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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곁에서 지켜본 이용수 할머니 ‘양심 선언’에 담긴 진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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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교정 대구 2·28민주운동 기념사업회 홍보위원장

김교정 대구 2·28민주운동 기념사업회 홍보위원장

“위안부를 이용한 수요집회와 정의기억연대(정의연)의 활동에 더는 참여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이용수 할머니의 지난 7일 기자회견을 본 순간 “터질 것이 터졌다”는 생각을 했다.

윤미향·정의연은 의혹 소명하고 #평화·사랑·용서의 가치를 살려야

필자에게 지난 2015년은 특별히 기억되는 해였다. 그해 미국에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미국 의회 연설장에 이용수 할머니를 맨 앞자리에 모시고 싶다”는 제안이었다. 그 일을 계기로 필자는 뜻있는 시민들과 함께 대구에 처음으로 ‘평화의 소녀상’을 세우게 됐고 지금까지 이용수 할머니 곁에서 부족하지만 지킴이 역할을 하고 있다.

필자가 할머니를 수년간 지켜보면서 평소에 자주 하셨던 말씀을 담아 비석에 새겨 놓은 것이 있다. 첫째는 사랑합니다. 둘째는 역사는 다시 쓸 수 있지만 진실은 다시 쓸 수 없다. 셋째가 일본은 내가 죽는 날까지 기다리지 말고 하루빨리 사죄해야 한다. 그래야 한·일 양국이 공존하고 살 수 있다. 이런 말씀에는 위안부들이 생존해 있을 때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우선이란 할머니의 인식이 담겨 있다. 또 위안부 단체 소속 운동가들의 정치적 입지 강화와 국회 진출 등은 위안부 문제가 해결된 이후에 해도 늦지 않다는 할머니의 깊은 뜻이 담겨 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는 1990년 11월 16일 발족하면서 “위안부 피해자들의 인권 회복과 한·일 간의 왜곡된 역사 바로잡기를 위해 정대협을 발족한다”고 선언했다. 그때까지 숨죽이며 살아온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얼마나 큰 희망으로 들렸을지 생각만 해도 눈물이 핑 돈다.

지금이라도 정의연과 윤미향 더불어시민당 비례대표 당선자는 제기된 많은 의혹을 정직하게 소명해야 한다. 국민 기부금에 대한 투명한 공개, 위안부 할머니의 상주 자격이라며 개인 통장으로 받은 조의금 자료 공개, 그리고 할머니 없는 위안부 쉼터 의혹 등을 국민 앞에 소상하게 밝혀야 한다. 검찰이나 국가기관에서 조사하기 전에 기부금 운영단체는 국민의 합리적인 의문에 진실한 답을 내놔야 한다.

정대협과 정의연은 그동안 쌓은 성과로 지금의 잘못을 덮어버릴 수는 없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첫 출발 당시의 초심과 다짐대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위안부 할머니들의 인권을 회복하는 본연의 길로 가야 한다. 특히 정대협과 정의연은 “일본군 위안부 범죄에 대한 일본 정부의 사죄 그리고 법적 보상”을 주장해왔는데 결과물이 무엇인지 묻고 싶다. 오히려 위안부 할머니를 위한 투쟁의 보상이 국회 또는 정·관계 진출의 교두보가 된 것은 아닌지 성찰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진실을 고백하라”고 요구한 이용수 할머니를 친일이나 치매로 모는 표현을 쓴 것은 심히 개탄스럽다. 이미 돌아가신 위안부 할머니들의 영령에도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주게 된다.

물론 지난 30년간 정대협이 위안부 문제를 국내외에 알리고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 공로와 역할을 평가절하해서는 안 된다. 비리 의혹과는 별개다.

2015년 광복 70주년에 대구에 평화의 소녀상을 세울 때 했던 말이 떠오른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더는 위안부라 부르지 말고, 이 땅에 전쟁이 사라지고 여성의 성이 유린당하는 비극이 없도록 살아있는 증인으로 세계를 돌며 증언하는 여성 인권운동가로 할머니를 모셔야 하고 그렇게 불러야 한다.”

2015년 12월 28일 박근혜 정부 때의 합의와 2019년 12월 27일 헌법재판소의 각하 선고 이후 위안부 문제 해결은 지지부진 상태다. 이제 위안부 문제를 민간단체에만 맡길 것이 아니라 정부가 나서서 위안부 할머니들의 소망대로 양손에 평화와 사랑·용서의 가치를 안겨드려야 한다. 그래야 우리 모두 소녀상 앞에 부끄럽지 않게 설 수 있지 않을까.

김교정 대구 2·28민주운동기념사업회 홍보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