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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등급’ 정대협이 받은 세제 혜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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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원배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김원배 사회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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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부금을 받아 운영하는 공익법인이 거쳐야 하는 관문 중 하나가 지정기부금 단체가 되는 것이다. 그래야 단체에 기부한 사람이 15%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다. 예컨대 근로자가 100만원을 비지정 단체에 기부하면 아무런 세제 혜택이 없다. 반면 지정기부금단체에 기부하면 연말정산에서 15만원의 세금을 덜 낼 수 있다. 기업의 경우도 기부금을 필요경비로 인정받으니 세금을 절감할 수 있다.

회계 낙제에도 지정기부단체 유지 #정의연은 설립 4개월 뒤 지정받아 #세액공제 단체는 공적 의무 무거워 #심사 강화하고 문제 단체 퇴출해야

물론 해당 단체의 사업 목적에 공감한다면 이런 것을 고려하지 않고 기부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좋은 일 하면서 세금도 절감한다면 이를 마다할 이유는 없다. 이런 이유에서 지정기부금단체가 돼야 기부를 더 받을 수 있고 사업을 안정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

최근 논란이 되는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와 정의기억연대(정의연)는 모두 정부가 정한 지정기부금 단체다. 정의연은 정대협과 2018년 통합했다고 밝히고 있지만 둘은 별도 법인이다. 국세청 공익법인 공시를 보면 정대협이 정의연에, 정의연이 정대협 사업에 각각 돈을 지출한 경우도 있다. 그러면서 올해 초 서울시에 성평등기금을 각자 신청했다. 지난 3월까지 두 단체의 대표는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당선인이었다. 두 곳 모두 회계처리가 부실하고 기부금을 제대로 썼느냐는 의혹을 받고 있다. 더구나 윤 당선인은 개인계좌로 모금한 정황도 드러났다. 한 회계사는 “보통 사업자 같았으면 여러 개 사업장을 운영하며 내부 거래로 돈을 빼돌린다는 의심을 받았을 것이다. 주머니가 여러 개일수록 감추기도 쉽다”고 말했다.

사업 C등급, 회계 F등급. 2013년 현대중공업의 지정기부(10억원)를 받아 위안부 할머니를 위한 안성힐링센터를 만들어 운영하던 정대협이 2015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 받은 평가 내용이다. 시설 활용도가 떨어지고 서류와 영수증이 미비했다는 것이 모금회의 설명이다. 회계의 경우 A, B, C, D, F의 5개 등급 중 제일 낮은 등급을 받았다. 가장 낮은 등급을 받는다는 것은 치욕적인 일이다. 문제는 정대협과 정의연이 이런 일을 겪고도 회계 투명성을 획기적으로 개선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단체 내부에서 자성의 목소리가 없었는지 궁금하다.

서소문 포럼 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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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힐링센터 사업을 평가한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다른 공익법인과 달리 법에 따라 설립된 법정 단체다. 기부를 받아 다른 단체에 나눠주고 감시하는 역할도 한다. 모금회는 정대협이 2년간 지정기부를 받지 못하도록 제한을 뒀다. 기부자 의도와 달리 사업이 집행되지 않은 경우를 잡아낸 것은 평가할 만하다. 모금회는 평가 내용을 정대협과 현대중공업에 알렸다.

하지만 정대협의 감독기관인 외교부나 지정기부금단체를 정하는 기획재정부엔 이를 통보하지 않았다고 한다. 개별 사업으로 단체 전체를 평가하기 어렵고 이런 평가를 외부에 알릴 근거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만일 2015년 C, F 평가가 외교부나 기재부에 통보됐다면 과연 정대협이 2018년 지정기부금 단체로 재지정됐을지 궁금하다. 2016년 9월 설립된 정의연은 그해 말 지정기부금단체가 됐다. 취지가 좋더라도 설립 4개월 만에 기부금 세제 혜택을 주는 단체로 선정한 것은 성급하다.

정대협과 정의연을 포함해 기부금 수령 단체의 자금 집행 감독을 강화하고 지정기부금단체 지정 심사도 엄격하게 해야 한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실시한 개별 사업 평가 결과를 관련 정부 부처에 알려야 한다. 일정 부분은 외부에 공개하는 것이 마땅하다.

이번 사태로 기부에 대한 불신이 커질 수 있다. 좋은 일에 돈을 내도 내 의사에 맞게 집행되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공익법인의 투명성을 높여야 신뢰를 되찾을 수 있다. 정의연과 정대협도 이번 기회에 회계 투명성을 높이고 지배구조를 재점검해야 한다. 지난 11일 기자회견에서 “영수증을 전부 공개할 의향은 없느냐”는 질문이 나오자 정의연 측에선 “너무 가혹하다”고 했다. 하지만 공익법인은 언제라도 영수증을 다 내보일 수 있다는 마음가짐으로 운영해야 한다. 안타깝지만 선의는 말이 아닌 영수증이 증명한다.

공익법인의 사업은 집행하는 사람의 돈이 아니라 기부자들의 낸 돈으로 운영된다. 정부도 일정한 조세 수입을 포기하면서 혜택을 줬다. 그만큼 공적 책임이 무겁다. 공익법인 종사자는 남의 돈이 눈먼 돈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할 의무를 잊어선 안 된다.

김원배 사회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