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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정숙·윤미향이 던진 다른 숙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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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임장혁 기자 중앙일보 콘텐트제작에디터
임장혁 정치팀 차장·변호사

임장혁 정치팀 차장·변호사

“그렇게 털면 300명이 다 걸린다.”

‘윤미향 사수’ 일선에 섰던 한 더불어민주당 인사가 지난 18일 사석에서 한 말이다. 매일 새로운 의혹 제기와 앞뒤가 안 맞는 본인 해명이 계속되고 있지만 민주당은 앞선 양정숙 사태 때처럼 “검증이 부실했다”(윤호중 사무총장)고 실토하기는 아직 싫은 모양이다. “정의기억연대 회계나 위안부 쉼터와 관련해 의혹만 있을 뿐 사실로 확인된 게 없지 않느냐”는 게 19일 현재 이해찬 대표 주변의 반응이다.

민주당과 윤 당선인의 버티기가 길어지면서 언론의 때리기도 ‘윤미향의 모든 것’을 겨냥한 듯 거칠어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이 소모전 속에서 위협받는 건 여당의 도덕성이나 언론의 균형감각만이 아니다. 지난 4·15 총선에서 풀어내지 못한 화두(話頭)의 퇴색이 어쩌면 더 큰 걱정거리다. ‘좀 더 온전한 선거제도는 무엇이냐’는 화두.

4·15 총선에서 미래통합당은 지역구 유효 투표 중 41.45%를 얻어 득표율에서 민주당보다 8.46%포인트 뒤졌지만 의석수(84석)에선 민주당(163석)의 절반을 간신히 넘는 데 그쳤다. 선거제 개혁을 둘러싼 2년여의 갑론을박 끝에 치른 총선이었지만 오히려 결과는 득표수와 의석수의 불비례라는 고질병의 극대화였다.

노트북을 열며 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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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총선은 사표를 줄이고 선거제도의 비례성을 강화하기 위한 지난한 여정을 처음부터 다시 하라는 당위를 남겼지만 여당 비례대표 당선인들에게서 이어진 뒤탈이 그 여정의 첫걸음을 뗄 용기조차 앗아갈 판이다. 버티는 민주당에선 “우리당 당선인만 문제냐”는 볼멘소리를 쉽게 들을 수 있다. 맞는 말이다. 우리는 야당이 촉발한 꼼수 경쟁 속에서 여야의 비례대표 후보 영입 및 공천이 얼마나 날림으로 진행됐는지 기억하고 있다. 고백컨데 그 모든 사람들을 일일이 검증할 시간과 역량을 가진 언론사는 없다.

그러나 후보자들의 도덕성을 검증하는 것은 본디 누구의 책임인가. 민주당이 제명한 양 당선인 관련 의혹도 친동생의 진술로 불거졌고, 윤 당선인 관련 의혹도 이용수 할머니의 문제 제기로 점화됐다. 두 당선인과 수십 년을 함께 해 온 이들의 양심에 과부하를 준 것은 누구인가.

공천은 한 명의 시민을 공적 권한과 책임을 가진 대표자로 끌어올리는 정당의 본질적 기능이다. 특히 상위순번 공천이 곧 당선을 의미하는 비례대표 선출과정의 책임은 100% 정당의 몫이다. 연일 검증 부실이 “시간이 촉박해서”라거나 “극일 컨셉에 맞추다 보니”라는 등으로 합리화될 수 있다는 의식구조를 접하면서 ‘비례성 강화라는 민주적 지향은 백일몽’이라는 깨달음에 다다르고 있다.

임장혁 정치팀 차장·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