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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 피아노 7대 싣고 온 대구의 ‘푸른눈 천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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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60년간 대구·경북 지역에서 지역 발전과 소외계층 봉사에 힘써온 영국인 수산나 메리 영거 여사가 ‘올해의 이민자’로 선정돼 20일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사진 이윤숙 대구 가톨릭푸름터 원장]

60년간 대구·경북 지역에서 지역 발전과 소외계층 봉사에 힘써온 영국인 수산나 메리 영거 여사가 ‘올해의 이민자’로 선정돼 20일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사진 이윤숙 대구 가톨릭푸름터 원장]

1959년부터 한국에서 여성과 청소년 자립을 위해 애쓴 영국인이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대구·경북 지역에서 ‘벽안(碧眼)의 천사’로 불리는 수산나 메리 영거(83) 여사다.

올해의 이민자상에 수산나 영거 #“전쟁의 상처 보며 소명 알았다” #60년간 여성·청소년 자립 도와 #영국서 후원금 받아 농장 사업도

법무부는 올해 제13주년 ‘세계인의 날’을 맞아 평생을 한국에 기여한 수산나 여사에게 올해의 이민자상(대통령 표창)을 20일 수여했다. ‘세계인의 날’은 재한 외국인과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지정한 법정기념일이다. 지난 2008년부터 매년 5월 20일에 기념해왔다.

수산나 여사는 1960년 대구 효성여대(현 대구가톨릭대) 영어 교수를 시작으로 대구가톨릭여자기술원장 등을 역임하며 대구·경북지역에서 사회복지시설 건립, 미혼모 지원과 청소년 교육에 힘썼다. 천주교 신자인 수산나 여사는 박해 속에서도 가톨릭 신앙이 살아남은 한국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외삼촌과 사촌오빠 2명이 한국전쟁에 참전한 점도 한국행을 결심하는 계기가 됐다.

1959년 12월 당시 효성여대에 줄 피아노 7대를 화물선에 싣고 5주 항해 뒤에 부산에 도착했다. 그는 법무부를 통해 “직접 두 눈으로 전쟁의 잔해로 남은 가난한 땅을 보며 어렵고 상처받은 사람들을 위해 사는 것이 소명임을 알았다”고 전했다. 수산나 여사의 아버지는 영국 의회 의원과 외무부 차관을 지냈다. 스코틀랜드 출신인 수산나 여사는 영국 옥스포드대에서 현대철학을 전공했다.

수산나 여사는 1964년 경북 경산시 하양읍 주민들을 위해 먹거리와 일자리를 만들려고 무학산 중턱을 개간해 농장을 조성하는 사업에도 참여했다. 영국의 구호단체를 통해 후원금을 받아 농장 조성 자금을 조달했다. 이 농장에는 감자와 옥수수를 심었고, 유럽식 축사를 지어 가축들을 사육해 하양읍 주민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했다. 무학농장 자금은 나중에 무학중·고교(대구가톨릭대학부속) 설립에 보탬이 됐다.

수산나 여사는 1973년 프랑스로 파견돼 봉사하면서도 중간중간 한국을 왕래했다. 아프리카 브룬디에도 농민조합을 조직하는 등 해외 원조 활동을 이어갔다. 2004년 은퇴 뒤에는 한국에서 여생을 마무리하기 위해 대구에 다시 정착했다. 수산나 여사는 소외계층과 청소년 여성 복지에 일생을 바친 공로로 2011년 대구명예시민증을 받았다.

이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우려로 수산나 여사는 기념 행사에 참석하지 못했다. 대신 표창을 받은 이윤숙 대구 가톨릭푸름터 원장은 “수산나 여사가 지난 60년 동안 한국이 발전한 모습에 만족해하고 있다. 이젠 (한국이)더 어려운 나라에 원조를 이어가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법무부는 지난 19년 동안 다문화 가정과 장애인을 대상으로 컴퓨터 무료보급 활동을 해온 사단법인 충남다문화가정협회 박인규 회장과 재한외국인의 인권보호에 기여한 화성시외국인복지센터에게도 이날 올해의 이민자상을 수여했다.

김민상 기자 kim.mins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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