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문화의 창

국립중앙박물관 3층 세계문화관

중앙일보

입력 2020.05.14 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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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유홍준 본사 칼럼니스트 명지대 미술사학과 석좌교수

유홍준 본사 칼럼니스트 명지대 미술사학과 석좌교수

코로나19 사태는 사회적 거리두기, 생활 속의 방역을 강요하며 벌써 몇 달 째 갑갑하고 고통스런 나날을 보내게 하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인간의 사회적 활동이 적어지면서 환경오염이 현격히 줄어들어 대기가 깨끗해지고, 베니스 항구에 물고기가 돌아오고, 인도에 홍학이 떼로 몰려와 춤추는 모습을 전하고 있다. 인간이 좀 자제하며 살면 지구가 다시 아름다워진다는 것을 알려준다.

코로나19 방역을 보면서
대한민국은 선진국이란다
외형적으로는 선진국 맞다
내용적으론 채울 게 많다

내 주위 사람들 근황을 보면 모든 약속이 취소되면서 갑자기 많은 시간을 얻게 되어 그동안 밀렸던 독서를 하고, 논문을 쓰고, 서랍을 정리하는 쾌거를 이루었다고 한다. 나도 일 년은 걸려야 쓰던 답사기를 석 달 만에 탈고하면서 옛날 선비들이 귀양살이 시절에 글을 많이 쓴 이유를 알 만했다.

그런 중 우리에게 큰 가르침을 준 것은 우리의 방역 시스템과 그 와중에 총선을 치르는 것을 보면서 세계가 앞다투어 대한민국은 진짜 선진국이라고 칭송하는 것이다. 이건 ‘국뽕’같은 얘기가 아니다. 경제적으로는 이미 10위에 들어왔고, 국민소득도 3만 달러를 넘었다. 5·18민주화운동, 6월항쟁, 촛불혁명은 국민들의 민주역량을 증명해주며 K팝을 비롯해 한류가 유럽 한복판에서 중앙아시아 깊숙한 곳까지 퍼져나간 것을 증거로 제시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에게 선진국 의식이 없는 이유에 대해 혹자는 일제의 식민 통치를 받았던 민족적 열등감의 잔재 때문이라고 하고, 혹자는 후진국에서 선진국으로 넘어가는 과정이 너무 짧았기 때문에 체감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래서 대한민국이 선진국임을 대한민국 사람들만 모른다고 말하기도 한다.

듣고 보면 선진국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한국인으로서 체감하기 힘든 것은 삼풍아파트 붕괴, 성수대교 사고, 세월호 침몰, 용산 참사 같은 후진국형 대형사고들이 잊을 만하면 일어나고, 자살률은 세계 최고이고 국민의 행복 만족도는 바닥을 기고 있어 아직 멀었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겉은 선진국이고 속은 후진국인 셈이다. 겸손이 아니라 실제다.

<복희와 여와(伏羲女媧圖)>, 투르판(吐魯番) 아스타나(阿斯塔那)고분 출토, 마(麻)에 채색. 높이 189x79cm, 7세기.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복희와 여와(伏羲女媧圖)>, 투르판(吐魯番) 아스타나(阿斯塔那)고분 출토, 마(麻)에 채색. 높이 189x79cm, 7세기.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문화유산의 전문가 입장에서 구체적 예를 들어본다. 우리 국립중앙박물관은 세계 굴지의  규모다. 미국의 메트로폴리탄 뮤지움, 영국의 브리티시 뮤지움, 프랑스의 루브르, 러시아의 에르미타시 미술관에 이은 다섯째였는데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 중국이 천안문광장 앞 국가박물관을 우리보다 약간 넓게 증축해 여섯째가 되었다.

그럼에도 우리 박물관이 여섯째 간다고 말하기 멋쩍은 것은 관람하고, 이용하는 박물관 문화가 아직도 후진을 면치 못하기 때문이다. 지금 국립중앙박물관 3층에는 ‘세계문화관’이 있다. 실크로드 유물을 중심으로 중국, 일본, 인도, 동남아시아, 이집트 유물까지 전시하고 있다. 그저 구색 맞추기로 꾸민 것이 아니다. 우리 국립중앙박물관은 두 가지 분야에서 세계적 컬렉션임을 자랑한다.

하나는 신안 해저유물이다. 신안 앞 바다에 침몰한 원나라 무역선에서 인양한 유물은 약 3만 점이다. 그중 원나라 도자기만 2만 여 점이다. 이와 별도로 중국 고화폐가 800만 점, 무게로 약 25톤이 있는데 이는 화폐주조 기술이 없던 13세기 일본이 수입해 가던 유물이다.

또 하나는 둔황, 투루판, 누란 등 실크로드 오아시스 도시들에서 출토된 유물들이다. 20세기 초 제국주의 탐험가들이 중앙아시아 유물을 도굴해 간 것은 세계사적인 사건으로 영국의 오렐 스타인, 프랑스의 펠리오, 독일의 르 코크, 스웨덴의 스벤 헤딘, 러시아의 올덴부르크, 미국의 랭든 워너, 그리고 일본의 오타니 고즈이(大谷光瑞)가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그중 오타니 탐험대가 실크로드에서 수집해온 낙타 145마리 분량의 약 5천 점 가운데 3분의 1이 우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그중 주요 유물들이 지금 3층 세계문화관에 전시되어 있다. 우리 손에 들어온 오타니 컬렉션은 당시 일본, 중국, 한국 세 곳으로 분산되어 조선총독부 박물관에 소장됐던 1700여점을 그대로 인수받은 것이다.

그 행위의 도덕성과 유물 소유의 정당성은 나중 문제로 하고 유물의 가치만은 세계적 명성을 갖고 있다. 특히 중국의 천지창조 신화를 그린 7세기 ‘복희와 여와도’가 유명하다. 지금 투루판에는 ‘영원한 휴식’이라는 뜻의 아스타나 고분이 있는데 이 유적지 안마당에는 우리가 소장하고 있는 그림을 바탕으로 만든 상징 조각상이 세워져 있다. 그런데 국립중앙박물관에 가서 이 유물을 본 한국인이 몇 명이나 될까.

나는 지금 우리나라 박물관의 자랑과 동시에 그것을 향유하는 자세의 부끄러움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선진국의 각 도시 시민들은 크던 작던 자기 도시의 박물관을 일 년에 서너 번은 가게 된다. 또 각 박물관은 특별전, 강연회, 음악회 등 이른바 뮤지움 액티비티로 시민들이 철마다 찾아오게 한다. 그게 선진국의 박물관 문화다. 근데 이게 어디 박물관에 국한된 이야기이겠는가.

유홍준 본사 칼럼니스트·명지대 미술사학과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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