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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복사기' 김학도 "남다른 관찰력, 포커 선수로 장점 됐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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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MBC 개그맨으로 데뷔해 성대모사 1인자로 사랑 받다가 최근 프로포커 선수로서 종횡무진 활약 중인 김학도. [사진 이광기]

1993년 MBC 개그맨으로 데뷔해 성대모사 1인자로 사랑 받다가 최근 프로포커 선수로서 종횡무진 활약 중인 김학도. [사진 이광기]

“성대모사에 주력했던 개그맨 생활이 인생 1막이었다면 포커 선수로서 프로대회 활약은 2막이죠. 묘하게 서로 연결됩니다. 성대모사가 그 사람의 패턴을 읽어야 가능한 것처럼, 포커도 상대 성향을 읽고 심리를 파악하는 눈썰미가 중요하거든요.”

프로포커 게이머로 변신, 세계무대서 활약 #"포커=도박은 편견, 두뇌 훈련 생활스포츠" # 성대모사 관찰하듯 상대 심리 파악이 강점 # "자제력도 프로의 조건, 중독은 경계해야"

또박또박 차분한 말투에서 이젠 전문 포커선수로 안착한 자부심이 묻어났다. 세계 64만여 선수 이름이 올라 있는 ‘글로벌 포커 인덱스’(GPI)에서 국내 순위 20위, 세계 순위 3200위 안팎을 넘나드는 김학도 얘기다. 프로 포커대회 성적을 바탕으로 매주 집계되는 GPI 사이트엔 그의 첫 우승 순간도 기록돼 있다. 2018년 10월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대회로 “마침내 당당하게 나를 입증할 트로피를 거머쥔 순간이었다”고 돌아봤다. 첫 우승 이후 지금까지 받은 상금 액수는 8000만원이 넘는다.

포커 입문 8년 만에 아시아대회 첫 우승 

“국내 포커 인구가 10만을 헤아리지만 흔히들 ‘포커=도박’이라고 여기잖아요. 내기 골프가 있다고 ‘골프=도박’이 아니듯, 포커 역시 카드로 즐기는 두뇌스포츠랍니다. 미국에선 ESPN 중계가 이뤄질 정도인데 한국에선 색안경을 쓰고 보는 분들이 많아, 정식 대회 우승으로 그런 인식을 바꿔놓고 싶었죠.”

1993년 개그맨으로 데뷔해 성대모사 1인자로 사랑 받다가 최근 프로포커 선수로서 종횡무진 활약 중인 김학도. [사진 이광기]

1993년 개그맨으로 데뷔해 성대모사 1인자로 사랑 받다가 최근 프로포커 선수로서 종횡무진 활약 중인 김학도. [사진 이광기]

많은 이들은 그를 재간둥이 개그맨‧MC로만 알고 있지만 포커에 입문한지 이미 10년 됐다. 2010년 마카오 베네시안 리조트에 행사차 갔다가 할리우드 배우 맷 데이먼 등이 참가한 프로 대회를 처음으로 접했다. “52장의 카드만 다룰 줄 알면, 1달러 참가비로 수십억대 우승 상금도 가능한” 승부의 세계에 관심이 갔다.

“기본적으로 분석, 데이터가 중요한 종목인데 저의 개그 성향과도 잘 맞지요. 2001년 중앙대 신문방송대학원 졸업 논문 주제가 ‘TV 코미디 프로그램의 제작환경과 개선방향에 관한 연구’였는데, 이때도 슬랩스틱 등 몸짓 개그와 성대모사 등 분석 개그의 차이를 담았어요. 개그맨 생활하면서 성대모사를 한 100여명 중 대표적인 19명을 추려서 책도 낸 적 있고요.”

앙드레 김 성대모사로 광고 타기도 

2004년 나온 책 『유쾌한 성대모사』엔 가수(조용필‧전인권‧김범룡)와 배우(안성기‧송강호‧오지명‧박영규)는 물론  역대 대통령(김영삼‧김대중‧노무현)과 동료 코미디언(이주일‧김국진)까지 ‘인간복사기’처럼 따라했던 그의 장기가 녹아 있다. 한국 대표 디자이너로 꼽혔던 고 앙드레 김(1935~2010)의 이국적인 억양도 곧잘 흉내냈다. 덕분에 광고업계에서 부수입도 종종 올렸다고 한다.

“광고제작사 측이 스타 캐스팅 전에 저를 통해 사전 테스트를 해보는 거죠. ‘이런 느낌이 나오겠구나’ 하고. 아예 제 목소리가 나간 적도 있어요. SKT 안드로이드폰 광고에서 앙드레 김 선생님의 캐릭터(일명 ‘앙드레보이’)가 ‘오오~ 스마티(Smart-T)’ 하는 장면인데요, 여태까지 아무도 눈치 못챘죠. 처음 밝히는 겁니다, 하하.”

최근 중앙일보 유튜브 '이광기의 생활보물 찾기'에 나들이한 김학도가 자신의 인생 1막을 상징한다며 소개한 물건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책 '김학도의 유쾌한 성대모사', 유명인들을 모창한 28곡을 수록한 음반, 가수 김범룡이 제작에 힘써준 자신의 독집 앨범. [중앙포토]

최근 중앙일보 유튜브 '이광기의 생활보물 찾기'에 나들이한 김학도가 자신의 인생 1막을 상징한다며 소개한 물건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책 '김학도의 유쾌한 성대모사', 유명인들을 모창한 28곡을 수록한 음반, 가수 김범룡이 제작에 힘써준 자신의 독집 앨범. [중앙포토]

15년간 라디오 DJ를 할 때도 성대모사 콩트가 주특기였다. 2006년엔 ‘김학도 모창 첫 번째 이야기’라는 음반도 냈다. 나훈아‧신승훈 등 가수들 외에 이덕화‧전유성 등의 목소리로 모창한 28곡이 담겼다. 책과 음반 모두 연예계 커리어의 돌파구로 시도했다. 1993년 MBC 개그콘테스트 데뷔 이래 큰 굴곡 없이 달려왔지만 “건전지 수명 닳듯이 한계가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란다. “그러다 만난 게 포커였죠. 유학이나 해외 거주 경험이 있는 분들은 이게 생활스포츠란 걸 아는데, 한국에선 선입견이 너무 강했어요. 그래서 틈새시장이 되겠다 싶었어요.”

처음엔 국내외 교본을 독파하며 원리를 익혔고 나중엔 프로 선수를 소개받아 한달간 레슨까지 받았다고. “골프 훈련이랑 비슷해요. 유튜브에서 ‘7번 아이언 치는 법’을 찾아보듯, 포커 역시 프로들을 참고해 나만의 공략법을 개발하는 거죠. 국제대회에선 파이널에 9명이 올라가는데, 한번 들기 시작하니 가속도가 붙더군요. 첫 아시아대회 우승까지 8년 걸렸습니다.”

프로바둑기사 아내 덕에 '승부의 세계' 배워 

2009년 프로바둑기사 한해원씨와 결혼한 것도 ‘승부의 세계’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됐다. 그 전까진 내기에도 약하고 골프를 겨루다가 져도 기분 상하는 일이 없었는데, 아내가 내뿜는 ‘승부사의 눈빛’을 보면서 차츰 달라졌다고 한다. 이기기 위해 밤낮없이 상대를 분석하는, 자신을 단련하는 게임의 법칙도 이해하게 됐다.

“아내가 ‘졌을 때 기분이 나쁘지 않은데 어떻게 상대를 이기겠느냐’ 하더군요. 프로가 된다는 건 전력을 기울이는 의미란 거죠. 다만 이겼을 때 상대 앞에서 기쁜 티를 안 내는 것도 프로의 매너란 걸 배웠어요. 억눌러왔던 승부욕을 발산하면서 게임을 즐기는 묘미를 알게 됐죠.”

바둑이나 골프는 아마추어가 프로를 거의 못 이기지만, 포커는 최후의 한 장으로도 역전이 가능한 종목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청소년이나 의지박약한 이들이 중독적으로 빠지는 건 경계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자제력도 프로의 조건이라면서 말이다.

“돌아보면 인생이란 게 끝없는 승부이고 선택 같아요. 승리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최선을 다하는 과정 자체가 내 인생을 만들어주는 것이죠. 이왕 인생 2막에 베팅했으니, 프로포커들의 월드컵으로 불리는 WSOP(월드 시리즈 오브 포커) 우승도 노려보겠습니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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