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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역 성공' 대만은 왜, WHO '초대 받지 못한 손님' 신세 됐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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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제2기 임기를 시작하는 대만의 차이잉원(蔡英文) 총통의 지지율이 코로나19 방역의 성공으로 그야말로 고공 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2기 취임식을 앞두고 대만에서 진행된 여론조사 결과는 차이 총통이 누리는 높은 인기를 여실히 보여준다. 대만의 신대만 국책싱크탱크(新台灣國策智庫)의 홈페이지에 따르면 이 싱크탱크가 1075명을 상대로 조사해 지난 5월 7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 차이 총통의 지지율은 74.5%에 이르렀다. 총통 선거 직전인 지난해 연말보다 20%포인트 이상 오른 수치다. 정당별 지지율 조사에선 민진당이 40.5%, 제1야당인 국민당이 9.2%를 기록했다. 차이 총통이 소속한 민진당의 지지율이 야당인 국민당의 4배를 넘는다. 차이 총통 개인의 지지율은 민진당보다 34%포인트나 높다.

대만, 중국 조기 차단, 마스크도 확보 #인구 2380만에 확진 440명, 사망 7명 #방역 성공국 우뚝…마스크 대량 기부 #20일 2기 취임 차이 총통 인기 고공행진 #총통 74.5%, 보건복지장관 93.9% 기록 #대만, WHO 참가해 성과 공유하려 해도 #중, ‘하나의 중국’ 내세워 철저히 배제 #2003년 사스 때도 전문가 파견 차단해 #WHO, 대만 참가 논의 연말까지 연기 #시 주석, 코로나19 독립조사에도 반대 #WHO 정치화 논란 가열…미중 대결로

차이잉원 대만 총통은 중국의 강경한 대만정책이 발표되자 "대만의 주권을 지키자"는 슬로건을 내걸어 지지층 재결집에 성공했다. 지난 1월 11일의 총통 선거에서 재선한 차이 총통은 20일 2기 임기를 시작한다. [AP=연합뉴스]

차이잉원 대만 총통은 중국의 강경한 대만정책이 발표되자 "대만의 주권을 지키자"는 슬로건을 내걸어 지지층 재결집에 성공했다. 지난 1월 11일의 총통 선거에서 재선한 차이 총통은 20일 2기 임기를 시작한다. [AP=연합뉴스]

20일 2기 취임 차이잉원 총통, 인기 고공행진

대만 케이블TV인 TVBS의 홈페이지에 따르면 이 방송이 지난 5월 13~15일 91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화 여론조사 결과 차이 총통의 지지율은 61%, 부(不)지지율이 25%, 무의견이 14%로 나타났다. 이 방송의 조사에 따르면 차이 총통에 대한 지지율은 3년 전 36%, 지난해 12월 41%였지만 지난 2월 54%, 3월 60%로 꾸준히 상승했다. 이는 2기 임기 시작을 앞둔 역대 총통의 지지율 가운데 최고 수준이다. 대만에선 1996년 총통 직선제가 시행된 뒤 역대 리덩후이(李登輝)·천수이볜(陳水扁)·마잉주(馬英九) 총통이 연임에 성공했지만 2기 임기를 이렇게 높은 인기로 시작하지는 못했다.
차이 총통은 지난 1월 11일 실시했던 15대 총통 선거에서 57.13%의 지지율로 당선했다. 차이 총통에 맞섰던 국민당의 한궈위(韓國瑜) 후보는 38.61%를 얻은 데 그쳤다. 함께 치렀던 10대 입법위원(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진당은 33.93%의 지지율로 113석 가운데 61석을 확보했으며, 국민당은 33.36%의 지지율을 얻었음에도 38석 획득에 그쳤다.
더욱 놀라운 것은 대만의 코로나19 대응을 진두지휘한 천스중(陳時中) 위생복리부장(보건복지부 장관)의 지지율이다. 중앙유행전염병지휘센터(CECC) 센터장을 겸임하며 코로나19 대응을 책임진 그의 지지율은 지난해 35.3%에서 이번에 93.9%로 그야말로 도약했다. 천 부장의 지지율이 솟아오른 것은 그에 대한 대만인의 높은 신뢰를 잘 보여준다.

지난 1월 11일 치른 15대 대만 총통 선거에서 민진당 소속 차이잉원 총통이 국민당 한궈위 가오슝시 시장을 큰 차이로 눌러 재선에 성공했다 차이 총통은 20일 2기 임기를 시작한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1월 11일 치른 15대 대만 총통 선거에서 민진당 소속 차이잉원 총통이 국민당 한궈위 가오슝시 시장을 큰 차이로 눌러 재선에 성공했다 차이 총통은 20일 2기 임기를 시작한다. [로이터=연합뉴스]

대만, 중국 신속 차단해 세계적 방역 성과

이처럼 차이 총통과 천 부장이 높은 인기를 누리는 가장 큰 비결은 뭐니 뭐니 해도 성공적인 코로나19 방역이다. 대만은 중국에 대한 검역 강화와 마스크 생산 확대 등 독자적인 코로나19 대책으로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아왔다. 성적표는 놀라울 정도다. 인구 2380만의 대만은 5월 19일 0시 현재 확진자 440명에 사망자 7명이 나왔다. 놀라울 정도로 효율적인 대응 결과다.
그럼 어떻게 이런 성과를 거뒀을까. 대만은 중국에 대한 차단 조치를 누구보다 일찍 시작한 나라로 꼽힌다. 지난해 12월 31일 중국 후베이(湖北)성 우한(武漢)에서 원인 불명의 질환이 발생했다는 첫 보고가 나온 바로 그날 대만과 우한을 오가는 모든 항공편의 운항을 중지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대응이다.
대만은 1월 21일 우한에서 교사로 일하다 돌아온 50세 여성이 첫 확진자로 판명되자 1월 24일 마스크의 수출을 차단하고 정부에서 관리해 대만인들이 사용할 물량을 충분히 확보했다. 공적 마스크 정책은 대만이 원조인 셈이다. 1월 26일엔 중국을 오가는 모든 항공편을 중단해 감염원의 유입을 원천 차단했다. 대만에서 1월 28일 첫 지역사회 감염자가 나타나기도 전의 일이었다.

중국 광저우에 설치된 코로나 19 풍자 조형물. 조형물. 코로나 19 방역 능력은 곧 지도자의 국정 운영 능력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EPA=연합뉴스

중국 광저우에 설치된 코로나 19 풍자 조형물. 조형물. 코로나 19 방역 능력은 곧 지도자의 국정 운영 능력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EPA=연합뉴스

전 세계에 마스크 2400만장 기부  

대만은 이런 빠르고 효율적인 조치로 코로나19의 강한 펀치에서 비켜날 수 있었다. 신규 확진자가 가장 많을 때도 하루 27명(3월 20일)에 불과했다. 하루 신규 확진자는 4월 1일 이후 4월 19일(22명)만 제외하고는 하루 10명 이하로 줄었다. 5월 8일 이후에는 신규 확진자 숫자가 계속 ‘0’을 이어가고 있다. 전 세계에서 관심을 보이고 공유하고 싶어 할 수밖에 없는 성과다.
이런 대만은 이번 코로나19 대처로 전 세계와 공유할 소중한 정보를 축적하고 성공 사례를 만들었다. 자국에서 코로나19가 어느 정도 잡히자 대만은 국제 협력에 나섰다. 아사히 신문에 따르면 대만은 마스크를 비롯한 의료 물자를 부족한 나라에 제공하는 코로나 외교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특히 마스크를 지난 4월부터 대대적으로 생산해 미국과 유럽, 일본, 동남아시아 등에 2400만 장을 공급했다. 대만은 이런 업적을 국제사회, 특히 WHO에서 발표할 날을 꿈꿔왔다.

미국 등으로부터 중국에 기울어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테드로스 아드하놈 게브레예수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 로이터=연합뉴스

미국 등으로부터 중국에 기울어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테드로스 아드하놈 게브레예수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 로이터=연합뉴스

WHO, 대만 방역성과 공유 기회 박탈

문제는 대만은 WHO에서 철저히 배제되고, 소외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대만은 회원국도, 옵서버도 아니다. 대만은 1971년 중국이 유엔에 가입하면서 유엔에서는 물론 WHO를 비롯한 유엔 전문기구에서도 배제됐다. ‘하나의 중국’을 주장하는 중국은 대만을 주권국가로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보건의료를 다루는 WHO는 성격이 다르다. 사람의 생명과 건강을 다루는 유엔기구이니만큼 전염병 등의 상황에서 WHO와 정보와 자원을 공유하는 것은 인권 차원의 권리일 수 있다. 하지만 대만은 그런 권리가 인정되지 않았다.
2002~2003년 중중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 유행 당시에도 대만은 WHO의 지원에서 사실상 배제됐다. 아사히 신문에 따르면 당시 대만은 3월에 환자를 처음 인지했지만, WHO는 즉시 전문가를 파견하지 않고 미뤘다. 고립된 대만은 미국의 질병예방통제센터(CDC)에 요청해 필요한 관련 정보와 바이러스 샘플을 간신히 입수할 수 있었다. WHO가 파견한 전문가는 중국을 거쳐 5월에야 뒤늦게 대만에 들어왔다. 당시 대만에선 사스로 37명이 목숨을 잃었으며, 이는 대만에 고스란히 국가적 트라우마가 됐다.
이번 코로나19 대책에서 성과를 올린 대만은 18~19일 열리는 WHO 총회에 옵서버로 참가해 경험을 공유해야 한다고 호소해왔다. 대만의 차이잉원(蔡英文) 총통은 이미 지난달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에 기고한 글에서 “대만은 유엔과 WHO에서 부당하게 배제됐으며 세계와 협력이 가능하다”라며 총회 참석을 요구했다. 하지만 테드로스 아드하놈 게브레예수스 WHO 사무총장은 총회의 문을 대만에 열어주지 않았다.

중국의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18일 WHO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제73차 세계보건총회(WHA) 화상회의 개막 연설에서 코로나와 관련한 독립 조사에 반대하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중국의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18일 WHO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제73차 세계보건총회(WHA) 화상회의 개막 연설에서 코로나와 관련한 독립 조사에 반대하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중, 대만에 ‘하나의 중국’ 강요

WHO는 현재 유엔 회원국 가운데 WHO 헌장을 인준하지 않은 유럽의 리히텐슈타인(인구 3만8000명)과 남태평양의 쿡 제도(인구 1만7000명), 니우에(인구 1500명)를 제외한 194개국이 회원이다. 아울러 팔레스타인과 바티칸, 그리고 영토가 없는 몰타 기사단을 옵서버로 받아들이고 있다. 중국이 주장하는 ‘하나의 중국’이란 이유 말고는 인구가 2380만이나 되는 대만이 옵서버로 참가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아사히는 WHO가 헌장에서 ‘옵서버 참가는 관련국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고 규정해 대만의 옵서버 참가는 중국의 동의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WHO는 대만이 옵서버 자격으로 총회에 참가하려면 “양안 합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중국의 눈치를 보는 셈이다. 하지만 중국은 반중 성향의 차이 총통이 집권하는 한 대만의 옵서버 참가를 허용할 가능성이 희박하다.
그런 가운데 중국 제네바 대표부의 천쉬(陳旭) 대사는 지난 6일 “문은 열려 있다”라고 말했다. 중국이 요구하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차이 총통이 인정할 경우 WHO 총회에 옵서버 자격으로 참가할 수 있게 해줄 수도 있다는 의미다. WHO 옵서버 자격 획득을 미끼로 대만의 대륙 정책을 바꾸겠다는 심산이다.
중국은 2006년 한국 출신 이종욱 WHO 사무총장(1945~2006년, 재임 2003년 7월~2006년 5월)이 재임 중 숨지자 홍콩 출신의 마거릿 챈을 후임자로 밀었다. 챈은 2017년까지 자리를 지켰다. 챈의 후임이 에티오피아 보건·외교 장관 출신인 테드로스 아드하놈 게브레예수스 현 사무총장이다. 챈은 재임 중 대만을 ‘중국 대만성(臺灣省’이라고 불러 대만의 항의를 불렀을 정도로 철저하게 중국의 뜻에 따랐다. 보건으로 정치를 한 셈이다.

미국 국립 알레르기전염병 연구소에서 염색하고 전자현미경으로 촬영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의 모습. EPA=연합뉴스

미국 국립 알레르기전염병 연구소에서 염색하고 전자현미경으로 촬영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의 모습. EPA=연합뉴스

중, 친중 정권 시절의 대만엔 옵서버 허용  

중국은 이처럼 ‘하나의 중국’을 내세워 대만의 WHO 접근을 철저히 막아왔지만 대만에서 친중 정권이 들어섰을 때는 그렇지 않았다. 2008년 대만에서 친중 노선을 내세운 국민당의 마잉주(馬英九) 총통이 당선하자 중국은 이듬해인 2009년 WHO 총회에 대만을 옵서버 자격으로 참가하도록 했다. 옵서버 국가는 의결권은 없지만 발언권은 있다. 하지만 2016년 대륙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두는 정책을 내세운 민진당의 차이잉원 총통이 집권하자 중국은 2017년부터 대만이 옵서버 자격으로도 WHO 총회에 참석하는 것을 다시 막았다.
미국의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지난 6일 대만이 올해 WHO 총회에 옵서버 자격으로 참가하는 것을 지지하는 발언을 했다. 미국 의원들은 최근 전 세계 55개국에 편지를 보내 대만이 WHO에서 대만이 활동할 수 있게 도와 달라고 요청했다. 캐나다와 뉴질랜드도 지지를 표시했다.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는 4월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정치색을 없애는 것이 본래의 WHO다“라고 발언해 지지 의향을 나타냈다고 아사히가 보도했다.
하지만 WHO의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세계보건총회(WHA)는 18일 화상으로 연 제73차 회의에서 대만에 옵서버 자격을 부여하는 논의를 연말까지 연기하기로 결정했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대만은 올해 WHO 총회는 물론 각종 활동에 옵서버 자격으로도 참가할 수 없게 다시 한번 배제되는 순간이었다. 이는 누가 봐도 중국의 압력 때문이다. 코로나19라는 대재앙을 맞고 있는 국제사회가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이 WHO의 지원이다. 하지만 WHO의 활동을 정치가 좌우한다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4월 8일 ’더 많은 시신 가방을 원하지 않으면 정치 쟁점화 말라“고 한 테드로스 아드하놈 게브레예수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에게 ’정확한 분석이나 하라“고 반박했다. ’중국과의 관계를 볼 때 그가 정치 얘기를 하는 걸 믿을 수 없다“고 하면서다. 트럼프는 WHO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는 동안 지원을 보류하겠다고 밝혔다. [AF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4월 8일 ’더 많은 시신 가방을 원하지 않으면 정치 쟁점화 말라“고 한 테드로스 아드하놈 게브레예수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에게 ’정확한 분석이나 하라“고 반박했다. ’중국과의 관계를 볼 때 그가 정치 얘기를 하는 걸 믿을 수 없다“고 하면서다. 트럼프는 WHO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는 동안 지원을 보류하겠다고 밝혔다. [AFP=연합뉴스]

중, 코로나19 독립 조사 반대…정치화 논란

중국의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18일 WHO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제73차 세계보건총회(WHA) 화상회의 개막 연설에서 코로나와 관련한 독립 조사에 반대하는 입장을 밝혔다고 로이터 통신이 보도했다. 시 주석은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가 통제된 뒤에 전 세계의 코로나19 대응 작업에 대해 전면 평가하는 방안을 지지한다”며 “이 작업은 WHO가 주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미국과 호주 등 서방 국가들이 코로나19의 발생과 확산에 대해 시기적으로는 '즉각', 방법으로는 '독립적인' 조사를 하자고 주장하는 데 반대한다는 의미다.
시 주석은 코로나19 사태가 끝난 뒤 WHO 주도로 조사하자는 제안을 함으로써 중국에 대한 조사를 WHO에 맡기고 시기를 질질 끌어 최종적으로 책임론에서 비켜 가려고 시도하는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 방역 성공국 대만을 WHO의 '초대받지 않은 손님'으로 만드는 것도 그 일환일까.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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