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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격의료 아니라 비대면 의료"…제한적 양성화 논의에 무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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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8년 서울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 담당 의사 이신영 교수(오른쪽)와 통역사가 인터넷 원격의료를 통해 러시아에 있는 환자와 실시간으로 상담하며 처방을 내리고 있다. [중앙포토]

지난 2018년 서울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 담당 의사 이신영 교수(오른쪽)와 통역사가 인터넷 원격의료를 통해 러시아에 있는 환자와 실시간으로 상담하며 처방을 내리고 있다. [중앙포토]

“‘원격의료’보다는 ‘비대면 의료’가 맞다.”(박성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변인)

“(원격의료 반대) 당론이 바뀔 수 있다는 건 아니다. 그간의 입장을 필요하면 수정하는 의논 단계가 생긴 거다.”(허윤정 민주당 대변인)

14일 불거진 원격의료 도입 논란 앞에서 민주당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모습이었다. 전날 김연명 청와대 사회수석이 낸 “긍정 검토” 메시지를 정면 부정하진 않았지만 “특별히 정해진 게 있는 건 아니다”라고 물러서는 기류가 뒤섞여 혼선을 빚었다. 용어를 바꿔 논란을 피해가려는 장면도 연출했다. 의료 상업화·민영화 논란을 안고 온 ‘원격의료’ 표현 대신, 포스트 코로나 국면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내세운 ‘비대면(언택트) 의료’란 말을 사용하는 게 맞다고 주장하면서다.

◇“검토 가능, 추진은 미정”=허 대변인은 “교과서상 정의가 있는 건 아니지만 비대면 의료는 의사와 환자가 얼굴을 맞대지 않는 진료고, 원격의료는 IT(정보기술) 개입까지 넓힌 광범위한 부분”이라며“(둘은) 조금 다르다”고 했다. 현 정부가 최근 띄워 온 '비대면 산업'은 온라인·IT기술 도입이 전제다. 문 대통령은 지난 10일 취임 3주년 연설에서 “비대면 의료서비스와 온라인 교육, 온라인 거래” 등을 한데 묶어 “포스트 코로나 산업분야”로 지칭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민주당 간사를 맡고 있는 기동민 의원도 이날 통화에서 “원격 의료와 비대면 의료는 차이가 없는 같은 말”이라고 했다.

찬성도, 반대도 할 수 없는 분위기 속에서 대변인들도 맥을 짚지 못한 채 얼버무린 셈이다. 민주당이 원격의료 도입 추진에 극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배경에는 “의료 산업화·영리화 우려”라는 그간의 반대 논리가 있다. 앞서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원격의료 도입을 추진할 때 민주당은 “종합병원에 환자들이 몰려 1차, 2차 의료기관이 문을 닫게 된다” 등 이유로 어깃장을 놓았다. 당내에는 공공성에 방점을 둔 그간의 주장을 하루아침에 뒤집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작용하고 있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이날 “김 수석의 말이 좀 오버한 것”이라며 “(원격의료) 전면 허용 이야기가 아니다. 누가 막 당장 밀고 나가겠다 그런 분위기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12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이 12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제한적 양성화” 논의 전망=다만 민주당 내에는 코로나19 이전과는 상황이 바뀌었다는 것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코로나19 극복 과정에서 이미 경험한 전화상담, 비대면 진료 등이 실용적으로 논의될 단계”(허 대변인)라는 시대적 요청을 피할 수 없다는 판단이다. 민주당 정책실 관계자는 “반대 기조에는 변화가 없지만 21대 국회에서 새롭게 입법 논의할 필요는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 전날 김 수석이 언급한 '코로나 예방법에 따라 한시적으로 허용한 전화 상담 진료 (데이터) 17만 건 분석' 결과를 받아 면밀히 살펴볼 계획이라고 한다.

원격의료는 그간 도서·산간 등 의료 취약지역이나 군·교도소 등에서 실험삼아 몇 차례 진행된 전례가 있다. 의료복지 차원의 제한적 도입 필요성에 정치권이 합의할 수 있단 관측이 나오는 배경이다. 기 의원은 “정부가 지난 17년간 네 차례 시범 연구사업을 추진했고, 이 데이터에 기반해 지난해 (원격의료) 제한적 허용을 골자로 한 법 개정안 대표발의를 준비했었다”고 소개했다. “이번 코로나 사태를 기점으로 이미 진행 중인 일부 양성화 논의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방법을 찾아보자”(민주당 핵심관계자)는 주장에 힘이 실릴 가능성이 높다.

◇당·정·청 미묘한 입장차=문제는 사회적 합의다. 의료계의 찬반이 극명한 만큼 민주당이 원격의료를 당론으로 들고 나오면 진보 진영 내에서 찬반이 엇갈려 분란이 커질 수 있는 상황이다. 이광재 민주당 포스트코로나본부장은 통화에서 “비대면 의료가 불가피해진 측면도 있지만 대면 의료 수요도 꾸준히 증가할 것”이라며 “공공과 민간 영역에 쌓인 의료 관련 데이터를 활용한 ‘스마트 의료’를 경쟁력있는 대표 산업으로 도약시킬 수 있도록 사회적 합의를 이뤄가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1월 국정운영 방안을 점검하는 새해 첫 고위 당정청 협의회에서 이낙연 국무총리(가운데)가 인사하고 있다. 왼쪽부터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이 총리,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임현동 기자

지난 1월 국정운영 방안을 점검하는 새해 첫 고위 당정청 협의회에서 이낙연 국무총리(가운데)가 인사하고 있다. 왼쪽부터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이 총리,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임현동 기자

정부는 기획재정부를 중심으로 찬성 목소리를 내고 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이 정책조정국장 시절(2012년) 국회에 제출한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의 발목이 9년째 잡혀 있는 것도 원격의료 분야가 쟁점이 됐기 때문이다. 김용범 기재부 1차관은 이날 “기재부도 비대면 의료 도입에 적극 검토가 필요하다는 기본 입장을 지속적으로 견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당·정간 긴장관계가 어떻게 풀려나갈지가 향후 원격의료 도입의 방향과 범위를 결정할 주요 변수다. 지난달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논의를 거치며 쌓인 민주당-기재부 간 앙금이 원격의료를 둘러싸고 다시 떠오를 수도 있다는 시각도 있다. 보건복지위 소속의 한 민주당 의원은 “당에서 아무 얘기도 안 하는데 기재부가 뭐 때문에 그런(원격의료) 이야기를 나서서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이날 “공공 보건·의료서비스를 강화하는 차원에서 원격의료 도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원론적 입장을 냈다.

심새롬 기자 saero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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