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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광주 시민에 특수탄 쓴 신군부, 작전기록 조작했다"

중앙일보

입력

⑤신군부, 민간인들에게 중화기 난사

5·18 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아 최근 옛 광주교도소에서 발견된 신원미상의 유골과 5·18과의 연관성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광주교도소는 80년 5월 당시 광주시민이 계엄군에게 끌려가 고문을 당하거나 암매장을 당한 곳이어서다. 광주시는 지난해 12월 발견된 유골들과 5·18 행방불명자와의 유전자 대조를 위해 행불자 가족의 혈액채취 신청을 받고 있다.

[40주년 5·18] 광주교도소 암매장과 5·18 왜곡의 진실을 캔다⑤ #80년 광주시민에 섬광 수류탄 ‘STUN수류탄' 첫 사용 #5·18연구소, 계엄군 '진압작전 일지' 조작도 공개 #‘유탄발사’ 삭제 한 뒤 “과감한 공격”으로 왜곡

5·18단체 등은 이번 유골발견 사건을 80년 5월 광주의 진상을 규명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올해 5·18이 40주년을 맞은 상황에서도 북한 개입설이나 시민군의 교도소 습격 같은 왜곡과 폄훼가 여전하기 때문이다. 중앙일보는 새로 발굴된 군 내부문건과 관련자 증언 등을 토대로 5·18 당시 암매장의 진실과 신군부의 5·18 왜곡·폄훼 상황을 재조명했다. 〈편집자 주〉

5·18 당시 광주에 투입된 계엄군의 탱크가 옛 전남도청 앞을 지나고 있다. [중앙포토]

5·18 당시 광주에 투입된 계엄군의 탱크가 옛 전남도청 앞을 지나고 있다. [중앙포토]

軍, 특수 STUN수류탄 광주서 첫 사용

5·18 당시 계엄군들이 새로 도입한 군의 첨단무기를 광주시민들에게 최초로 사용한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신군부는 유탄발사기 같은 중화기를 시민들에게 사용한 사실을 감추기 위해 군의 전투기록까지 조작했다.

 17일 전남대 5·18연구소 김희송 교수가 공개한 검찰조서에 따르면 80년 5월 당시 계엄군들은 특수 수류탄인 STUN수류탄(stun grenade)을 광주에서 최초로 사용했다. 군이 전쟁 때 사용하기 위해 1979년 도입한 신형무기를 자국 국민들에게 난사한 것이다. 특수화학탄이라 불리는 STUN수류탄은 강력한 섬광과 폭음을 내뿜어 순간적으로 눈과 귀를 마비시키는 무기다.

 군 당국은 그동안 5·18 때  STUN수류탄 사용을 부정해 왔으나 80년 5월 당시 3공수여단 특공대 책임장교의 증언에 따라 사실이 밝혀졌다. 그는 95년 검찰 조사에서 “(80년) 5월 26일 23:00경 특공조가 출발했는데 여단 작전참모가 헬기를 타고 와서 STUN수류탄을 전달했다”고 진술했다. 5월 26일은 5·18 당시 계엄군에 의해 전남도청이 최후로 진압되기 하루 전이다.

 아울러 그는 “당시 STUN수류탄은 순간 실명수류탄으로서 국내에서는 처음 사용하는 것이니까, 사용 후 결과를 보고하라는 지시도 아울러 받았기 때문에 그대로 특공조에 지시했다”고 덧붙였다.

계엄군이 작성한 80년 5월 26일 YWCA에 대한 '진압작전 일지(전투상보, 80년 작성)'. 왼쪽 문건은 중화기를 사용한 진압작전이 상세히 기록된 원본이며, 오른쪽은 88년 국회 청문회 당시 내용을 줄여 조작한 문건. 해당 자료 원본에는 ’(5·18 진압과정에서) 중대장은 M203유탄을 YWCA 2층 폭도 배치지점에 3발을 발사했다“고 기록했다. 그러나 8년 뒤인 88년 국회에 제출된 전투상보에서는 유탄발사에 관한 내용을 대신해 ’과감한 공격을 감행했다“고 변경되어 있다. [사진 전남대 5·18연구소] 프리랜서 장정필

계엄군이 작성한 80년 5월 26일 YWCA에 대한 '진압작전 일지(전투상보, 80년 작성)'. 왼쪽 문건은 중화기를 사용한 진압작전이 상세히 기록된 원본이며, 오른쪽은 88년 국회 청문회 당시 내용을 줄여 조작한 문건. 해당 자료 원본에는 ’(5·18 진압과정에서) 중대장은 M203유탄을 YWCA 2층 폭도 배치지점에 3발을 발사했다“고 기록했다. 그러나 8년 뒤인 88년 국회에 제출된 전투상보에서는 유탄발사에 관한 내용을 대신해 ’과감한 공격을 감행했다“고 변경되어 있다. [사진 전남대 5·18연구소] 프리랜서 장정필

김희송 교수, 문건 조작도 첫 확인

 그동안 신군부와 계엄군 관계자들은 “5·18 당시 STUN수류탄 같은 신무기나 중화기는 사용하지 않았다”고 주장해왔다. 전두환(89) 전 대통령도 자신의 회고록을 통해 “광주사태 당시 계엄군이 화염방사기로 광주시민들을 공격했다는 주장까지 있었다”며 “대한민국 국군이 대한민국 국민을 상대로 그처럼 잔인무도한 살인행위를 저질렀다는 것은 나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라고 주장한 바 있다.

 하지만 김 교수가 이날 함께 공개한 ‘광주시 진입작전 상보’에는 신군부의 은폐 시도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군이 사용하지도 않았다는 STUN수류탄을 이용해 시민군을 진압한 내역이 상세하게 기록돼 있어서다.

 해당 자료에는 “(5월 27일) 도청 지하실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입구에서부터 폭도들의 저항을 받았으나 특수탄을 이용, 지하실에 있던 폭도를 순간적으로 무력화시켰다”고 기록하고 있다.

 5·18 당시 계엄군의 잔혹성은 80년 5월 27일 작전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군이 그동안 은폐해온 11공수여단의 ‘전투상보’(80년 작성)에 따르면 이날 계엄군은 시민들을 향해 STUN수류탄 뿐만 아니라 중화기인 유탄발사기까지 사용한 사실이 적혀 있다.

5·18 당시 옛 전남도청에 주둔한 계엄군들. [중앙포토]

5·18 당시 옛 전남도청에 주둔한 계엄군들. [중앙포토]

유탄 발사기 쏜 뒤 "과감한 공격"

 이 자료에는 “(5·18 진압과정에서) 중대장은 M203유탄을 YWCA 2층 폭도 배치지점에 3발을 발사했다”고 기록했다. 그러나 8년 뒤인 88년 국회에 제출된 전투상보에서는 유탄발사에 관한 내용을 대신해 “과감한 공격을 감행했다”고 변경되어 있다. 고폭탄 발사로 대량 살상반경을 갖는 전쟁용 무기를 자국 국민들을 향해 난사한 사실을 숨기기 위해 기존 문서를 위조한 것이다.

 이 자료는 80년 작성된 이후 군의 공식 기록에서 사라졌으나 김 교수의 추적을 통해 40년여 만에 세상에 공개됐다. 김 교수는 "당시 신군부가 5·18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유탄발사기 같은 중화기를 사용한 사실과 이를 은폐한 문건"고 말했다.

진압 후엔 "침투기술 유감없이 발휘"

 계엄군이 각종 특수무기들을 사용한 5월 27일은 5월 18일 촉발된 광주민주화운동이 계엄군들에 의해 최종 진압된 날이다. 이날 진압작전에 따라 옛 전남도청과 광주YWCA, 광주공원 등에서 시민 17명이 사살되고 계엄군 3명이 사망했다.

 이날 계엄군은 작전 직후 작성한 ‘전투상보’에서 “평소 연마한 침투기술과 사격술을 유감없이 발휘한 작전”으로 자평했다. 또 이날 희생된 시민들의 죽음은 전과(戰果)로 기록됐다.

 이에 대해 신군부나 전두환 전 대통령 측은 STUN수류탄을 비롯한 신무기 사용에 대해 전면 부정했다. 전 전 대통령의 변호인인 정주교 변호사는 “5·18 때 계엄군은 어떠한 신무기를 사용하지 않았다”며 “최근 고(故) 조비오 신부에 대한 사자명예훼손 재판에서도 당시 계엄군 관계자들을 증인으로 소환했으나 헬기사격이나 신무기 사용은 사실은 없었다고 증언했다”고 말했다.

광주광역시=최경호·진창일 기자, 이근평 기자 choi.kyeong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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