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친구야, 나랑 산막서 닭 치고 달걀 팔자

중앙일보

입력 2020.05.17 09:00

[더,오래] 권대욱의 산막일기(55)

친구야 산막으로 와서 같이 닭 치고 살자. [사진 권대욱]

친구야 산막으로 와서 같이 닭 치고 살자. [사진 권대욱]

강풍이 분다. 데크며 마당이며 지붕의 먼지와 잡것들이 송두리째 불려 나간다. 블로워나 에어건으로 날리려면 족히 일주일은 걸릴 것이다. 비가 온다. 온누리를 촉촉이 적시는 비. 스프링클러나 고압 살수기로 뿌리려면 족히 이틀은 뿌려야 할 양이다. 자연은 위대하다. 함부로 훼손하는 자는 반드시 벌 받을 것이다.

나에겐 옛 친구가 하나 있다. 연상약하지만 예부터 10년 정도는 친구가 될 수 있다기에 그냥 친구로 편하게 지내는 사이다. 거슬러 올라가면 꽤 깊은 인연이다. 공무원 휴직하고 국방의무할 때 선임과 후임으로 만나 사회생활하면서도 줄곧 교류해왔고 그 인연이 지금껏 이어지고 있으니 벌써 46년이다. 친구는 아버지 기업을 이어받아 한동안 잘나가는 사업가인 듯했지만 타고난 풍류와 끼로 사업보다는 사람 사귀고 교류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게 되고 이 틈을 놓칠세라 몰려든 어쭙잖은 비즈니스맨, 아이디어맨의 유혹에 빠져버렸다. 결국 되지 않는 사업에 거금을 투자하고 날리는 일을 반복하더니 급기야는 멀쩡한 회사 하나를 남에게 넘기지 않으면 안 될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화불단행(禍不單行)이라…. 사업이 가니 가정도 가버렸다. 아이 셋을 남겨두고 이혼까지 해버린 그에게 친동기들마저도 예전 같지가 않았다. 그에게 더 이상의 희망은 없는 듯했다. 이렇게까지 된 데에는 같이 노는 재미에 빠져 친구의 잘못된 길을 알지 못하고 막지 못한 나의 책임도 커 지금도 죄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이후 그는 삼겹살 집도 해보고 찜닭 집도 해보고 하더니 어느 날 홀연히 미국으로 가버렸다. 히스패닉들에게 99센트짜리 잡화 파는 친구 가게를 봐주다가 결국 자기 가게 하나를 손에 넣었다고 자랑스럽게 말하던 그가 엊그제 돌아왔다. 누님 집에 모신 어머니를 돌보아 드리겠다고 하면서…. 언젠가 그가 아이 결혼식 참석차 잠시 귀국했을 때, 그리고 그가 한국에 돌아오고 싶다고 말했을 때 내가 이렇게 말했다. “이보게 친구! 자네 돈 좀 모았나? 어디 취직할 데라도 있나?” 그의 대답은 들어보나마나였다. 돈 좀 모았으면 돌아올 리 만무하고 특별한 기술도 경력도 없이 그 나이에 취직할 데가 어디 있겠나? 당연히 없을 테였다. 그래서 내가 말했다.

“친구야, 나하고 귀래 산막 가서 같이 살자! 나는 이곳에 할 일이 좀 남았으니 우선은 자네 혼자 들어가 닭이라도 치고 콩 심고 메주 띄워 그 좋은 물, 그 좋은 볕에 잘 띄워 명품 된장 간장 만들어 팔자! 횡성 안동 한우 농가 잘 계약해 맞춤 고기 공급하자! 앞뜰 너른 밭에 김장김치 파 마늘 배추 무 쑥갓 오이 호박 모두 유기농으로 무공해로 키워 때맞춰 원하는 사람들에게 팔자꾸나! 새살림 몸 살림이 뭐 별거더냐? 너른 풀숲 펄펄 날며 벌레 잡아먹고 잘 자란 달걀은 그야말로 명품 유정란이니 비싸게 팔자! 그간 내 신세 진 사람 줄잡아 한 200명은 될 터이니 한 집에 월 5만 원씩만 납품해도 네 한 몸 건사야 못하겠느냐? 내 이름 걸어줄 테니 그렇게 한 번 해보자!”

그러고 나서 또 2년여의 세월이 흘렀다. 지금 다시 만나 한 번 더 물어보면 뭐라고 할지 궁금하다. 나의 계획은 아직도 유효하나 그의 의지는 미지수다. 그래도 한 번 더 물어는 볼 거다. 예감이 좋지는 않다. 언제 왔느냐? 어떻게 왔느냐는 내 물음에 그는 “어머니 모시고 여행이나 다녀오려고 해”라고 말해 도시생활의 미련과 미지의 사업에 대한 거부가 그대로 녹아있는 것 같았다. 마치 “생각 좀 해봤나?”란 나의 물음을 미리 막아버리기라도 한 듯….

귀농! 그거 아무나 하는 건 아닌 것 같다. 나도 내가 직접 하지는 못할 것 같다. 재주도 없고 체질도 아니다. 내 손으로 해도 될 둥 말 둥 할 사업이나 남 시킬 생각만 하고 있으니 귀래 산막의 장래가 자못 걱정되기도 한다. 곡우가 이 이야기 들으면 또 무어라 할지도 궁금하다. 그래도 꿈을 접지는 않을 것이다. 누가 나 대신 역할분담 잘해 이 사업 성공할 자신만 있다면 맡겨보고도 싶다. 각자 팔자와 특기대로, 친구는 닭 치고 나는 닭 치는 친구 옆에서 글 쓰고 노래하며 틈틈이 사업계획이나 만들어 주는 게 맞을 것 같다. 여치와 베짱이가 따로 없다. 그래서 이 꿈은 그냥 꿈으로 그칠 공산이 크다. 그러나 이 꿈을 절대 접지는 않겠다. 죽을 때까지 꿈만 꾸는 한이 있더라도 이 꿈만은 결단코 접고 싶은 생각이 없다.

비 개인 산막
山氣日夕佳(산기일석가) 飛鳥相與還(비조상여환)
此中有眞意(차중유진의) 欲辯已忘言(욕변이망언)
산기운 날 저물어 더욱 아름답고, 새들은 집찾아 돌아오는데,
그 감흥 말하려하나 이미 할말을 잊었다
무슨 말이 필요한가

생애 처음 꽃꽂이를 해본다. 책상 밑 전선 정리, 튀어나온 못 박기도 오늘 끝낸다.

생애 처음 꽃꽂이를 해본다. 책상 밑 전선 정리, 튀어나온 못 박기도 오늘 끝낸다.

(주)휴넷 회장·청춘합장단 단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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