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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코로나19 사태, 원격의료 도입 계기 삼아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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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연수 서울대병원장

김연수 서울대병원장

아프면 힘들더라도 병원에 가서 의사를 만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과연 꼭 그래야만 할까. 코로나19 환자가 증가하는 동안, 환자는 병원에 갔다가 병을 얻을까 두려웠다. 병원들도 환자들이 무증상으로 감염증을 확산시킬까 우려했다.

비대면 진료 안정성 확보하고 #헬스케어 육성, 성장동력 삼아야

코로나19 상황에서 전문적인 의료는 제공하되 병원 방문을 최소화하기 위해 정부 허가를 받아 ‘전화 진료’를 시작했다. 환자들은 전화로 문진을 받고, 기존에 검사한 결과 설명을 들었다. 약이 필요한 환자에게는 거주지 인근 약국으로 처방전을 발행했다. 지금도 전국에서 개인 의원을 포함해 의료기관 절반 이상이 전화 진료를 하고 있다.

검사와 시술이 필요 없는 경증과 만성질환 환자는 굳이 불편함을 감수하고 병원을 방문하지 않아도 되니 혹시 발생할 감염 위험이 감소한다. 직접 진료가 원칙이고 안전하겠지만, 일부 환자 또는 재난 시에는 비대면 진료가 유용할 수 있다.

수천 명의 코로나19 경증과 무증상 환자가 입소했던 생활치료센터에서도 화상 전화와 앱으로 상담과 진료를 했다. 서울대병원이 운영했던 경북 문경의 생활치료센터에서는 화상 진료 외에도 직접 촬영한 흉부 엑스레이가 실시간으로 서울로 전송돼 진료의 완성도를 더해줄 수 있었다.

대한민국 의료 수준은 세계 최고임이 입증됐다. 정보통신기술(ICT)도 알려진 대로 최상이다. 이를 합쳐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분야가 원격(遠隔)의료다. 앞서 말한 전화 진료도 그 한 부분이다.

더 나가면 환자가 지역에서 찍은 영상과 채혈, 가정용 의료기기 측정 결과를 전송해 먼 곳에 있는 의사와 상담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원격의료는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한국만 명시적으로 규제에 묶여있다.

미국은 1993년부터 미국원격의료협회를 설립해 전체 병원의 절반 이상이 참여하고 있다. 2016년부터 원격의료를 시작한 중국은 지난해 한국이 세계 최초 상용화라고 자랑했던 5G 통신을 이용해 원격수술까지 성공했다. 동남아 역시 원격의료가 활성화돼 있다. 애플·아마존·MS·구글 등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들은 원격진료를 비롯해 처방 약 배달, 웨어러블(Wearable) 건강관리 서비스 등 헬스케어 사업을 추진하면서 신성장 동력을 확대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 원격의료는 비대면 진료로 인한 정확한 환자 상태 파악의 어려움, 환자 정보 유출과 의료의 산업화, 대형병원 환자 쏠림 현상 우려로 시행을 못 하고 있다.

문화계 한류 이후 최근 K-바이오가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다. 어렵게 이룬 최고의 의료 수준과 ICT가 다시 한 번 세계를 놀라게 할 좋은 기회다. 그런데도 지금은 규제 때문에 글로벌 흐름을 따라가기도 벅차 보여 안타깝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3주년 특별연설에서 비대면 의료서비스를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위한 중점 육성사업으로 꼽았다. 행정부와 입법부에서 논의가 활성화되고 있어 반갑다. 더 안전하고 안정적으로 ICT 의료시스템을 정비하고 보험수가와 진료과목 심의에 속도를 내야 한다. 상급병원과 1, 2차 의료기관은 진료협력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 상급병원이 원격의료를 위한 플랫폼을 만들어 전국 의료기관이 함께 사용하는 구조가 이상적이다.

중환자라도 대형병원에서 급성기 치료를 끝내고 가까운 1, 2차 의료기관에서 회복기 치료를 할 수 있다. 원격의료 플랫폼을 이용해 1, 2차 의료기관이 상급병원의 중증·희귀 난치질환 노하우를 공유해 같이 살피고 치료할 수 있다. 효율적인 의료자원 배분은 결국 환자와 국민의 이익으로 돌아간다.

응당 모든 시스템과 제도는 국민 건강과 의료 접근성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상황에서 우리는 지금 어떤 것이 우선순위인지 빤히 지켜보고 있지 않은가.

김연수 서울대병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