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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이 미국을 버린다···세금 공포에 올 국적포기 10배 껑충

중앙일보

입력

올해 1분기 스스로 미국 국적을 포기한 시민권자가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15일 중국 환구시보가 인터내셔널 비즈니스 타임스(IBT) 등을 인용해 보도한 데 따르면 올해 1분기 미국 국적자 2909명이 국적을 포기했다. 이는 전 분기(2019년 4분기·261명)의 열배 이상으로 늘어난 것이다.

미국 국적자 중에서 시민권을 포기한 사람이 올해 1분기 2900여명 나와 종전 최고치를 기록했다. 사진은 미국 여권 [EPA=연합뉴스]

미국 국적자 중에서 시민권을 포기한 사람이 올해 1분기 2900여명 나와 종전 최고치를 기록했다. 사진은 미국 여권 [EPA=연합뉴스]

미국 뱀브리지 회계사무소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국적 포기자는 2072명이었다. 지난해 한 해보다 올해 1분기 포기자가 더 많았다는 얘기다. 종전 최고 기록은 2016년 4분기로 당시 2365명이 미국 국적을 포기했다.

올해 1분기 미국 국적 포기자가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사진은 미국 이민국(United States Citizenship and Immigration Services, USCIS)이 지난 3월 코로나 19를 이유로 운영을 중지한다는 내용의 게시물을 부착한 것이다. [AP=연합뉴스]

올해 1분기 미국 국적 포기자가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사진은 미국 이민국(United States Citizenship and Immigration Services, USCIS)이 지난 3월 코로나 19를 이유로 운영을 중지한다는 내용의 게시물을 부착한 것이다. [AP=연합뉴스]

미국 국적 포기…그 뒤엔 '세금'

미국 국적 포기자가 이렇게 급증한 배경은 무엇일까. '세금 공포' 때문이란 해석이 많다.

"코로나에 미국 재정 적자 악화, 세금 더 거둘 것"

뱀브리지 회계사무소 파트너인 알리스타일 뱀브리지는 "미국 시민권자는 해외에 살고 있더라도 미국 세금신고서를 제출하고 미국 정부에 세금을 내야 한다"면서 "국외에 보유한 외국 은행 계좌, 투자 내용, 연금보험 등을 모두 보고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해외에 거주 중인 많은 시민권자에게 이는 성가신 문제다"라고 덧붙였다. 현재 약 900만 명의 미국인들이 해외에 살고 있다.

사진은 미국에서 4월 주어진 납세자 코로나 생활구호 자금(economic impact payment)의 실물 모습.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이름을 넣기를 강력히 요구했다. [AP=연합뉴스]

사진은 미국에서 4월 주어진 납세자 코로나 생활구호 자금(economic impact payment)의 실물 모습.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이름을 넣기를 강력히 요구했다. [AP=연합뉴스]

미 재무부는 신종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에 경제 활동이 사실상 중단되자 소득세 등 납세 시한을 4월에서 오는 7월로 연기했다. 이참에 미뤄놨던 국적 포기를 실행에 옮기는 해외 시민권자들이 늘어난 것 아니냐는 게 현지의 분석이다.

코트라의 분석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2010년 이후 국적 포기자가 꾸준히 늘고 있다. 그 해 발표된 해외 금융 계좌 신고법 영향이다.

지난 2007년 미국은 금융위기 여파에 국가 부채가 늘자 추가 세수 확보에 매진했다. 이런 배경 속에 등장한 것이 '해외 금융 계좌 신고법'이다. 이 법으로 매년 1600억 달러에 달하던 부유층 역외 탈세를 잡는 데는 성공했다. 미 시민권자가 국세청(IRS)에 세금을 제대로 신고하지 않았다가 적발되면 연간 1만 달러 최대 5만 달러의 벌금과 미납 세금의 40%까지 가산세를 내야 한다. 고의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처벌도 받는다.

이 때문에 미국인들은 자진 납세를 하거나 5만 달러 이하로 자산을 쪼개서 관리한다. 이도 저도 아니다 싶으면 마지막엔 국적을 포기한다.

환구시보는 "미국 시민권을 포기하기 위해서는 2350달러(288만원)의 비용을 내야 하며 해외에 있는 미국 교민은 직접 미국 주재 대사관에 가야 하지만 많은 이들이 이런 절차를 감수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미국 정부는 국적을 포기하는 이들이 속출하자 과거 450달러였던 국적 포기 수수료를 현재 2350달러까지 올렸지만 큰 효과를 못 보고 있다.

세금 인상 전 국적 포기하자? 美 4월 재정적자 역대 최대

'국적 포기 러시'에는 코로나 19 때문에 돈이 궁해진 미국 정부가 앞으로 세금을 더 거둘 것이란 관측도 한몫했다. 실제로 미국 재정 적자 상황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미국 연방 정부의 4월 재정적자는 7380억 달러(약 903조원)를 기록했다. 한 달 기준으로 역대 최대 수준이다. 세수는 전년 동기보다 55% 줄어든 데 비해 코로나 대응으로 지출은 161% 급증했기 때문이다.

포브스지는 세계 최대 헤지펀드인 브리지워터 어소시어츠의 레이 달리오 창업자가 자신의 고객들에게 세금 인상에 대비하라는 경고를 했다고 보도했다. 달리오 창업자는 미국의 재정 적자가 심각해졌으며 결국 오는 11월 대선에서 누가 승리하건 간에 적자를 메우기 위한 세금 인상은 불가피하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래리 핑크 블랙록 대표도 고객들에게 "미국 법인세 부담이 현행 21%에서 28~29%까지 증가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았다.

서유진 기자 suh.yo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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