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김태년 “한명숙은 피해자”···비망록 계기 檢개혁 불씨 살리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여권이 코로나19 위기 국면에서 잠잠했던 ‘검찰 개혁’ 불씨 살리기에 나섰다. 한명숙 전 총리에게 불법 정치자금을 제공한 혐의로 처벌됐던 한만호 전 한신건영 대표의 비망록이 최근 공개된 것을 도화선 삼아서다.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20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한만호씨의 옥중 비망록을 보고 많은 국민들이 충격을 받고 있다”며 “모든 정황이 한 전 총리가 검찰 강압수사와 사법농단의 피해자라고 가리킨다”고 주장했다. 김 원내대표는 법무부와 검찰 그리고 법원을 차례로 호명한 뒤 “명예를 걸고 스스로 진실을 밝히는 일에 즉시 착수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 전 총리는 2007년 3~8월 세 차례에 걸쳐 한 전 대표에게서 불법 정치자금 9억여 원을 받은 혐의로 2010년 7월 불구속 기소돼 2015년 8월 20일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로 징역 2년과 추징금 8억8000만원을 확정받았다. 한 전 총리는 2017년 8월 만기 출소했다.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지난 2015년 8월 수감됐던 한명숙 전 총리가 23일 오전 경기도 의정부교도소에서 만기 출소했다. 한 전 총리가 출소 직후 마중 나온 지지자들에게 소감을 말하고 있다. 왼쪽부터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원내대표·문희상 의원, 한 전 총리, 더불어민주당 이해찬·전해철 의원·김현 전 의원. 중앙포토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지난 2015년 8월 수감됐던 한명숙 전 총리가 23일 오전 경기도 의정부교도소에서 만기 출소했다. 한 전 총리가 출소 직후 마중 나온 지지자들에게 소감을 말하고 있다. 왼쪽부터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원내대표·문희상 의원, 한 전 총리, 더불어민주당 이해찬·전해철 의원·김현 전 의원. 중앙포토

‘한만호 비망록’ 뭐길래

한 전 총리 재판에서는 유무죄 판단의 핵심 증거인 한 전 대표의 자백 진술을 믿을 수 있느냐가 최대 쟁점이었다. 한 전 대표가 재판 과정에서 “돈을 줬다”는 진술을 뒤집으면서 진술의 일관성이 깨졌기 때문이다. 2011년 3월 공판부터 한 전 대표는 “검찰이 수사 과정에서 고소돼도 기소 안 되게 도와주고 사업에 전념할 수 있게 도와주고 빨리 내보내주겠다고 했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최근 한 인터넷매체가 공개한 한 전 대표의 비망록에도 당시 그의 법정 진술과 같은 취지의 내용이 담겨 있다.

유죄 확정 판결을 뒤집는 유일한 방법은 재심이지만 한 전 대표의 비망록은 재심의 계기가 될 수 없다. 형사소송법상 확정판결을 받은 사람의 무죄를 인정할 명백한 증거가 새로 발견되면 재심을 청구할 수 있지만 이 비망록은 당시 재판과정에 이미 제출된 증거였기 때문이다. 민주당도 비망록이 확정판결을 번복시킬 무기가 될 수 없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민주당 소속 한 법사위원은 “재심 청구 여부는 한 전 총리가 판단할 문제이고 당과 의견을 나눈 바는 없다”며 “(비망록은) 새로 나온 게 아니어서 재심사유가 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뉴스타파가 입수했다고 보도한 한만호 전 한신건영 대표의 비망록. [뉴스타파 보도 캡처]

뉴스타파가 입수했다고 보도한 한만호 전 한신건영 대표의 비망록. [뉴스타파 보도 캡처]

김종민 “국가권력의 범죄”주장…추미애 “검찰 개혁 반드시” 화답 

이날 오전 열린 국회 법사위에서도 한 전 총리 사건을 끄집어 낸 민주당은 ‘재심’이라는 단어를 피해 검찰과 법원을 압박하는 데 주력했다.

김종민 민주당 의원은 “(한 전 총리 사건은) 국가권력에 의한 불법 내지는 국가권력에 의한 범죄가 될 가능성이 높다”며 “국회에서 국정조사나 탄핵을 할 수 있고 법무부 감찰이나 검찰 또는 공수처 수사 등의 절차를 거쳐 사실관계가 명백하게 규명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검사 출신인 같은 당 송기헌 의원은 “그 수사가 어떻게 해서 시작됐는지 확인하는 게 법무부의 책무”라고 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20일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뉴시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20일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뉴시스]

변호사 출신인 박주민 민주당 의원은 조재연 법원행정처장을 향해 “사법농단 관련 문건에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이 한 전 총리 사건의 신속한 처리를 공식 요청했고 대법원이 이사건을 파기환송하면 상고법원 도입을 위한 여당 설득이 사실상 어려울 것이라고 기재돼 있다”며 “이 비망록이 엄격한 사법적 판단을 받은 것인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래서 법원이 자체 조사를 해보라고 계속 말하는 것”이라며 “이게 사법적 안정성을 해친다고 보면 안 된다”는 주장도 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여당 의원들의 발언을 검찰 개혁의 명분으로 해석했다. 추 장관은 “어제의 검찰과 오늘의 검찰이 다르다는 모습을 보여줘야 할 개혁의 책무가 있다”며 “절차적 정의 속에서 실체적 진실도 정당할 수 있다는 것을 최근 일련의 사건을 통해서 뼈저리게 느끼고 있고 그런 차원에서 검찰 개혁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고 했다. 익명을 원한 한 정치 컨설턴트는 “법무부가 7월 검찰 정기 인사에서 특수부의 힘을 완전히 뺄 것이라는 게 이미 공지의 사실”이라며 “여당이 법무부에 힘을 싣고 총선 공약인 법원 개혁 어젠다를 띄우기 위한 명분 쌓기에 나선 것”이라고 해석했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이날 페이스북에 “법무부 장관까지 나서서 한명숙 전 총리를 비호하고 나섰군요”라며 “당정이 나설 일이 아니라, 한 전 총리 자신이 새로운 증거와 함께 법원에 재심을 신청하면 됩니다. 그리고 국민들 앞에 왜 한만호의 1억짜리 수표가 그와 아무 관계가 없는 동생의 전세대금으로 사용됐는지 해명하면 그만입니다”라고 썼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페이스북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페이스북

임장혁 기자·변호사 im.janghyuk@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