 전부터 심한 공황장애를 앓아 왔던 A씨는 손발이 묶이기 전 상의를 탈의하는 등 극도의 불안 증세를 보이고 갑갑함을 호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A씨는 지난해 초부터 공황장애 약물을 복용하고 있었고 구치소도 이런 사실을 사전에 인지했지만 아무런 조처를 하지 않았다.

 손발이 묶인 지 6시간이 지난 10일 오전 4시부터 A씨의 움직임이 급격하게 줄어들었고, A 씨는 오전 5시 44분 독방에서 쓰러졌다. 쓰러진 지 1시간 15분이 지난 오전 7시 4분 인근 병원 응급실로 옮겨졌지만 30여분 뒤 사망했다.

교도소·구치소 시설 내부. [중앙포토]

교도소·구치소 시설 내부. [중앙포토]

 유족은 수감자 관리에 허점이 있었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A씨 아버지는 “구치소에 여러 차례 요청해 폐쇄회로(CC)TV를 확인한 결과 아들이 오전 5시 44분 쓰러졌고, 오전 6시 16분 구치소 교도관이 상황이 좋지 않자 땀을 닦아주고 손발을 풀어주는 장면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구치소가 이후 별다른 대처를 하지 않다가 6시 44분 완전히 움직임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병원으로 이송했는데 공황장애가 심한 아들에게 손발을 묶은 뒤 약 처방도 없었고 쓰러진 이후에도 초동대처가 미흡해 골든타임을 놓쳤다”고 주장했다.

 부산구치소 측은 "건강진단 등이 완벽히 이뤄지지 않아 공황장애나 불면증 진위를 입증할 수 없어 약을 곧바로 처방하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또 A씨가 최초에 쓰러졌을 때는 지쳐 잠든 것으로 알았다고 유족에게 설명했다.

 유족은 A씨가 숨진 경위를 철저히 조사할 필요가 있다며 국가인권위에 진정했다. 국가인권위원회 부산 인권사무소는 이날 유족 면담을 시작으로 조사에 착수했다. 국가인권위 관계자는 “유족의 진정이 접수됐고, 부산구치소를 상대로 조사할 예정”이라며 “당시 손발을 묶었던 것이 적절했는지, 수감자 관리에 인권 문제는 없었는지 확인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국가인권위는 조사를 마친 다음 이 사건을 소위원회에 올려 의견을 모아 판단할 방침이다.

부산=이은지 기자 lee.eunji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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