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주 이름 카드 긁었는데 "사용 불가"…헷갈린 재난지원금

중앙일보

입력 2020.05.14 05:00

업데이트 2020.05.14 10:46

정부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첫날인 13일 오전 서울 마포구 망원시장. 연합뉴스

정부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첫날인 13일 오전 서울 마포구 망원시장. 연합뉴스

긴급재난지원금 사용 첫날 소비현장 돌아보니 

정부가 지급한 긴급재난지원금을 사용할 수 있는 첫날인 13일 시민들은 지원금을 반기면서도 정작 지원금을 사용하는 데는 애를 먹었다. 가족카드이기 때문에, 행정구역이 다르기 때문에 등등 각양각색의 이유로 지원금을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이어졌다. 중앙일보 취재진은 이날 서울 강서구 방신시장과 강서수산물시장, 서울 마포구 상암동과 망원동, 신촌 일대를 직접 돌며 재난지원금 사용 실태를 살펴봤다.

[르포]서울 전통시장, 마포 골목상권 직접 돌아보니

세대주 본인 이름 적힌 카드인데 왜?  

긴급재난지원금을 사용하면 신용카드사는 본인에게 즉시 알림 메시지를 전송한다. 사진은 한 소비자가 시장에서 재난지원금을 사용하자마자 받은 메시지. 문희철 기자

긴급재난지원금을 사용하면 신용카드사는 본인에게 즉시 알림 메시지를 전송한다. 사진은 한 소비자가 시장에서 재난지원금을 사용하자마자 받은 메시지. 문희철 기자

지난 11일 삼성카드사에 긴급재난지원금을 신청해 받은 뒤 처음으로 13일 서울 강서구 방신시장을 방문한 박 모 씨는 본인 명의 카드로 시장에서 과일을 샀지만 지원금을 사용했다는 문자메시지를 받지 못했다. 기자의 도움으로 삼성카드사에 확인한 결과 “해당 카드는 세대주인 박 모 씨가 아닌 남편 명의로 발급한 가족카드라 지원금을 사용할 수 없다”는 답을 들었다. 가족카드는 한 사람의 신용으로 다른 가족 구성원이 추가로 발급받아 사용하는 카드다. 박 씨가 세대주이지만, 이날 쓴 카드는 세대주가 아닌 남편의 신용을 기반으로 실적이 잡힌다. 이 카드는 앞면에 세대주인 박 씨의 이름이 기재되어 있었지만, 재난지원금 대상 카드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때문에 박 씨는 본인 명의로 된 다른 삼성카드를 써야 한다.

60대 김 모 씨도 이날 세대주인 남편 명의의 신용카드를 들고 강서수산물시장을 찾았지만 재난지원금을 사용하지 못했다. 알고 보니 김 씨 부부의 주거지가 인천광역시 계양구인 탓이었다. 김 씨의 집은 이 시장에서 불과 직선거리로 5㎞ 떨어져 있지만, 시장과 거주지의 행정구역이 다르면 재난지원금을 사용하지 못한다. 김 씨는 “고기를 먹지 않아 일주일에 한 번은 꼭 여기 온다”며 “집이 시장에서 코앞인데 단지 서울이 아니라는 이유로 지원금을 못 쓰게 하는 건 억울하다는 생각”이라고 하소연했다.

"신용카드 평생 안 썼는데" "어떻게 신청해야 하나"

김기순 무진수산 대표는 "인근 유흥주점·웨딩홀에서 대량 구매하던 손님들이 코로나19 사태 이후 발길을 뚝 끊었다"며 "요즘엔 손님 맞이에 쓰는 시간보다 중앙일보 보는 시간이 더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문희철 기자

김기순 무진수산 대표는 "인근 유흥주점·웨딩홀에서 대량 구매하던 손님들이 코로나19 사태 이후 발길을 뚝 끊었다"며 "요즘엔 손님 맞이에 쓰는 시간보다 중앙일보 보는 시간이 더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문희철 기자

지원금 지급 방식과 사용처에 대한 이해도도 연령별로 엇갈렸다. 이날 오전 서울 마포구 상암동의 한 마트에서 장을 보고 나오던 주부 한가을(38) 씨는 “아무래도 지원금이 나오니까 한개 살 거 두개 사고 이틀에 한 번 나오던 거 매일 나오게 되는 것 같다”며 “가계에는 확실히 도움이 된다”고 만족해했다. 아직 정부 지원금을 신청하고 사용하지는 못했다는 한 씨는 “서울시 지원금은 선불카드로 받아서 사용처를 따로 찾아서 쓰느라 불편했지만, 신용카드는 지원금 사용이 불가해도 일반 결제가 가능하니까 일일이 알아볼 필요가 없어서 더 편할 것 같다”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반면 망원시장 앞에서 만난 이 모 (75)씨는 주민센터에 가서도 지원금을 신청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고 있었다. 이 씨는 “신용카드는 한 번도 써본 적이 없어서 농협에 가서 카드를 새로 발급받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방신시장에서 만난 60대 김 모 씨도 “도대체 어떻게 신청하는지 몰라 은행에 가볼 생각”이라고 했다. 김 씨는 기자의 도움으로 카드사 애플리케이션을 다운받아 지원금을 신청했지만, 이날 사용하지는 못했다. 해당 카드사 상담원은 “오늘(13일) 지원금을 신청하면 15일부터 사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술·담배는 못 쓰게 막아야”

전통시장과는 달리 대학가 등 젊은 유동인구가 많은 상권에선 긴급재난지원금은 ‘남의 일’이다. 13일 이대 앞 골목상권이 텅 비어있다. 추인영 기자

전통시장과는 달리 대학가 등 젊은 유동인구가 많은 상권에선 긴급재난지원금은 ‘남의 일’이다. 13일 이대 앞 골목상권이 텅 비어있다. 추인영 기자

상인들의 표정은 엇갈렸다. 코로나19로 줄어든 손님이 그나마 늘어 숨통이 트였다는 상인들도 있었지만, 일부 상권이나 업종에선 “지원금은 남의 일”이라거나 “오히려 손해”라는 불만도 터져 나왔다. 젊은이들이 밀집한 신촌이나 이대 등 대학가 상인들은 “긴급재난지원금을 여기서 사용할 수 있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쪽은 그런 소비가 거의 없어서 잘 모르겠다”고 했다.

서울 마포구 노고산동의 한 편의점주인 문 모(43) 씨는 “담배 한 보루만 사던 사람들이 이제는 2~3보루씩 사간다”면서 “담배나 술에 쓸 수 있게 풀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 매장에선 전체 매출 중 담배의 비중이 20%에서 30% 이상으로 늘었다. 담배는 편의점에서 마진율이 가장 낮은 품목이다. 문 씨는 “매출이 늘어 겉으론 소비가 늘어난 것 같지만, 점주 손에 남는 건 없다. 정부가 세금이 많이 붙는 담배 판매를 독려해 세금 많이 걷으려고 하는 거 아니냐는 불만이 점주들 사이에 퍼져 있다”고 했다.

망원동에서 빵집을 운영하는 장 모(61) 씨는 “매출은 하나도 안 올랐는데 현금으로 빵을 사 가던 사람들이 전부 카드를 내밀어 오히려 손해”라고 푸념했다. “카드를 쓰면 세금 10%에 카드수수료 2.5%까지 추가로 나간다”면서다. 건너편 청과물 가게는 사람들이 줄을 서서 계산할 정도로 가득했다. 장 씨는 ”지원금을 받으면 주로 식료품을 사러 가는데 빵집은 매출이 크게 늘지는 않는다“면서 “가게 임대료와 제빵사 인건비 등을 내면 남는 게 없다”고 했다.

지원금 지급 등으로 그나마 숨통이 트인다고 기대했던 일부 상인들은 이태원발 코로나 확산 사태를 걱정했다. 강서수산물시장의 김기순 무진수산 대표는 “4월 말 ~ 5월 초 황금연휴를 전후해서 손님이 꽤 늘었는데, 이태원 사태 이후 손님이 다시 30% 정도 줄었다”며 “우리같이 장사하는 사람들에겐 찬물을 확 끼얹은 느낌”이라고 말했다.

추인영ㆍ문희철 기자 chu.inyoung@joongang.co.kr

◇수정: 5월 14일 오전 10시 30분
취재과정에서 실명 사용을 허락한 서울 마포 노고산동 편의점주가 기사 출고 뒤 익명을 요청해와 기사를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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