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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희 외 『나의 할머니에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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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양성희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나의 할머니에게

나의 할머니에게

오래전, 스스로 너무 늙었다고 느꼈지만 사실은 아직 새파랗게 젊던 시절에 할머니는 늙는다는 게 몸과 마음이 같은 속도로 퇴화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 하지만 할머니는 이제 알았다. 퇴화하는 것은 육체뿐이라는 사실을. 그런 생각을 할 때면 어김없이 인간이 평생 지은 죄를 벌하기 위해 신이 인간을 늙게 만든 거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마음은 펄떡펄떡 뛰는 욕망으로 가득 차 있는데 육신이 따라주지 않는 것만큼 무서운 형벌이 또 있을까? 꼼짝도 못하는 육체에 수감되는 형벌이라니.

윤성희 외 『나의 할머니에게』

늙는 게 두려운 게 아니라, 마음이 따라 늙지 않는다는 게 두렵다. 차라리 마음도 몸처럼 늙어지면 편할지 모르겠다. 그런데 세상은 젊음의 욕망을 찬양하며, ‘노욕’은 추하다고 쉽게 말한다.

젊은 작가 6인이 할머니를 주제로 쓴 소설을 모았다. 누구도 주목하지 않은 ‘할머니’의 존재성을 전면에 내세웠다. 한 생애를 살아낸 그들에게 바치는 헌사이기도 하다.

인용문은 할머니의 로맨스를 그린 백수린의 ‘흑설탕 캔디’에서 따왔다. 강화길은 ‘선베드’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대하는 것을 멈추지 못하리라는 것. 할머니, 이런 게 살아 있다는 거야?”라고 묻는다. 손원평의 ‘아리아드네 정원’은 “늙은 여자가 될 생각은 없었다. 하루하루 살아 오늘날에 도착했을 뿐이다”로 시작한다. 손원평은 작가 노트에 “미래는 순식간에 다가와 현재를 점령한다. 늘 우리가 예상하지 못했던 모습으로”라고 썼다. 모두 늙는다. 그것도 몸만, 몸이 앞서 늙는다.

양성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