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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구치소 위협한 코로나…美처럼 수용자 풀어줄 가능성은

중앙일보

입력

고 노회찬 정의당 의원이 2017년 국정감사에서 "일반 재소자들은 신문지 두 장 반을 붙인 독방에서 열악한 생활을 하고 있다"며 신문지를 국감장 바닥에 깔아 드러눕고 있다. [뉴스1]

고 노회찬 정의당 의원이 2017년 국정감사에서 "일반 재소자들은 신문지 두 장 반을 붙인 독방에서 열악한 생활을 하고 있다"며 신문지를 국감장 바닥에 깔아 드러눕고 있다. [뉴스1]

2017년 국정감사에서 신문지를 깔고 누웠던 고(故) 노회찬 의원을 기억하시나요. 신문지 두장 반. 노 의원은 딱 그만큼(0.3평)이 서울구치소 수용자에게 주어진 공간이라 지적했습니다. 그때보단 조금 나아졌다지만 많은 수용자들이 매일 밀첩 접촉을 하며 생활하는 곳이 서울구치소입니다.

법무부 "외국과 같은 수용자 집단 가석방 일절 고려안해"

지난 15일 이곳에 근무하던 교도관 A씨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확진판정을 받았습니다. 교도관이 접촉한 수용자는 301명, 교소도 직원은 100명. 다행히 추가 확진자는 없었지만 해결되지 않은 의문이 남습니다. 실제 구치소에 코로나가 퍼진다면 수용자들을 어떻게 해야할까요.

미국의 코로나 석방 논쟁 

한국보다 코로나19 사태가 심각한 미국과 이탈리아 프랑스 등에선 이미 수천~수만여명의 수용자들을 가석방과 자택연금의 형태로 풀어줬습니다. 코로나프리즌데이터닷컴에 따르면 미국 내 교도소에서 코로나19 감염으로 사망한 수용자는 300여명을 넘어섰습니다.

 지난 15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서울구치소 교도관이 4차 감염사례로 알려진 가운데 17일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 입구 철문이 굳게 닫혀 있다. [뉴스1]

지난 15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서울구치소 교도관이 4차 감염사례로 알려진 가운데 17일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 입구 철문이 굳게 닫혀 있다. [뉴스1]

도널트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최측근인 폴 매너포트(71)는 사기 혐의 등으로 지난해 징역 7년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13일 코로나19 감염 우려로 석방돼 가택연금됐습니다. 형기의 3분의 1도 채우지 않아 특혜 논란이 일었습니다.

코로나19 감염으로 인한 수용자 가석방은 미국 사회에서 뜨거운 논쟁거리입니다. 지난 4월 플로리다주에선 코로나19로 석방된 20대 남성이 하루만에 살인을 저질렀습니다. '코로나 석방' 반대 여론이 들끓었습니다. 하지만 지난 11일 텍사스주에서 19년을 복역한 뒤 석방 8일을 앞둔 50대 남성이 코로나19로 사망하자 '코로나 석방' 필요성이 제기됐습니다.

법무부에서 인권 업무를 담당했던 검사 출신 변호사는 "코로나19와 관련된 수용자의 석방 문제는 법의 형평성과 피해자의 아픔, 법적 신뢰성이 모두 밀접히 연관된 아주 복잡한 문제"라 말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최측근인 폴 매너포트. 지난해 징역 7년을 선고받았지만 코로나19 감염 우려로 최근 가택연금에 처해졌다. [AP=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의 최측근인 폴 매너포트. 지난해 징역 7년을 선고받았지만 코로나19 감염 우려로 최근 가택연금에 처해졌다. [AP=연합뉴스]

코로나에 가장 취약한 구치소 

다른 나라에 비해 한국은 코로나19에 비교적 잘 대처하고 있습니다. 사망자가 10만명을 넘어설 것이란 미국질병통제예방센터(CDC)의 전망이 제기된 미국과 단순 비교는 어려울 수 있습니다. 법무부에 코로나19와 관련한 수용자 집단 가석방 검토 가능성을 묻자 "그런 부분은 일절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검찰도 서울구치소 수용자 소환조사를 자제하겠다는 것 이상의 대응은 없습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플랜B가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김대근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독거와 혼거가 혼재한 서울구치소는 한국에서 코로나19에 가장 취약한 장소"라 말했습니다. 헌법재판소는 2016년 고(故) 신영복 성공회대 명예교수의『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인용해 서울구치소의 과밀수용은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한 위헌이라 결정했습니다.

신영복 선생은 책에서 "여름 징역은 자기의 바로 옆사람을 증오하게 한다"고 했었습니다. 법무부는 헌재 결정 이후 전국 교도소 수용비율이 2016년 120.3%에서 2020년 5월 기준 108.8%로 개선됐다고 밝혔습니다.

서울구치소 교도관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으로 서울중앙지법 법정이 임시 폐쇄된 15일 오후 방역업체 직원들이 법정 내부를 방역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구치소 교도관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으로 서울중앙지법 법정이 임시 폐쇄된 15일 오후 방역업체 직원들이 법정 내부를 방역하고 있다. [연합뉴스]

선고 연기되자 직권보석한 법원 

최근 법원에선 코로나19와 관련해 흥미로운 결정이 있었습니다. 피해자와 합의해 15일 선고기일에서 집행유예를 기대하던 피고인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서울구치소 직원의 코로나 확진으로 재판이 연기됐고, 피고인이 답답해하던 차에 재판부가 직권보석 결정을 내린 것입니다. 판사 출신 변호사는 "집행유예로 풀어줘야 할 피고인의 재판이 연기되자 재판부가 먼저 보석으로 풀어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구치소에 코로나19 감염이 높다면 재판부가 보석 결정을 활용해 과실범에 한해 구치소 수용인원을 줄이는 것도 한 방법"이라 말했습니다.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코로나19 국면에선 과실범이나 경범죄, 또는 코로나 자가격리위반자에 한해 구속수사를 자제할 필요도 있다"고 했습니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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