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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편집국장 레터] 나랏돈 쓰는 법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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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7호 면

독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중앙SUNDAY 편집국장 김종윤입니다. 빚,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무조건 빚을 멀리해야 할까요. 대출을 일으켜 확보한 돈으로 투자해 대출 이자보다 더 많은 수익을 올리면 빚내는 건 효과적경제 활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호승 청와대 경제수석도 이런 취지에서 “국채를 발행해서라도 성장률을 지탱하는 게 재정 건전성을 지키는 방법”이라고 말했을 겁니다. 문재인 정부는 이미 전 국민 긴급재난지원금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 나랏빚을 냈고(2차 추경), 조만간 3차 추경을 통해 더 많은 빚을 낼 예정입니다.

오는 11일부터 전국민을 대상으로 한 긴급재난지원금 온라인 신청이 시작된다. 서울 성동구청은 별도 전담 창구를 마련하고, 재난지원금 지급 신청과 상담을 돕고 있다. [사진 성동구]

오는 11일부터 전국민을 대상으로 한 긴급재난지원금 온라인 신청이 시작된다. 서울 성동구청은 별도 전담 창구를 마련하고, 재난지원금 지급 신청과 상담을 돕고 있다. [사진 성동구]

그런데 생각해보시죠. 빚 내서 경기 부양하고 생산성을 끌어 올리면 좋겠지만, 과연 돈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요. 대출 받아 투자하다 쪽박 차는 사람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보지 않습니까. 나랏돈도 마찬가지죠. 더욱이 이 사회엔 아직 나랏돈을 주인 없는 돈으로 여기는 부류들이 꽤 있습니다. 나랏돈을 운용하는 사람은 선출된 이들이거나 대리인일 뿐입니다. 내 호주머니 돈이 아니니 헤프게 쓸 공산이 크죠.

재난지원금 지급이 시작됐습니다. 전 국민이 대상입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경제는 생산과 수요 양 측면에서 모두 바닥으로 가라앉고 있습니다. 급한 대로 수요를 일으키는 게 필요합니다. 수요가 무너진 경제, 생각하기도 싫습니다. 일자리를 지키고, 기업을 살리고, 산업을 일으킨다면 단기 재정 적자는 감수할 수 있다고 봅니다. 나라 곳간도 상대적으로 튼튼한 편입니다. 위기 때 곳간을 여는 건 불가피한 선택이랄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걱정이 스멀스멀 피어 오르는 건 재난지원금이 잠시 통증만 덜어 주는 일회성 처방에 그칠 것 같아서입니다. 우리 사회는 가보지 않은 길을 가는 중입니다. 전 국민이 재난지원금을 받는 보편 복지의 물꼬를 텄습니다. 앞으로 팬데믹이 또 오면 그때도 모두에게 곳간을 열어야 할 겁니다. 곳간에서 풀린 돈은 경제 기초체력을 키우는 데 필요한 영양소가 돼야 할텐데 일회성 진통제에 그친다면 저질 체력은 그대로인 채 빚만 쌓일 겁니다. 가보지 않은 길에 발을 내딛으니 불안감이 몰려오는 이유입니다.

[자료 행정안전부]

[자료 행정안전부]

나랏돈을 쓰는 걸 무조건 반대하는 게 아닙니다. 이왕 쓸 거면 제대로 쓰자는 거죠. 필요한 투자는 과감히 하되 경제 체력을 키우고 복지 체제를 효율화하는 쪽으로 씀씀이를 집중하자는 말입니다.

문재인 정부는‘한국형 뉴딜’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준비가 안 된 듯 이런저런 정책을 덧대고 있습니다. ‘포스트 코로나’의 핵심 과제로 제시된 건 처음에는 디지털 인프라 구축, 비대면 산업 육성, 사회기반시설(SOC) 디지털화 등이 골자였습니다. 여기에 문 대통령이 ‘그린 뉴딜’을 접목하는 걸 검토하라고 지시하면서 친환경 산업 육성과 연관된 일자리 창출이라는 과제도 포함될 듯합니다.

 1930년대 대공황 때 미국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취한 뉴딜 정책의 핵심은 댐 짓고 길 닦은 게 아닙니다. 노동·시장·복지 개혁을 통해 사회보장체제를 단단히 구축했다는 점입니다. 스웨덴도 당시 경제·복지 개혁을 추진해 북유럽 경제ㆍ복지 시스템의 근간을 세웠습니다.

빚까지 내서 위기에 대응하겠다고 나선 이상 기존의 관성을 버리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여는 시도를 기대합니다. 일본 등의 사례를 보더라도 국민 모두에게 일회성 현금 뿌려봤자 큰 효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뉴딜이라는 거창한 이름에 맞게 경제 성장과 복지 체제 구축을 위한 큰 틀의 전환을 모색해야 합니다. 위기가 곧 기회라고 하지 않습니까. 지금이 그런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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