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관광, 회원 서비스… 포스트 코로나 시대 여행을 그리다

손민호의 레저터치

여행이 금지된 시대를 막 지나고 있다. 여행은 다시 시작될 것이다. 그러나 이전의 여행과 많이 다를 것이다. [중앙포토]

여행이 금지된 시대 여행기자가 할 일은 마땅치 않았다. 타국에서 해코지당한 동포의 사연을 중계하는 건 열불나는 일이었고, 실의에 빠진 여행업계를 지켜보는 건 가슴 무너지는 일이었다. 정부가 “불필요한 여행” 운운할 때는 서운하기도 했다. 여행으로 먹고사는 사람에게 불필요한 여행은 없기 때문이다.

코로나 사태는 미처 몰랐던 우리네 관광산업의 민낯을 마주 보게끔 하였다. 이를테면 전국 문화관광 축제의 실상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봄꽃 피는 자리마다 축제가 열렸었다. 엄청난 예산도 들어갔었다. 골짜기마다 관광객이 가득 차는 모습을 보고 관광정책의 성과에 으쓱하기도 했었다.

올해는 축제가 열리지 않았다. 꽃은 피었으나 축제는 멈춰 섰다. 그런데도 사람이 몰려왔다. 제발 오지 말라고 길을 막아도 꾸역꾸역 찾아들었고, 끝내 농민은 제 꽃밭을 갈아엎었다. 이 비극적인 장면에 뼈아픈 진실이 숨어있었다. 우리는 여태 축제를 보러 축제에 갔던 게 아니었다. 꽃이 좋아서, 강산이 그리워서 그 먼 길을 찾아갔던 것이다. 그럼 예산은? 그 많은 축제 예산은 여태 어디에 쓰인 것일까? 바이러스는 사회 밑바닥에 깔린 혐오와 차별의 정서도 드러냈지만, 전국 문화관광 축제의 알량한 콘텐트도 까발렸다.

2020년 봄. 꽃은 피었으나 축제는 열리지 않았다. 축제가 없어도 사람은 찾아갔고, 놀란 주민이 관광객의 접근을 막았다.[연합뉴스]

좋거나 싫거나 관광정책은 방향을 틀어야 한다. 방한 외국인 시장에 맞춰졌던 관광정책은 내수시장 경쟁력 강화로 수정되어야 한다. 한국인의 해외여행이 난망한 것처럼 외국인의 한국 여행도 막막할 것이어서다. 당장 두 달 뒤면 너도나도 바캉스 계획을 짤 터이다. 어디로 갈까? 국내 말고는 없다. 할인 이벤트? 글쎄다. 여행은 이제 목숨을 걸어야 하는 모험일 수도 있다. ‘싸면 장땡’이던 시절은 끝났다.

낯선 이들과 어깨를 맞댄 차를 타고, 낯선 이들과 섞여 밥을 먹는 여행은 사라질 것이다. 소수 회원을 위한 전용 공간과 전용 서비스가 관광 시장의 대안으로 떠오를 것이다. 여행은 지금보다 훨씬 비싸지고 개인화할 것이다. 패키지여행사가 한숨만 내쉬던 지난 서너 달, VIP 회원 전용 시설은 제법 바빴다.

테러가 난무하는 시대를 겪고서 전 세계 공항의 보안 검색이 강화됐던 것처럼 바이러스를 겪은 세계는 보안 검색보다 더 집요하고 성가신 위생 검색을 실시할 것이다. 그 비용도 물론 여행자에게 부과될 것이다. 어차피 예전처럼 자주 여행을 못 떠난다면, 횟수는 줄이는 대신 안전한 여행이 선택될 것이다.

더는 생태관광이 구호로 그치지 않을 것이며, 생명 관광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몸에 좋은 여행까지는 아니어도 몸에 나쁘지 않은 여행이면 수용할 것이다. 전국의 걷기여행길은 다시 활기를 띨 것이고, 개발 대신 보전이 더 당면한 현안이 될 것이다. 이참에 제주도는 미뤄놨던 제주국립공원 사업을 다시 꺼내도 좋을 듯하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여행은 이미 답이 나와 있다. 여행을 하려면 목숨을 걸어야 하니 여행으로 먹고살려도 목숨을 걸어야 한다. 다들 절박하신가? 내 눈에는 아직도 자잘한 이득만 좇는 장사치가 더 많이 띈다.
 레저팀장 ploveso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