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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생가를 복원한 진심은 무엇이었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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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위성욱 기자 중앙일보 부산총국장
위성욱 부산총국장

위성욱 부산총국장

지난달 28일 전국 주요 일간지 1면에 한 성명서가 실렸다. 지난 2000년 1조원을 기부해 세상을 놀라게 한 관정이종환교육재단 이종환 이사장이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한 글이었다. ‘기부왕’으로 불리는 이 이사장이 호소문을 내면서 경남 의령군에 있는 그의 생가를 놓고 그가 왜 의령군과 다툼을 벌여왔는지가 다시 관심을 끌었다.

발단은 재단과 경남 의령군이 2011년 8월 이 이사장의 생가를 복원하기로 협약서를 맺으면서다. 재단 측이 사업부지(용덕면 정동리 일대 7030㎡)를 매입하는 대신 의령군은 부지 용도변경과 인허가에 협조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사업부지는 농림지역이었으나 협약 이후 계획관리지역으로 바뀌었다.

협약에는 ‘사업이 완료된 때에는 조성된 시설 및 건축물에 대해 소유권을 무상으로 의령군에 기부채납 및 이전해야 한다’는 조항도 있었다. 하지만 생가가 완공된 후 기부채납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2015년부터 법적 다툼이 시작됐다.

첫 소송은 2015년 3월부터다. 의령군이 재단을 상대로 소유권 이전 등기 청구 소송을 냈고, 2017년 2월 대법원에서 승소가 확정됐다. 그러나 ‘재단은 땅과 건물이 재단 소유가 아니다’며 기부채납을 하지 않았다. 관련 부동산 소유자는 이 이사장의 장남으로 돼 있었다.

2012년 경남 의령군에 복원된 이종환 생가. [사진 의령군]

2012년 경남 의령군에 복원된 이종환 생가. [사진 의령군]

그러자 의령군은 협약에 따라 조성한 관련 시설 부동산 감정가 32억6000여만원을 내놓으라며 2017년 10월에 다시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1심 재판부는 생가 소유권이 장남에게 있어 채권 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봤지만, 2심 재판부는 협약서를 근거로 기부채납 의무가 재단에 있다며 의령군의 손을 들었다. 결국 지난 3월 대법원에서 재단의 상소를 기각하면서 다툼은 일단락되는 듯했다.

하지만 이 이사장이 일간지에 성명서를 내며 협약서 작성 과정에 의혹이 있다고 원천무효를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그에 따르면 약 9년 전 김채용 전 의령군수가 자신에게 ‘의령군이 낳은 4대 인물(곽재우·안희재·이병철·이종환)로 선정됐다’며 생가 복원을 요청했다.

이 과정에 김 전 군수가 ‘기부채납 없이 의령군의 교육문화 관광 명소로 복원할 수 있도록 책임지겠다’는 취지의 약속을 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가 이와 관련해 김 전 군수 등을 상대로 향후 법적 책임을 묻겠다고 밝혀 실체적 진실이 무엇인지는 시간이 지나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생가를 놓고 수년간 이어진 법정 다툼과 이후에도 계속되는 진실공방 속에서 기부왕으로 불리는 이 이사장과 대기업 창업주 생가가 여럿 있는 의령군의 명예가 동시에 실추되고 있어 안타까운 마음이다. 처음 협약을 맺을 당시 양쪽이 진심으로 원했던 바람직한 결과물이 무엇인지를 되돌아본다면 지금은 보이지 않는 접점을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위성욱 부산총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