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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냐] 아직은 블록체인 성패를 논할 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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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셔터스톡]

[소냐’s B노트] 5월 7일 이오스(EOS) 개발사 블록원의 브랜단 블러머(Brendan Blumer) CEO이 트위터에 글 하나를 올렸습니다. 그는 “블록원 직원 수가 300명을 넘어섰다. 이들 대부분은 소프트웨어 팀으로 구성됐다. 이들의 재능과 수고가 매우 자랑스럽다!”며 다소 흥분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업계 반응은 시큰둥합니다. 오히려 “직원들만이라도 이오스 기반 디앱(DAapㆍ탈중앙화 앱)을 써준다면 디앱 사용자 수가 지금보다 갑절은 늘어날 것”이라며 비꼬는 말까지 서슴지 않습니다.

과장된 표현이기는 하나, 아예 틀린 말도 아닙니다. 디앱 분석 플랫폼 디앱리뷰(Dapp Review) 데이터를 보면 상위 5위권을 제외한 나머지 디앱들의 일일 이용자 수는 1000명이 채 안 됩니다. 10위 카지노 디앱 Felix 일일 이용자 수가 343명(18일 기준)이니, 만약 블록원 직원들이 모두 동원된다면 딱 2배로 늘어나겠네요. 이러다 직원 수가 이용자보다 많은 상황이 올 수도 있겠습니다.

#무엇이 업계 발목을 잡나

이러한 상황을 이오스만 겪을까요. 사실 암호화폐 거래소를 제외하면 대다수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프로젝트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모객은 쉽지 않고, 그러다 보니 성장은 더디기만 합니다. 이유가 뭘까요. 중국 암호화폐 커뮤니티 체인클럽은 크게 두 가지 요인을 제시했습니다. 먼저, 블록체인에 대한 높은 진입장벽입니다. 보통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기술 개념, 낮은 수준의 사용자경험(UX), 현존 시스템보다 떨어지는 성능 등이 거대한 장애물입니다. 흔히들 비트코인의 거래 속도가 비자(VISA)에 한참 뒤떨어진다는 점을 거론하죠.

그뿐만 아닙니다. 업계를 둘러싼 각종 추문도 심리적 장벽을 쌓습니다. 스캠과 다단계 사기 등이 판을 치면서 대중은 “모든 암호화폐는 사기”라고 쉽게 오인합니다. 정부도 투자자 보호 명목으로 모든 ICO(암호화폐공개)를 금지했고, 업계를 적대시합니다. 그로 인한 피해는 업계 전체가 입게 됩니다. 건전한 프로젝트들까지 말이죠. 업계는 정부 눈치를 보느라 전전긍긍하게 되고, 제대로 사업하기가 어려워집니다. 국내 블록체인 업계의 현주소가 아닐까 합니다.

#늦어지는 이더리움2.0… 킬링앱은 과연 존재할까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간단합니다. 위의 단점을 개선한 킬링 앱, 즉 사람들이 굳이 기술을 이해하지 않아도 충분히 사용 가능하고 UX와 성능이 뛰어난 서비스가 나오면 됩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좋은 서비스는 눈에 띄기 마련입니다. 또 다른 해법은 당국이 업계가 뒤집어쓴 오명을 걷어내고 명확한 규제를 내놓는 것입니다. 불법 프로젝트를 단속하되, 우량 프로젝트들은 적극 육성하는 식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업계 덩치를 키우기 위해서라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단계입니다.

그런데, 킬링 앱을 내놓는 게 과연 쉬운 일일까요. 그랬다면 지금의 상황은 오지 않았겠죠. 이더리움만 봐도 그렇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더리움2.0 출현을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올해, 드디어 가시적 성과가 나타났습니다. 4월 이더리움2.0 테스트넷 토파즈(Topaz)가 나온 겁니다. 하지만 메인넷이 언제 가동할지 가늠할 수 없습니다. 업계는 적어도 2년은 걸릴 거라고 추산합니다. 후발 프로젝트들도 단기간 내 상용화를 기대하기 힘든 상황입니다.

#기존 산업에 블록체인 결합… 승산은?

사실 킬링 앱의 출현 가능성은 ‘순수’ 블록체인 업계가 아닌, IT 공룡과 제도권 등에서 제기됐습니다. 대표적인 게 비트코인ETF(상장지수펀드), 페이스북 리브라(Libra), 텔레그램 톤(TON)입니다. 기존 금융과 IT 서비스에 블록체인을 결합하는 방식입니다. 이들은 모두 대규모 이용자가 포진해 있다는 게 최대 장점으로 꼽힙니다.

비트코인ETF는 잘하면 비트코인을 제도권에 안착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습니다. 기존 금융상품에 익숙한 투자자를 암호화폐에 유입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죠. 당국의 허가가 선결 조건이므로 합법적이며 신뢰할 만합니다. 하지만 당국의 높은 장벽을 넘기가 하늘에 별따기입니다. 미 증권거래위원회(SEC)는 비트코인의 시세조작 우려를 이유로 줄곧 비트코인ETF 신청을 거절해왔습니다.

암호화폐 거래소 제미니 설립자인 윙클보스(Winklevoss) 형제는 과거 수차례 SEC에 신청서를 제출했지만 번번이 퇴짜를 맞았습니다. 가장 최근 사례는 윌셔 피닉스(Wilshire Phoenix)가 신청한 미 국채와 비트코인을 혼합하는 방식의 비트코인ETF인데요. 이 역시 2월 최종 거부 통지를 받으며 아쉬움만 남겼습니다. 앞서 지난해 6월 제이 클레이튼(Jay Claton) SEC 위원장은 CNBC 인터뷰에서 “신뢰 가능한 자산 운용 방안을 내놓고, 시장 조작 의혹을 해소하기 전까지 비트코인ETF를 승인할 수 없다”고 못박기도 했죠.

IT 기업 중 가장 과격하게 암호화폐 시장을 행보한 건 페이스북입니다. 페이스북은 지난해 6월 리브라 백서를 세상에 공개해 큰 주목을 받았죠. 비자ㆍ마스터카드 등 굴지의 기업들이 파트너사로 달라붙을 만큼, 가능성은 매우 커 보였습니다. 일단 발행되기만 하면 17억명의 금융소외계층은 물론 전세계 각지에서 리브라로 결제하는 시대가 열릴 듯 보였습니다.

하지만 예상은 빗나갔습니다. 세계 각국에서 거센 비판이 쏟아진 것이죠. 민간 화폐인 리브라가 한 국가의 화폐 주권을 위협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습니다. 페이스북은 리브라 협회를 세우고 객관적으로 리브라를 운영하겠다는 방침을 여러 번 밝혔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죠. 파트너사들은 하나둘씩 이탈했고, 결국 리브라는 한 발 물러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러 국가의 화폐 가치로 구성된 통화 바스켓 대신, 단일 국가 화폐 가치와 리브라를 연동한다며 당초 계획을 수정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리브라를 경계하는 당국의 태도는 여전하기만 합니다.

익명성에 특화된 메신저 텔레그램도 페이스북과 비슷한 곤경에 처했습니다. 오히려 페이스북보다 상황이 더 심각합니다. 당국의 제재에 못 이겨 결국 사업을 접기로 했으니까요.

앞서 텔레그램은 2018년 두 차례에 걸쳐 17억달러를 투자 받고 암호화폐 프로젝트 톤 개발에 본격 시동을 걸었습니다. 메신저 내 전자지갑에서 사용 가능한 암호화폐 그램(gram)도 설계했죠. 하지만 SEC는 텔레그램을 증권법 위반으로 고소했고, 뉴욕 남무 지방법원은 미국과 해외에서 그램 발행을 금지한다고 판결을 내렸습니다. 판결 직후 텔레그램은 부당한 판결이라며 거세게 반발했지만 정부의 뜻을 꺾을 방법이 어디 있겠습니까. 결국 백기를 들 수밖에 없었죠. 이처럼 대규모 이용자를 확보했더라도, 오히려 여기에 발목 잡혀 서비스를 제대로 내놓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Sonia’s Note 아직은 성패를 따질 때가 아니다

그렇다면 이 모든 노력이 헛된 것일까요. 그렇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텔레그램은 사업을 접었지만, 페이스북의 리브라는 발행을 목전에 두고 있습니다. 비트코인ETF 시도도 계속될 전망입니다. 이처럼 킬링 앱에 대한 업계의 시도가 반복될수록 시장은 점차 성숙해질 거라 봅니다. 당국도 조금씩이나마 태도를 바꾸고 있습니다. 규제 윤곽도 서서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많은 곳에서 가능성을 보고 있습니다. 암호화폐를 결제 시장에 끌어들이는 시도가 나옵니다. 코인베이스와 비자는 손잡고 암호화폐 직불카드를 선보였습니다. 전세계 설치된 7000대 이상 비트코인 ATM는 암호화폐를 현금화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제도권 거래소들은 비트코인 파생상품을 내놓으며 중앙은행은 디지털화폐(CBDC)를 구상 중입니다. 비트코인이 나온 지 10년이 지났습니다. 신생 산업이 성장하기엔 턱없이 짧은 시간입니다. 아직은 성공과 실패를 논할 때가 아닙니다.

권선아 기자 kwon.seon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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