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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 풀어달라 주장만으론 안 돼" 규제샌드박스 전문변호사가 말하는 A to Z

중앙일보

입력

자율주행 배달 로봇, 공유 주방, 택시 동승 서비스 등 '좀 새롭다' 싶은 서비스들은 '규제 샌드박스'가 돌파구였다. 규제 샌드박스는 새로운 제품·서비스를 출시할 때 일정 기간 동안 기존의 규제를 면제 또는 유예시켜 주는 제도다. "규제 때문에 사업을 못 한다"는 벤처·스타트업을 위해 지난해 1월 시작됐다. 운영 첫 해 195건이 샌드박스로 지정되면서 큰 주목을 받았다. 지난 12일엔 정부 부처별로 나눠진 규제 샌드박스 신청을 통합해 1차 접수·지원하는 '민간 샌드박스 지원센터(대한상공회의소 운영)'도 문을 열었다. 개소전 사전신청만 100건이 넘게 몰렸다.

규제 샌드박스엔 어떤 사업들이 지정되는 걸까. 지난 7일 법무법인 비트의 송도영 변호사(40)를 만났다. 송 변호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업통상자원부 규제 샌드박스 지원 컨설팅을 맡아 1년 9개월 간 신속처리, 임시허가 등 200건 이상의 규제 샌드박스 과제를 컨설팅했다. 규제 샌드박스의 대표 사례로 꼽히는 공유주방 '위쿡'(심플프로젝트컴퍼니), 동승 중개 서비스 '반반택시'(코나투스), 손목시계형 심전도 장치 '메모워치'(휴이노) 등이 그의 손을 거쳐 샌드박스 혜택을 봤다. 송 변호사에게서 규제 샌드박스의 A부터 Z까지 물었다.

7일 법무법인 비트에서 송도영 변호사가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최정동 기자

7일 법무법인 비트에서 송도영 변호사가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최정동 기자

규제 샌드박스 A to Z

규제 샌드박스를 한마디로 한면?
허용된 모래 놀이터다. 놀이터 밖에는 엄마라는 감시자(규제)가 있지만, 놀이터 안에서는 예외를 줄테니 맘대로 놀아보라는 것. 현행법에선 사업 허가를 받기 어려운 사업이 샌드박스 제도를 통하면 예외적으로 가능해진다. 정부는 규제 샌드박스로 지정된 사업이 출시후 문제가 있는지 살펴보면서 법을 개정해 규제를 없애 나간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샌드박스를 통하면 문제가 해결되나.
통과될 것이라고 100% 확신할 수 있는 건 없다. 사업별로 주무 부처의 입장에 따라 샌드박스 지정 여부가 결정된다. 사업의 혁신성 등 기본적으로 중요한 기준도 있지만 관건은 정부 부처를 설득할 수 있는 전략이 있어야 한다.
어떤 전략이 필요한가.
대부분의 스타트업이 "우리 사업이 혁신적인데 관련 규제를 다 풀어주세요"라고 주장한다. 이 경우 검토 시간만 길어질 뿐 실제 지정되기는 어렵다. 내 사업의 핵심 부문과 관련된 규제만 공략해야 한다. 사업에 걸림돌이 되는 규제가 셋이라면 그중 핵심적인 규제 하나를 풀고 나머지 둘은 사업모델을 수정해서 푸는 식의 유연한 전략이 필요하다. 현행법의 문제점과 사업의 혁신성, 파급효과 등을 설득력 있게 준비해야 한다.  
샌드박스 선정까지 얼마나 걸리나.
대부분 스타트업들이 서비스나 상품 출시 직전에야 규제를 발견하고는 발을 동동 구르는 경우가 많다. 임시허가(시장 출시를 일시적으로 허용해 주는 제도)나 실증특례(시험·검증하는 동안 제한된 구역에서 규제를 면제해주는 제도)를 받기까진 신청 이후 5~6개월이 소요된다. 신청서를 작성하고 사전준비하는데 1개월, 규제 존재 여부를 확인하는 '신속확인'에 1개월, 이후 전문위원회와 심의위원회를 거쳐 부처 간 조율까지 마무리 되어야 한다. 6개월은 걸린다. 이때 비지니스 모델을 명확히 정리하는게 좋다.  
규제샌드박스 진행절차. 규제정보포털

규제샌드박스 진행절차. 규제정보포털

어느 지점에서 스타트업들이 많이 탈락하나.
주무부처 공무원, 전문가 등 6~15명이 참여하는 전문위원회 통과가 가장 어렵다. 전문위원회가 창업자들에게 날카롭고 전문적인 질문을 던진다. ICT분야 규제 샌드박스 1호 신청이었던 블록체인 기반 해외 송금 서비스(모인)는 1년 이상 이 전문위를 넘지 못하고 있다. 전문위를 통과하면 심의위원회 통과 가능성은 아주 높아진다.
스타트업 혼자 이 과정을 진행하는 건 어렵나.
대부분 처음엔 스스로 신청서를 쓴다. 하지만 스타트업의 언어와 법률 용어가 달라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산자부·과기부 등 정부가 신청서 작성을 도와주는 제도를 운영하니 이를 활용하거나, 창업보육센터의 컨설팅 지원을 받길 권한다. 
그런 도움을 받는 건 유료인가.
정부 지원 제도는 무료다. 로펌이나 변호사로부터 신속처리 신청 컨설팅을 받으면 100만원~200만원 정도, 임시허가나 실증특례까지 받겠다면 500만원에서 1000만원가량의 예산을 잡아야 한다. 경기도엔 샌드박스 관련 법률자문비를 지원해주는 제도도 있다.
샌드박스 고민하는 스타트업에 조언을 한다면,
신속처리 제도를 활용하길 바란다. 해당 부처가 30일 이내에 사업과 관련된 규제를 정리해서 알려주는 제도다. 이를 잘 활용해 사업모델을 만들면 규제를 우회할 수 있다. 신속처리도 질의사항을 세부적으로 명확하게 해서 제출해야 원하는 내용을 회신받을 수 있다.

"모빌리티 원격의료 같은 쟁점도 샌드박스가 다뤄야"

송 변호사는 "지금까지 샌드박스 과제 지정에만 관심이 쏠려 있었지만, 이제는 샌드박스 지정 이후 시장 출시와 관련 법령 개정 등 사후 이슈에 관심을 기울일 때"라고 했다. 규제 샌드박스라는 돌파구가 혁신의 숨통을 틔운 만큼 상시적 규제 개혁이 필요하다는 점도 강조했다.

규제 샌드박스도 좋지만, 필요한 규제도 있지 않나.
마냥 나쁘기만한 규제는 없다. 규제는 사업자의 예측 가능성을 높여주고 사업자 간 형평성을 맞추는 역할도 한다. 다만 시간이 흐르고 산업이 발전함에 따라 업데이트가 필요한 규제가 생기는 거다. 한국이 역동적인 국가인 만큼 적극적이고 상시적으로 규제 혁신을 해야 한다.
'네거티브 규제'로 전환돼야 한다는 지적이 계속 나오는데도, 잘 안 바뀐다.

(※네거티브 규제=금지 대상으로 지정된 것 빼고는 모두 다 할 수 있게 허용해 규제를 최소화하는 방식)

네거티브 방식은 '학교에서 교과서 기준으로 시험 범위를 알려주다가, 이제는 논술과 면접도 하겠다는 것'과 같다. 장기적으로 옳은 방향이고 학생들의 창의성도 더 키울 수 있겠지만 그게 '전가의 보도'는 아니다. 전면적 네거티브 규제 방식이 도입되면, 기업들이 갈피를 잡기 어려워질 것이다. 규제 샌드박스 같은 제도로 기초체력을 쌓은 후 (네거티브 방식을)점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승차공유 플랫폼 '타다'는 지난 3월 6일 타다 금지법(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개정안)이 의결되며 4월 11일 타다 베이직 서비스를 종료했다.

승차공유 플랫폼 '타다'는 지난 3월 6일 타다 금지법(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개정안)이 의결되며 4월 11일 타다 베이직 서비스를 종료했다.

규제 샌드박스의 과제는.
한국형 규제 샌드박스는 지난해 양적으로 큰 성장세를 보였다. 하지만 기업이나 학계에선 '타다' 사태 등을 보며 샌드박스가 진짜 쟁점 분야도 해결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 올해는 모빌리티와 원격의료 등 사회적인 쟁점 분야를 샌드박스가 적극적으로 다뤄줘야 한다. 사후 관리도 중요하다. 샌드박스는 신청하고 통과된 기업에만 적용되는 예외적 제도다. 위쿡이 공유주방을 허가 받았다고 해서 다른 업체가 동일 사업을 하면 현재는 불법이 된다.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시장에 안착한 사업은 법률 개정을 통해 누구나 그 분야에 뛰어들 수 있도록 문을 넓혀주는 게 중요하다. 

정원엽 기자 jung.wonyeo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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