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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집요한 기술 인재 빼가기, 미래 밥그릇이 위험하다"

중앙일보

입력

차이나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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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승진에서 밀리더니, 결국 찬밥 신세로 전락했다. 개발 분야에서 잔뼈가 굵었지만, 마케팅 부서로 배치됐다. 이사 승진에서 물먹은 반도체 관련 중견업체 간부 얘기다. 그에게 솔깃한 제안이 온다.

'연봉 3배 주겠다는데 어떤가? 자녀 국제학교도 보내준다고 하는데.."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시겠는가?

LG디스플레이는 2019 소비자가전전시회에서 65인치 커브드 UHD OLED 4장을 이용해 만든 장미꽃 형태의 조형물을 전시해 눈길을 끌었다. [사진 LG디스플레이]

LG디스플레이는 2019 소비자가전전시회에서 65인치 커브드 UHD OLED 4장을 이용해 만든 장미꽃 형태의 조형물을 전시해 눈길을 끌었다. [사진 LG디스플레이]

"당신 같은 사람들이 결국 우리 자식들 밥그릇을 깨버리겠구만….

2014년 가을, 상하이의 한 반도체 관련 회사에서 일하는 한국인 엔지니어 P씨를 만났다. SK의 하이닉스 인수 과정에서 튕겨 나온 그는 중국 회사에 '스카우트' 됐다. 빵빵한 연봉, 자녀는 국제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그 중국 회사에는 비슷한 커리어의 한국인 직원 4명이 더 있다고도 했다. "이 사람을 통해 한국 반도체 기술이 야금야금 중국으로 흘러 들어가겠구나.."라는 생각을 속으로 했다. 기술 유출이다. '당신, 배신자야~'라는 말이 자꾸 입에 맴돌았다.

그냥 헤어졌다. 누가 그에게 돌을 던질 수 있겠는가. 회사에서 짤렸거나, 승진이 막혔을 때 다른 직장을 찾는 건 당연한 일이다. 지켜야 할 가족이 있고, 삶이 있다. 그 역시 말도 통하지 않은 이국땅에서 직장 생활을 해야 하는 게 편치 않았을 것이다. 어찌 그를 탓할 수 있겠는가.

엔지니어의 중국 행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중국의 한국 IT 인재 스카우트은 더 집요하게 계속되고 있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분야 기술자가 타깃이다.

최근 한 언론에 이런 기사가 나왔다.

"유명 채용 사이트에는 해외 업체가 '대면적 OLED 관련 전문가'를 채용한다는 공고문이 올라왔다. 근무지는 '중국'이고 채용 조건은 '65인치 이상 대형 OLED 패널 분야에서 10년 이상 경험을 쌓은 경력자'다. 급여는 '1억원 이상'으로 제시됐다. 업계에선 중국 패널업체가 국내 헤드헌팅 업체를 통해 디스플레이 기술진 스카우트에 나선 것으로 본다."

연봉 1억원이면 특급 개발자는 아닐 것이다. 그만큼 마구잡이로 데려간다는 뜻이기도 하다.

기사는 이렇게 이어진다.

"중국 업체들은 한국 우수 인력에 많게는 3배 이상의 연봉을 제시하며 영입한다. 검증된 인력을 확보하는 것이 신기술을 습득하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韓 연봉 3배 준다"…대놓고 OLED 지름길 노리는 中. 기사 입력 2020.05.06.)

세계 프리미엄TV 시장 코로나19 뚫고 성장  (서울=연합뉴스) 강민지 기자 = 삼성전자와 LG전자가 글로벌 매출액의 78%를 차지하고 있는 프리미엄 TV 시장이 '폭풍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시장조사업체 디스플레이서플라이체인컨설턴츠(DSCC)는 올 1분기 글로벌 프리미엄 TV 출하량이 작년 동기 대비 42% 증가한 240만대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이날 롯데하이마트 용산아이파크몰점 TV매장. 2020.4.29  mjkang@yna.co.kr(끝)〈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세계 프리미엄TV 시장 코로나19 뚫고 성장 (서울=연합뉴스) 강민지 기자 = 삼성전자와 LG전자가 글로벌 매출액의 78%를 차지하고 있는 프리미엄 TV 시장이 '폭풍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시장조사업체 디스플레이서플라이체인컨설턴츠(DSCC)는 올 1분기 글로벌 프리미엄 TV 출하량이 작년 동기 대비 42% 증가한 240만대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이날 롯데하이마트 용산아이파크몰점 TV매장. 2020.4.29 mjkang@yna.co.kr(끝)〈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디스플레이는 한국과 중국의 기술 경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분야다. 중국이 추격하면 달아나고, 또 따라오면 다시 도망가고. 숨 막히는 레이스였다.

TV나 컴퓨터에 쓰는 브라운관 모니터가 시작이었다. 1990년대 삼성과 LG의 브라운관은 중국 모니터 시장의 70%를 차지한 적도 있었다. 돈 엄청히 벌었다. 그러나 중국이 10여년 만에 브라운관 기술을 따라잡았다.

2000년대 들어 한국은 LCD로 갈아탔다. 또 10년 중국 디스플레이 시장을 마음껏 휘저을 수 있었다. 또다시 중국의 추격이 시작됐고, 10여년 만에 또 한국을 잡았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한국의 디스플레이 기술은 OLED로 옮겨가면서 또다시 황금 시기를 구가하고 있다. 중국이 가만히 있겠는가 또 죽어라 달려든다.

추격은 거칠다. "韓 연봉 3배 준다"라는 머니투데이 기사 제목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렇게 그들은 한국 기술자의 머리를 빼간다. 2002년 한국의 TFT-LCD 회사인 하이디스를 인수해 급성장한 BOE가 주역이다. 그래서 업계는 걱정이 크다.

"결국 OLED도 중국에 빼앗기는 거 아닌가?"

우리는 지금 뭘 먹고 사는가?

기술이다. 한국의 기술이 중국의 생산능력과 결합해 제삼국 시장에 내다 팔았다. 지난 30여 년 그 분업구조가 우리 경제를 지탱한 큰 동력이었다. 아무리 중국을 싫어하고, 바이러스 같은 존재라고 욕해도 그 사실이 변하는 건 아니다. 그런 국제분업 구조에서 잘 적응할 수 있었던 건 중국보다 한 수 위의 기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별로 남은 게 없다. 가전, 철강, 조선, 화학, 심지어 자동차까지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 이미 따라잡았거나 경쟁 중이다. 절대우위를 지키고 있는 기술은 정말이지 몇 개 안 남았다. 반도체, 디스플레이 정도가 아닐까? 그 영역마저 거친 추격에 위협받고 있다.

코로나 19 사태를 지나면서 한국 디스플레이 업계는 다시 흔들리고 있다. 또다시 구조조정 얘기가 나온다. 그 과정에서 튕겨 나온 엔지니어들에게 '한국 연봉의 3배'는 뿌리치기 힘든 유혹이다. 그들이 다시 중국으로 흘러 들어간다면..

미중 기술 전쟁으로 중국의 반도체 추격은 더 거칠어질 것이다. 한국 반도체 인재에 대한 그들의 '사냥'은 더 광범위하게 진행될 터다. 은밀하고, 집요하게..

기술 인재를 어떻게 지킬 것인가? 이는 우리 아이들 밥그릇과 관련된 문제다. 반도체, 디스플레이에서도 먹을 게 없다면 우리 후대들은 '구걸 통' 들고 대륙을 헤매야 할 수도 있다.

아이들을 구하라(救救孩子) !

차이나랩 한우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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