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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법정 간 ‘초상권’ BTS라 이겼다…다른 연예인은?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김용우의 갑을전쟁(23)

언론출판의 자유는 헌법으로 보장됩니다. 누구나 원하는 콘텐츠를 제작하고 배포할 수 있지요. 연예인 관련 콘텐츠도 마찬가지입니다. 각종 미디어 개인 채널에서 연예인 관련된 콘텐츠는 넘쳐 납니다. 연예인은 이런 대중의 관심을 먹고 삽니다. 자발적이든 비자발적이든 미디어를 통해 대충에 노출되는 것을 어느 정도 감수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노출이 영리를 목적으로 한다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연예인이 가지고 있는 대중적 이미지나 명성은 연예인 본인뿐 아니라 연예인의 능력과 인지도를 끌어올린 소속사의 상당한 노력에 기인한 결과물입니다. 아무런 노력 없이 그 결과물에 무임승차하는 것은 허용될 수 없습니다. 이때 연예인의 초상(肖像)을 상업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권리를 ‘퍼블리시티권(Right of Publicity)’이라고 합니다.

미국 뉴욕 '커넥트, BTS'에 방문한 방탄소년단. [사진 빅히트엔터테인먼트]

미국 뉴욕 '커넥트, BTS'에 방문한 방탄소년단. [사진 빅히트엔터테인먼트]

하지만 아직까지 퍼블리시티권은 법적으로는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명시적인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간 하급심 법원도 대체로 퍼블리시티권을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였습니다. 물론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는 연예인 이름이나 사진 등을 상품이나 광고 등에 사용하려면 해당 연예인이나 그 소속사의 허락을 받거나 대가를 지급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설사 그렇지 않다고 해도 연예인이나 소속사가 적극적인 법적 조치를 취하기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최근 이와 관련한 의미 있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습니다(대법원 2020. 3. 26. 결정 2019마6525 가처분이의). 바로 방탄소년단(BTS)의 소속사인 빅히트 엔터테인먼트가 제기한 사건인데요.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몇 해 전 연예 관련 잡지 등을 출판하는 잡지사는 BTS 멤버들의 포토카드, ‘심층 취재판’이라는 부록(특별부록)을 제작·발매할 예정이었습니다. 이 소식을 접한 빅히트 엔터테인먼트는 법원으로부터 특별부록 출판을 금지하는 가처분 결정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해당 잡지사는 이 특별부록은 통상적인 연예 정보제공 기사 정도에 불과하고 화보집에 사용된 사진도 정상적인 경로로 구매했다며 가처분 결정에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수년간의 법정공방 끝에 대법원은 잡지사의 출판행위는 통상적인 정보제공의 차원을 넘어선 BTS 성과 등의 무단사용이라며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부정경쟁방지법)에서 금지하고 있는 부정경쟁행위로 판단했습니다. 가처분 결정이 정당하다며 신속하게 사건을 마무리했지요. 빅히트 엔터테인먼트는 논란이 있는 퍼블리시티권이 아닌 부정경쟁행위를 주장하며 우회적인 방법을 택한 것으로 보이는데요.

대법원은 빅히트 엔터테인먼트가 BTS의 성공을 위해 상당한 투자와 노력을 했고, 이로 인해 BTS와 관련한 명성과 신용, 그리고 고객흡입력이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보았습니다. 부정경쟁방지법에서 보호되는 경제적 이익은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공공영역이 아니어야 하는데, BTS의 성과 등은 빅히트 엔터테인먼트의 경제적 이익이지 공공영역이 아니라고 본 것입니다.

또한 특별부록이 포함된 특별판이 일반적인 판매가보다 상당히 고가라는 점도 잡지사에 불리하게 작용했습니다. 즉 특별부록을 판매하는 것은 단지 통상적인 정보제공의 차원이 아니라 BTS의 성과를 무단으로 이용한 부당경쟁행위라고 본 것입니다. 빅히트 엔터테인먼트는 BTS 멤버들의 화보집을 자체 제작 발매하고 있었는데요. 그런 상황에서 잡지사가 별도의 화보집을 판매하는 것 역시 불공정하다고 봤습니다.

대법원은 잡지사의 출판행위는 통상적인 정보제공의 차원을 넘어선 BTS 성과 등의 무단사용이라며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부정경쟁방지법)에서 금지하고 있는 부정경쟁행위로 판단했습니다. [사진 Pxhere]

대법원은 잡지사의 출판행위는 통상적인 정보제공의 차원을 넘어선 BTS 성과 등의 무단사용이라며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부정경쟁방지법)에서 금지하고 있는 부정경쟁행위로 판단했습니다. [사진 Pxhere]

잡지사는 빅히트 엔터테인먼트의 화보집과 잡지사와 화보집이 성격이 달라 서로 경쟁 관계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만, 인정되지 않았습니다. 잡지사의 화보집 가격이 빅히트 엔터테인먼트의 화보집보다 낮고 수요자도 일부 중복되며, 빅히트 엔터테인먼트의 화보집 수요를 대체할 가능성이 충분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BTS 사건을 엔터테인먼트 업계 일반으로 확대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빅히트 엔터테인먼트가 승소한 것은 BTS라는 훌륭한 성공 사례가 있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부정경쟁행위가 인정되려면 소속사의 상당한 노력과 고객흡입력을 입증해야 합니다. 하지만 BTS처럼 유명한 연예인이 아닌 경우 고객흡입력을 입증하기 만만치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경쟁 관계도 입증돼야 합니다. BTS 사건에서도 빅히트 엔터테인먼트가 자체 화보집을 발매하지 않았다면 경쟁 관계를 인정받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간 퍼블리시티권을 법제화하는 움직임은 있었지만 아직 입법화되지는 못했습니다. 퍼블리시티권이 인정된다면 굳이 고객흡입력과 경쟁 관계가 인정되지 않아도 보다 용이하게 초상이 보호될 수 있을 겁니다. 최근 출판사가 동의를 받지 않고 e스포츠 스타 ‘페이커’의 그림을 그린 것이 문제가 됐는데요. 퍼블리시티권이 인정되지 않으면 이 분쟁 역시 쉽게 해결되지 못할 가능성이 큽니다.

법무법인(유한) 바른 변호사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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