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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최상연 논설위원이 간다

“내년 3월까지 임기 늘려 모시려 하지만 반대 많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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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최상연
최상연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기로에 선 김종인 비대위, 과연 뜰 수 있을까

지난달 28일 ‘김종인 비대위’를 결의하기 위한 미래통합당 상임 전국위원회가 정족수 미달로 무산됐다. 곳곳에 빈자리가 많다. 하지만 통합당은 곧바로 전국위를 강행해 4개월 임시직 ‘김종인 비대위 체제’를 의결했다. [뉴시스]

지난달 28일 ‘김종인 비대위’를 결의하기 위한 미래통합당 상임 전국위원회가 정족수 미달로 무산됐다. 곳곳에 빈자리가 많다. 하지만 통합당은 곧바로 전국위를 강행해 4개월 임시직 ‘김종인 비대위 체제’를 의결했다. [뉴시스]

4·15 총선에서 패배한 미래통합당 오세훈 전 서울시장에게 근황을 물었더니 “바쁘다”는 다소 의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원숭이는 나무에서 떨어져도 원숭이지만 정치인은 선거에서 떨어지면 사람도 아니라는 말까지 있다. 왜 바쁠까? 되물었더니 ‘선거 뒷수습’이라고 했는데 그 중엔 비슷한 처지의 낙선자 모임도 있었다고 한다. 주로 수도권에 출마했다가 고배를 마신 같은 당 30~40대 젊은 후보들과의 진로 모색이다.

“전국위의 비대위 결정 따르려 하고 #김종인 아니면 대안 마땅치 않은데 #재보선 공천권 의심과 논란 보태져 #내일 연찬회서 찬반 대격돌 불가피”

서울·경기·인천의 121개 의석 중 통합당은 이번에 16석을 얻었다. 서울 강남을 제외하면 사실상 전패하다시피 한 셈이다. 3040 낙선자들은 ‘수도권 시각과 정서에 맞춰 당을 확 바꾸는 것이야말로 올바른 개혁 방향’이라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영남과 서울 강남 등 텃밭에서 상대적으로 쉽게 당선된 당선자들이 당의 활로를 찾는 건 연목구어란 주장이다. 당의 재선 그룹과 함께 이들이 대체로 ‘김종인 비대위’에 긍정적이다.

어차피 당선자 중심이 될 수밖에 없는 당 운영을 놓고 낙선자들이 목소리를 내고, 앞으로도 내겠다는 건 그만큼 억울한 게 많다는 뜻이다. 밉상이 된 당의 모습이 후보 경쟁력을 깎아내려 질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 거다. 이 기회에 저성장 양극화, 저출산 노령화, 기후 변화와 같은 미래 담론과 함께 노동, 복지, 정당 개혁 등 핵심 이슈에 대한 당의 입장 정리와 정책 전환도 요구하고 있다. 오 전 시장에게 물었다.

주호영. [뉴시스]

주호영. [뉴시스]

김종인 비대위는 결국 출범하게 될까.
“물론 총선 당선자들이 선택할 문제다. 하지만 조금씩 멀어지는 분위기라고 본다. 연세가 많고, 당이 그에게만 매달리는 모습이 썩 아름답지 않다는 반론이 꽤 번져가기 시작했다. 이번 선거에선 아깝게 떨어진 인물이 많다. 그런 분들의 생각을 모아 스스로 혁신하자는 자강론도 늘고 있다.”
반대론 중엔 당의 지도자급 인사들이 ‘보수 재건 원탁회의’를 가동하자는 주장이 있고, 오 전 시장을 얼굴로 추천하는 사람도 있다. 어떤가.
“그런 주장이 구체화된 건 없다. 당연히 할 말이 없다.”
김종인 비대위가 어려워지면 지도체제 문제는 어떻게 수습될까.
“의견이 모이지 않으면 결국 당헌·당규대로 8월 전당대회로 새 지도부를 꾸릴 수밖에 없다. 전대 준비용, 관리형 비대위를 꾸리면 된다.”
전당대회가 열리면 당권에 도전하나.
“낙선자는 낙선자의 처신이 있다. 유구무언이다. 그때 절실하게 나를 찾는 요구가 있다면 모르겠는데 그걸 지금 말할 수도 없지 않나.”
정치는 계속하나.
“물론이다.”

“늦어도 연내에 비대위 끝내자는 요구 많아”

총선을 이끌었던 김종인 전 총괄선대위원장은 엄밀하게 따지면 패장이다. 하지만 책임론에선 벗어나 있다. 공천에 개입하지 않았고 선거 전 막판 2주간 선대위원장을 맡았기 때문에 솜씨를 뽐내기엔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오히려 중도 포용을 위한 당 체질 개선에 과감한 드라이브를 걸 수 있다는 기대감을 받는다. 황교안 전 대표가 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물러났고, 친박계가 와해된 상황이어서 더욱 그렇다.

하지만 난제가 한둘이 아니다. 우선 출범 자체가 힘겹다. 영남권 중심의 조직적 반발이 거세다. 홍준표·유승민 등 잠재적 대권·당권 주자들이 공개적으로 ‘김종인 비토’를 주도한다. 김 전 위원장이 ‘다음 대선 후보로 40대 경제통을 내세우겠다’고 공언한 뒤 불길이 커지더니 ‘왜 꼭 김종인 비대위여야 하느냐’는 의문이 늘었다. 압도적 다수가 찬성하지 않는다면 설사 출범한다 해도 조기 전대 요구는 지속적으로 분출될 가능성이 높다.

공천권 등 휘두를 칼이 마땅치 않은 비대위가 될 수밖에 없는 게 큰 이유다. 2012년 새누리당 박근혜 비대위, 2016년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대위 성공 배경엔 비대위원장이 총선 공천권을 휘둘렀다는 공통점이 있다. ‘인적 쇄신’으로 당 색채를 바꾼 게 총선 승리로 이어졌다. 지금은 21대 총선이 마무리됐다. ‘물갈이’를 통한 이미지 변화가 불가능하다. 외부인이 새로운 당선자들을 젖히고 당을 확 바꾼다는 건 그야말로 어려운 일이다.

이런 상황이면 오히려 비대위원장의 존재 자체만으로 국민들이 변화를 체감할 수 있는 정도의 파격적 인선이 필요하다는 게 반대론의 근거다. 물갈이 공천을 통한 변화의 길이 막힌 상황에서 젊고 개혁적인 인물을 비대위원장에 앉혀야 당의 이미지 쇄신에 효과적이란 주장이다. 문제는 그런 사람이 과연 누구냐는 점이다. 당에선 2016년 20대 총선 패배 후 ‘김용태 비대위 무산 사태’가 결국 재연되지 않겠느냐는 우려도 제법 많다.

당시 새누리당은 비박(非朴) 김용태 의원을 얼굴로 내세우려다 친박계 반발로 무산됐다. 그때도 상임전국위원회와 전국위원회 정족수가 미달했다. 김용태 의원에게 ‘김종인 비대위 전망’을 물었더니 “당에서 만장일치로 힘을 실어주기 어려운, 어정쩡한 비대위가 될 텐데 그러면 김종인 전 위원장이 위원장을 받기도 어려울 것”이라고 출범에 의문 부호를 찍었다.

총선 패배 후 한 달이 넘도록 자중지란 중인 통합당은 21~22일 당선자 연찬회에서 이 문제를 매듭지을 계획이다. 주호영 원내대표의 의중이 중요하다. 그에게 물었다.

오세훈

오세훈

김종인 비대위로 가나. 당내 분위기는 어떤가.
“찬반양론이 팽팽해 조정 중인데 흐름이 잡히질 않고 있다. 비대위 임기 문제가 어렵다. 김 전 위원장은 부산시장이 포함된 내년 4월 재보선 때까지 임기를 보장받지 못하면 맡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개혁 동력을 만들기 어렵다는 이유를 드는데, 당에선 늦어도 연내에 비대위 체제를 끝내고, 전당대회서 뽑힌 새 지도부가 재보선 공천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다.”
김종인 비대위가 무산되면 대안은 뭔가.
“전당대회를 열어야 하는데 8월 전대는 물리적으로 어렵다. 12월 정기국회 속에 전당대회를 치르는 것도 모양이 사납다. 결국 내년 3월 전대가 현실적인데 그때까지 비대위를 끌어갈 사람이 마땅치 않다. ‘주호영 비대위’를 말하지만 원내대표 일이 많아 겸무는 버겁다. 비대위 기간을 내년 봄까지 늘려 김 전 위원장을 모시려 하고 그럴 수 있다면 현재로선 그 방법이 최선이다.”
왜 김종인 비대위여야 하는가. 강점이 뭔가.
“대안이 없고, 모시자는 의견은 많다. 김 전 위원장이 당에서 ‘왜 김종인 비대위여야 하는지’를 설명해 주면 좋겠는데, 자리를 마련하려 해도 응하지 않고 ‘내년 재보선 승리 기반’을 말하고 있다.”
홍준표 전 대표 등 무소속 4인의 복당은 어떻게 되나.
“최고위 결의 사항이어서 전적으로 새 지도부가 할 일이다.”

‘김종인 비대위’ 출범하면 10년간 비대위만 8번

미래통합당은 한나라당 시절인 2010년 김무성 비대위를 시작으로 2018년 김병준 비대위까지 7번의 비대위 체제를 거쳤다. 김종인 비대위가 출범하면 8번째다. 2012년 19대 총선을 앞두고 출범한 ‘박근혜 비대위’를 제외하면 대체로 성공보다 실패가 많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희옥 전 헌법재판소 재판관이 꾸렸던 2016년 6월 비대위는 두 달여 활동 만에 친박 핵심인 이정현 전 대표에게 당권을 넘겨줘 오히려 주류 진영에 힘을 실어줬다. 그해 말 인명진 비대위는 당명만 자유한국당으로 바꿨을 뿐 친박계의 강력한 저항을 뚫지 못해 혁신 작업이 미완에 그쳤다.

통합당 비대위 역사

통합당 비대위 역사

박근혜 비대위는 그때 이미 유력 대권 주자였던 박근혜 당시 위원장의 정치적 입지에 더해 공천권을 갖고 사실상 전권을 휘둘렀기 때문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강한 리더십으로 현역 의원 25%를 공천 탈락시켰다. 김종인 전 위원장이 ‘제한 없는 임기’와 ‘전권’을 요구하는 것도 그때의 경험과 무관치 않다.

김 전 위원장은 박근혜 비대위선 비대위원으로, 곧바로 이어진 대선에선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장으로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에 앞장섰다. 경제민주화를 내세워 보수당 변화를 이끌었다. 2016년엔 더불어민주당에서 비대위 대표를 맡았다. 당시 이해찬, 정청래 등 친노 핵심 인사들을 과감하게 정리하고 안보와 경제정책 우클릭으로 중도층 외연 확장에 성공해 20대 총선에서 민주당을 원내 1당으로 만들었다.

최상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