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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폭서 건설사 회장까지···'철거왕' 로비장부, 의문의 이니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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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거왕’ 이금열(51)씨를 아시나요. 조직폭력배였던 이씨는 1990년대부터 철거업체 사장, 유명 건설사 사장, 기업집단 회장까지 오르며 이름을 날렸습니다. 하지만 2013년 1000억원대 비리(횡령·뇌물공여 등) 혐의가 불거져 징역 5년형을 살고 나옵니다. 그리고 최근 이씨의 최측근인 조폭 모래내파 부두목 박 모(50)씨가 붙잡히면서 미완으로 남았던 이씨 로비리스트 수사가 7년 만에 다시 이어지고 있습니다. 장부에 고위 경찰과 국회의원 등이 있는 것으로 추정돼 관심이 쏠립니다. 이씨는 한 번 더 검찰 수사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씨의 극적인 인생을 사진으로 조명해봤습니다.

1970년 전남 완도 출생

이씨가 1970년 태어난 전남 완도의 한 항구 전경. 연합뉴스

이씨가 1970년 태어난 전남 완도의 한 항구 전경. 연합뉴스

이씨는 가난한 어부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섬에서 중학교까지 마치고 광주에서 고등학교를 나왔습니다. 이후엔 해병대에서 군 복무를 하고 서울로 올라와 잠시 조직폭력배 동대문호남파 조직원으로 활동했습니다.

1992년 철거업체 적준 입사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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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씨는 1992년 지인의 소개로 당시 국내 최대 철거업체인 적준에 입사해 사장 비서로 일하게 됐습니다. 그는 성공하기 위해 하루에 잠을 3시간 이상 자지 않았고 3년 가량 동안 무보수로 일했다고 합니다. 그런 노력 끝에 1998년 적준 대표로 올라섭니다. 이씨의 적준은 전국 철거시장의 80%가량을 차지했습니다.

이씨는 철거왕으로 불렸습니다. 이씨 일당은 무자비한 폭력 철거로 유명했습니다. 재개발 등 정비사업을 빠르게 진행하려는 정부와 대기업 건설사 등의 필요를 확실히 충족했습니다. 시민단체 12곳이 이씨 일당에 대한 철거범죄 보고서를 펴낼 정도였습니다. 보고서는 “경찰의 비호로 폭력 철거가 버젓이 벌어질 수 있었다”고 지적했습니다.

2007년 유명 건설사 청구 인수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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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씨는 철거왕 자리로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2000년대 들어 대기업 건설사들처럼 시행ㆍ시공으로 사업을 확장했습니다. 2007년엔 유명 건설사 ‘청구(주택 브랜드 지벤)’를 인수하기에 이릅니다. 이씨는 계열사 20개가량을 거느린 다원그룹 회장이 됐습니다. 그는 빠른 사업 확장을 위해 로비를 했습니다. 일감을 따내고 관련 인ㆍ허가 편의를 받는 과정에서 정ㆍ관계에 전방위로 돈을 뿌렸습니다.

건설업계에서 로비는 일상화돼 있습니다. 특수수사 경험이 많은 한 지방검찰청 부장검사는 “업계에서 사업비의 10%가 로비 자금으로 쓰인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씨가 전국 수많은 사업장에서 20년 넘게 활동한 점을 고려하면 전체 로비 액수가 어느 정도일지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2013년 수원지검 수사

수원지검. 장진영 기자

수원지검. 장진영 기자

2013년 수원지검이 다원그룹을 대대적으로 수사하면서 이씨는 발목이 잡혔습니다. 수사 결과 1000억원대 횡령과 45억원가량의 뇌물공여 혐의가 드러났습니다. 특히 수원지검은 이씨 회사의 경리직원을 압수수색해 USB 메모리에 든 로비리스트 파일을 찾아냈습니다. 장부에는 로비 대상이 영어 이니셜로 쓰여 있고, 그 옆에 특정 날짜와 ‘①’ 식으로 숫자가 표시돼 있다고 합니다. ‘특정 날짜에 1억원을 건넸다’는 의미로 추정된다는 게 검찰의 판단입니다. 회계장부에서 로비 자금이 현금 인출된 흔적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수사팀은 로비리스트에 경찰 고위 간부와 국회의원 등도 포함된 것으로 무게를 두고 수사력을 집중했습니다. 경찰 고위 간부에 대해선 최 모 경위의 관련 진술까지 있었습니다. 최 경위는 “수원지검 수사 전인 2011년 서울 서대문경찰서 수사관으로서 이씨와 그의 최측근(친구)인 조폭 박씨를 수사하던 중 이들의 로비를 받은 경찰 수뇌부에 의해 돌연 파출소로 전보되는 등 수사무마 압력을 받았다”고 주장했습니다. 한 총경이 최 경위를 만나 “이씨와 박씨를 수사하지 말라”며 압력을 가하고, 이 사실이 발각되자 사표를 낸 뒤 이씨 실소유 회사에 채용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또한 이씨가 길거리에서 차량 트렁크에 실린 사과 박스 3개를 가리키며 측근에게 “경찰 대가리 등한테 좀 더 써야겠다”고 말한 것으로 목격했다는 주변인 진술도 있었습니다.

2013년 서울시의장 구속 

2013년 10월 김모 당시 서울시의회 의장이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영장실질심사를 받고 법원에서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2013년 10월 김모 당시 서울시의회 의장이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영장실질심사를 받고 법원에서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2013년 수원지검의 이씨 로비 리스트 수사는 김 모 당시 서울시의회 의장 선에서 멈춰야 했습니다. 이씨가 입을 굳게 다물었고 전달책 등으로 활동했던 박씨가 도주했기 때문입니다. 이후 이씨는 2015년 징역 5년형을 확정받고 복역했습니다. 현재 출소한 상태입니다. 그렇게 로비 리스트 수사는 미완으로 마무리되는 듯했습니다.

2017년 최 경위 폭로

JTBC '이규연의스포트라이트' 캡처

JTBC '이규연의스포트라이트' 캡처

하지만 2017년 여론의 관심이 이씨에게 다시 쏠리기 시작했습니다. 최 경위가 언론에 실명을 걸고 “파출소로 좌천성 인사발령이 난 이후 이씨와 박씨에 대한 수사기록이 조작(입건기록 삭제·피의자 미송치 등)됐다”고 폭로했기 때문입니다. 이 의혹은 그해 국정감사에서도 더불어민주당 의원들(박남춘·이재정)을 중심으로 제기됐습니다.

경찰은 감찰에 착수했고 최 경위의 주장을 일부 인정했습니다. 또 수사하다 송치하지 않고 뭉갠 박씨의 혐의(대기업 건설사로부터 50억원 수수)를 재수사하도록 했습니다. 당시 이재정 의원은 “내부고발자의 용기 있는 증언에도 정작 주요 사안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진상 규명을 하지 못하고 있다”며 “진상 조사를 경찰에만 맡길 것이 아니라 검찰 수사 등 다각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2020년 중앙지검 로비 장부 재수사 

사무실에 불을 켠 서울중앙지검. 연합뉴스

사무실에 불을 켠 서울중앙지검. 연합뉴스

최근 들어선 이씨 로비 리스트에 대한 수사가 다시 시작됐습니다.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가 올해 3월 박씨를 지명수배 7년 만에 체포하면서입니다. 서울중앙지검 형사8부가 중심이 돼 수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수사가 로비 리스트뿐만 아니라 경찰 내부의 수사무마 의혹 등으로 확대돼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또 정비사업장에서 허위·불필요 용역 발주 등을 통한 사업비·분양가 증가 문제도 수사해야 한다는 지적입니다. 조합원을 포함한 국민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주기 때문입니다. 관련 비리는 문재인 대통령이 “척결하라”고 강조한 생활적폐이기도 합니다.

건설 비리 수사 전문가인 김상윤 전 검찰 수사관(저스티스파트너스 대표)은 “이씨 일당의 주 무대였던 가재울4 재개발의 사업상 구조적 비리에 대해 수사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고 강조합니다. 김 전 수사관은 2017년 서대문구청과 함께 가재울4를 본보기로 한 ‘정비사업 비리 백서’를 제작하기도 했습니다. 아울러 “로비 리스트에서 검사 등도 나올 수 있는 만큼 성역 없는 수사를 위해 특검이나 공수처 1호 수사로 진행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이씨는 다시 한번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했습니다. 이씨의 남동생은 8일 중앙일보와 전화통화에서 “형님은 검찰 수사가 진행된다면 성실히 응할 것”이라면서도 “2013년 수원지검 수사로 밝혀진 것 이상의 비리는 없다”고 밝혔습니다.

김민중 기자 kim.minjo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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