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Focus 인사이드]개구멍 판 미군, 상관 폭행 한국군 …코로나에 무너진 군대

중앙일보

입력

경기도 평택시 캠프 험프리스에서 주한미군이 마스크와 장갑을 착용하고 근무하고 있다.  주한미군사령부는 장병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노출될 가능성이 커지자 지난 3월 공중보건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사진 연합뉴스]

경기도 평택시 캠프 험프리스에서 주한미군이 마스크와 장갑을 착용하고 근무하고 있다. 주한미군사령부는 장병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노출될 가능성이 커지자 지난 3월 공중보건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사진 연합뉴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장기화하면서 대학가에 온라인 강의가 한창인 가운데 미국에서 50곳이 넘는 대학의 학부생들이 등록금을 환불해 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온라인 강의와 현장 강의가 제공하는 경험의 가치가 본질에서 다르기 때문에 원격강의만으로 동일한 등록금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논리에서다. 대학 캠퍼스에서 이루어지는 교수와 학생들과의 인간관계, 각종 대학시설 이용 혜택이 사라지면서 대학의 본질을 누리고 있지 못하다는 불만이다. 코로나19로 인한 생활방식과 존재의 본질에 대한 물음과 논쟁이 대학에도 예외 없이 적용되는 중이다.

코로나에 군 휴가 취소·연기 #부대에 번진 극심한 스트레스 #각종 사건·사고 증가 나타나

바이러스는 예외 없고 무차별적이기에 이 본질에 대한 질문에는 성역이 없다. 군대도 마찬가지이다. 어느 나라든지 군은 특수한 조직으로 대접받는 것이 상식이고, 국가방위를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는 헌신으로 이 대접에 보답하여 군대가 가진 특수성의 본질을 완성한다. 하지만 군대도 감염병 앞에는 도리가 없다. 병역의 의무를 이행하느라 고생한다며 바이러스가 장병들을 피해갈 리가 없다.

지난 11일 오전 대구 동구 신천동 동대구복합환승센터에서 육군 제50사단 장병들이 휴가를 떠나고 있다.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통제됐던 군 장병의 휴가가 정상 시행된 가운데 그동안 대구·경북 방역작전 등을 수행하던 50사단 장병들은 79일 만에 휴가를 받게 됐다. [사진 뉴스1]

지난 11일 오전 대구 동구 신천동 동대구복합환승센터에서 육군 제50사단 장병들이 휴가를 떠나고 있다.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통제됐던 군 장병의 휴가가 정상 시행된 가운데 그동안 대구·경북 방역작전 등을 수행하던 50사단 장병들은 79일 만에 휴가를 받게 됐다. [사진 뉴스1]

우리 군도 지난 2월 22일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외출·외박·휴가와 면회를 전면 통제하고 장교와 부사관들도 출퇴근 외에는 집 밖 출입을 금지했다. 우리 군은 철저한 차단과 통제로 코로나19를 성공적으로 막았다. 하지만 감금에 가까운 병영생활에서 오는 불만과 스트레스는 막지 못했다.

4월 말부터 제한이 단계적으로 풀리기는 했지만 ‘열심히 군 생활해서 쌓아둔 포상휴가를 다 날리게 생겼다’, ‘일찍 전역하려고 휴가를 아껴 두었는데 다 소용없게 됐다’, ‘외부 시험일정에 맞추어 휴가를 쓰려고 했는데 망했다’는 군 장병들의 불만을 전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가족과 떨어져 생활하는 일부 군 간부들 또한 오랜 기간 가족들을 만나지 못하거나 외부출입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린다고 전해진다.

일각에서는 군 안팎으로 쌓인 장기간 휴가와 외출통제에 대한 불만과 스트레스가 병영 내부에서 군기 사고로 터져 나오고 있다고 진단한다. 얼마 전 모 부대 병사가 중대장에게 야전삽을 휘두른 사건이나 군 간부들의 잇따른 만취 사건, 부대 내 성추행 사건들이 코로나 장기 휴가·외출통제로 인한 스트레스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 군뿐만 아니라 주한미군에서도 외출 금지조치를 어기고 ‘개구멍’을 통해 몰래 밖에 나가 술을 마신 병사들이 적발되어 징계를 받은 사례가 알려지기도 했다.

미 8군사령부가 지난달 22일 페이스북을 통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관련 지침 등을 어긴 제19원정지원사령부 94군사경찰대대 병사 3명을 징계했다"고 밝혔다.  주한미군 군사경찰 소속 병사들은 승인 없이 기지 밖 술집에 가고, 기지 울타리 구멍을 통해 부대에 복귀한 것으로 드러났다.  사진은 주한미군 지침 위반 처벌 내용. [미8군 페이스북 캡처]

미 8군사령부가 지난달 22일 페이스북을 통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관련 지침 등을 어긴 제19원정지원사령부 94군사경찰대대 병사 3명을 징계했다"고 밝혔다. 주한미군 군사경찰 소속 병사들은 승인 없이 기지 밖 술집에 가고, 기지 울타리 구멍을 통해 부대에 복귀한 것으로 드러났다. 사진은 주한미군 지침 위반 처벌 내용. [미8군 페이스북 캡처]

군인들의 일탈 행위가 스트레스에서 때문인지는 단정할 수는 없다. 스트레스가 있다고 하더라도 일탈 행위가 정당화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군의 존재 이유를 벗어난 기강해이와 일탈 행위는 그 어떤 말로도 변명의 여지가 없다. 더군다나 근무 중 임무 수행 관련 기강해이는 더더욱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최근 최전방 감시초소(GP) K6 기관총 공이가 석 달이 넘도록 정비 점검을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3일 북한군의 총격에 K6 원격발사 체계로 대응 사격을 시도했지만, 공이가 파손돼 불발되었다. 그 결과 북한군 총격 이후 32분이 지나서야 K6가 아닌 K3 기관총으로 대응 사격을 했다. GP의 주요 화기는 매달 정기점검을 해야 하지만 코로나 사태 등으로 총기점검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유사시 국가방위와 군 장병의 목숨이 직결된 최전방 현장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런 식이라면 북한군도 코로나19 스트레스로 인해 우발적으로 우리측 GP에 총격을 가하는 일탈 행위를 했다고 이해해줘야 할 판이다.

코로나가 전쟁도 막아준다는 확실한 보장이 있다면 모르겠으나 이건 아니다. 코로나 사태가 심각하기는 하지만 군의 본질을 망각한 기강해이는 국민 사이에서 군의 특수성과 존재 이유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 그나마 사실을 은폐하지 않고 잘못을 바로잡으려는 군의 노력은 가상하다. 그 노력과 반성이 이번에는 헛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정대진 아주대 통일연구소 교수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