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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사망률 최고 스웨덴···집단면역 택한 죄, 노인들 비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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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22일 스웨덴 스톡홀름의 한 야외 술집에서 사람들이 모여 술을 마시고 있다. [AP=뉴시스]

지난 달 22일 스웨덴 스톡홀름의 한 야외 술집에서 사람들이 모여 술을 마시고 있다. [AP=뉴시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에 맞서 철저한 봉쇄에 나서는 대신 이른바 '집단 면역' 전략을 택한 스웨덴의 방역 정책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느슨한 사회적 거리두기에 이웃 국가들에 비해 훨씬 높은 사망률을 보이고 있는 것은 물론, 노인들이 주로 머무는 요양시설을 중심으로 사망자가 속출하면서 '고령자 홀대론'도 나오고 있다.

스웨덴은 코로나19 사태 초기부터 강력한 봉쇄정책을 취한 다른 유럽국가들과는 달리 50인 이상의 집회 금지, 가능하면 재택근무 등의 느슨한 통제로 '일상생활과 방역을 함께 하는 정책'을 펴 왔다. 국민들의 자율적인 방역 수칙 준수를 독려하며 중학교 이하의 학교는 휴교하지 않고, 대부분의 쇼핑몰과 레스토랑, 헬스클럽도 문을 열었다. 스웨덴의 이같은 정책은 코로나19에 대한 백신이나 치료제가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구성원의 일정 비율이 전염병에 대한 면역력을 갖게 해 감염을 억제하는 '집단 면역'의 실험으로 해석되며 세계의 관심을 모아 왔다.

WP, "선택의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있다" 

그 결과는 어떻게 나타나고 있을까. 19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18일 기준으로 인구 1000만명인 스웨덴의 코로나19 사망자수는 3698명이다. 이는 인근 국가인 덴마크·노르웨이·핀란드(3개국 합산 인구 1650만명)의 합계 사망자 수인 1081명보다 세 배 넘게 많다. 100만명당 사망자 수도 364.28명으로 덴마크(94.4), 핀란드(53.7), 노르웨이(42.8)보다 훨씬 높다. WP는 "스웨덴은 코로나19 감염자와 사망자 수에 있어 자신들이 취한 정책의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평했다.

지난달 19일 스웨덴 스톡홀름 인근 솔나의 한 병원에서 의료진이 코로나 19 환자를 돌보고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달 19일 스웨덴 스톡홀름 인근 솔나의 한 병원에서 의료진이 코로나 19 환자를 돌보고 있다. [AFP=연합뉴스]

특히 요양시설을 중심으로 집단감염이 발생해 사망자의 대다수가 노인층에 집중됐다. 19일 영국 BBC에 따르면 스웨덴의 코로나19 사망자의 대부분(스웨덴 정부 집계 90%)이 70세 이상이고, 전체 사망자의 48.9%는 요양시설 거주자였다. 지난 3월 말까지 외부인의 요양시설 방문을 막지 않아 감염이 확대됐고, 일부 요양시설 종사자들은 코로나 의심증상이 있는데도 근무를 계속해 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여기에 보건당국은 의료 시스템의 과부하를 우려해 요양시설의 노인 환자를 병원으로 이송시키는 것을 제한해왔다. 또 요양원의 간호인력이 의사의 승인 없이 환자들에게 산소공급 장치를 제공하는 것도 금지해 노인 사망자를 늘렸다는 비판도 나왔다. 스톡홀롬의 한 대형병원 코로나19 병실에서 일하는 간호사 라티파 뢰프벤베리는 BBC에 “(코로나19) 병실에는 나이 든 사람이 별로 없고 (환자) 대부분이 1970~90년대생”이라고 말했다.

"스웨덴 인구 25% 면역력 갖췄을 것" 

노인 보호에 소홀했다는 비판이 일자 스테판 뢰벤 스웨덴 총리는 지난 13일 기자회견에서 "최선의 계획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노인이 대부분인 취약한 이들을 보호하는 데 실패했다"고 인정했다. 관련 예산도 대폭 늘리기로 했다. 하지만 스웨덴 정부는 "방역 정책 전체의 실패는 아니다"라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안데르스 텡넬 스웨덴 공공보건청장이 18일 코로나19 관련 브리핑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안데르스 텡넬 스웨덴 공공보건청장이 18일 코로나19 관련 브리핑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코로나19 방역 책임자인 안데르스 텡넬 공공보건청장은 관련 브리핑에서 여러차례 "우리의 목표는 의료 시스템과 사회 전체가 계속 작동하는 수준에서 감염을 억제하는 것"이라며 "백신은 아직 먼 미래의 이야기고, 그때까지는 일정한 인구가 면역력을 가짐으로써 감염 확대를 막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스웨덴 당국은 코로나19 면역을 가진 인구 비율이 인접국은 1~2%인 반면 스웨덴은 25% 정도에 도달했다고 추정하고 있다. 보통 '집단 면역'을 통한 감염 억제를 위해서는 인구의 60~80% 정도가 면역력을 가져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직 할 수 있는 일이 많다"

스웨덴의 코로나19 전략을 '실패'로 규정짓기엔 시기상조라는 의견도 있다. 룬드 대학의 폴 프랭크 교수(유전학)는 일본 아사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지리적, 사회경제적 특징이 비슷한 북유럽 국가와 비교해 현재 알 수 있는 점은 스웨덴의 전략이 생명보호 측면에서 효과적이지 않다는 것"이라면서도 "다른 나라도 봉쇄를 풀 경우 감염이 확산돼 결국 장기적으로 (스웨덴과) 비슷한 사망률에 이를 수 있다"고 말했다. 올 가을 이후 코로나19의 '2차 확산'이 시작될 경우, 비교적 많은 인구가 면역력을 갖춘 스웨덴이 '승자'가 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그러나 더 많은 희생을 막기 위해 지금이라도 강력한 조처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과학자 22명은 지난달 15일 스웨덴 일간지 '다겐스 뉘헤테르(DN)'에 칼럼을 실어 "접근법을 완전히, 신속하게 바꿔야 한다고"고 정부에 촉구했다. 바이러스 학자인 레나 아인혼은 이 글에서 "노인을 돌보는 사람에게 마스크 등의 보호 장비 착용을 의무화하는 등 아직 할 수 있는 일은 많다"고 지적했다.

지난 13일 기자회견에서 코로나19 대책을 발표하는 스테판 뢰벤 스웨덴 총리. [EPA= 연합뉴스]

지난 13일 기자회견에서 코로나19 대책을 발표하는 스테판 뢰벤 스웨덴 총리. [EPA= 연합뉴스]

웁살라대학 정치학자 헬렌 린드베리도 "보건당국은 과학에 근거한 자신들의 정책이 부패한 정치인들이 이끄는 유럽 다른 나라들의 선택보다 우수하다고 주장하며 국민들의 애국심과 자존심을 이용하고 있다"고 정부를 강하게 비판했다.

스웨덴의 상황은 주변국에도 고민을 안기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19일 "덴마크, 핀란드, 노르웨이 등은 코로나19가 안정세에 접어들며 여행 제한 완화를 논의하기 시작했지만, 자신들과는 상황이 다른 스웨덴에도 같은 조치를 적용할 것인가로 고민에 빠졌다"고 보도했다.

이영희 기자 misqui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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