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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풍경 들리시나요, 26년 만에 새 앨범 낸 조동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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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제주 살이 16년차인 조동익은 ’아직도 제 가슴 속에 남아있는 희망, 열정, 상처, 분노를 이젠 부는 바람에 다 쓸려 보내고 가슴을 텅 비웠으면 좋겠다“고 음반 발매 소감을 밝혔다. [사진 최소우주]

제주 살이 16년차인 조동익은 ’아직도 제 가슴 속에 남아있는 희망, 열정, 상처, 분노를 이젠 부는 바람에 다 쓸려 보내고 가슴을 텅 비웠으면 좋겠다“고 음반 발매 소감을 밝혔다. [사진 최소우주]

“아직도 ‘어떤날’을 기억해주시는 분들, 제 독집 앨범 ‘동경’을 좋아해 주셨던 분들을 위해 오래전부터 앨범을 내려고 생각했었는데 그러다 26년이 흘러버렸네요. 제 음악이 지치고 힘든 분들에게 위로가 되고 휴식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가족사 담긴 2집 ‘푸른 베개’ 발매 #형 조동진에게 바치는 ‘페어웰…’ #여동생 조동희가 내레이션 참여 #부인 장필순은 1집에 답가 불러

지난 7일 정규 2집 ‘푸른 베개(blue pillow)’를 발매한 가수 조동익(60)의 소회는 간결했다. 1984년 기타리스트 이병우와 함께 프로젝트 그룹 어떤날로 데뷔해 94년 첫 독집 앨범을 내고, 26년 만에 자신의 이름으로 된 음악적 결과물을 내놓았으니, 하고 싶은 말이 많을 법도 한데, 여전히 숫기가 없는 그는 인터뷰를 사양했다. 꾹꾹 눌러 담은 12곡이면 지난 시간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여겼을 터다.

절반이 연주곡이지만 그가 사는 제주의 풍경이 한눈에 펼쳐진다. 11분 48초에 달하는 ‘푸른 베개’를 듣고 있노라면 악몽을 자주 꾼다는 그가 하늘과 바다, 그리고 숲을 벗 삼아 잠을 청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바람의 노래’와 ‘날개 Ⅰ’ ‘날개 Ⅱ’ 등 연작처럼 이어지는 곡들을 듣다 보면 “바람아 난 날개를 잃었다”고 말하지 않아도 그 상실감이 전해진다. 오랜 시간 풍파를 견뎌온 퇴적암처럼 켜켜이 쌓아온 감정이 응축돼 있다고 해야 할까.

그의 개인사뿐만 아니라 가족사를 담은 앨범이기도 하다. 동생 조동희(47)가 내레이션으로 참여한 ‘페어웰. jdj, knh[1972]’는 제목 그대로 먼저 세상을 떠난 작은형 조동진(1947~2017)과 형수 김남희에게 바치는 곡이다. “거의 가진 게 없는 가난뱅이였지만 함께 살게 된” 두 사람의 일상은 “통기타 하드케이스를 눕히고 저녁 밥상을 준비할” 만큼 비루하지만, 음악만큼은 차고 넘친다. 성악가로 시작해 사진가·소설가·영화감독 등 여러 방면에서 활약한 예술가 조긍하(1919~1982)의 자녀들다운 회상법이다.

‘푸른 베개’ 뮤직비디오 장면. [유튜브 캡처]

‘푸른 베개’ 뮤직비디오 장면. [유튜브 캡처]

이따금 제주에서 쓴 음악 편지가 날아온 것도 그맘때부터다. 2005년 동반자 장필순(57)과 함께 제주로 내려가 한동안 음악과는 담을 쌓고 살았지만, 2013년 장필순 7집으로 기지개를 켠 그는 조동진의 유작이 된 ‘나무가 되어’(2016)를 함께 만들었다. 1979년 ‘행복한 사람’으로 데뷔한 조동진이 80년대 들국화·시인과 촌장 등을 배출한 동아기획을 비롯해 90년대 유희열·김현철 등을 발굴한 하나음악과 후신 푸른곰팡이를 이끄는 수장이었다면, 조동익은 프로듀서로서 이들을 받쳐주는 음악적 버팀목이었다.

장필순

장필순

26년 만의 신작이지만 낯설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다. 장필순이 부른 ‘그 겨울 얼어붙은 멜로디로’는 1집 수록곡 ‘엄마와 성당에’에 대한 답가 형식이고, 딸이 6살 때 ‘경윤이를 위한 노래’를 만들었던 그는 이제 아기엄마가 된 딸과 손녀를 위해 ‘송 포 첼라(song for chella)’를 실었다. 경윤씨도 틈틈이 음악 작업을 하고 있다고 하니 3대가 함께 하는 곡이 탄생할지도 모를 일이다. 소속사 관계자는 “조동진의 아들 민구씨와 연습 삼아 합을 맞춰본 듀엣곡도 있다”고 귀띔했다.

이들의 행보를 둘러싼 평단의 반응도 뜨겁다. 1986년 발표한 어떤날 1집(4위)과 2집(11위)을 시작으로 독집 ‘동경’(46위), 프로듀싱한 장필순 5집(15위)과 6집(62위) 모두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2008년 발표)에 올리며 한층 높아진 기대감을 충족시킨다는 평가다. 서정민갑 대중음악평론가는 “자연의 소리를 표방하면서도 전자음악을 자유자재로 활용하는 등 시대에 맞게 현대화하고자 하는 노력과 감각이 돋보인다”고 밝혔다.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는 “세련된 편곡과 사운드로 한국 대중음악을 한 단계 진일보시킨 뮤지션”이라며 “싱글 단위로 발표해 하루에도 1위가 몇 번씩 바뀌는 현재 가요계에서 명반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겨준다”고 짚었다.

지난해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올해의 음반’을 수상한 장필순 8집 ‘소길화’와 지난 3월 발표한 장필순 리메이크 앨범 ‘수니 리워크(soony re:work)’도 나란히 주목받고 있다. 서정민갑 평론가는 “소박한 본령을 지키면서도 묘한 영성을 뿜어내 종교 음악을 듣는 기분”이라고 표현했다. 장필순은 당시 유튜브 라이브로 진행한 인터뷰에서 “집에 마련된 무지개 스튜디오로 들려오는 새소리 때문에 보통 새벽 2시 이후에 녹음한다”며 “제주 생활 16년 차가 되니 자연스레 초록 내음이 나는 음악을 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조동희

조동희

2018년 조촐하게 뒤늦은 결혼식을 올린 조동익과 장필순은 도이키뮤직, 조동희는 최소우주 등 각각 레이블을 설립했다. 제주 로컬 밴드인 사우스 카니발 외에도 다양한 장르에서 활동하는 작가주의 뮤지션을 발굴하는 등 앞으로도 음악공동체로서 따로 또 같이 작업을 이어갈 계획이다. 2011년 1집 ‘비둘기’부터 솔로 가수로서 커리어를 시작한 조동희 역시 서울과 제주를 오가며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이영미 대중문화평론가는 “조동진 사단은 70년대 초중반 전성기를 구가했던 한국 포크의 정통성을 계승하면서도 발라드·재즈 등 동시대 유행하는 음악을 수용해 폭넓게 발전시켜왔다”며 “포크 자체가 대상으로부터 한걸음 물러서 바라보는 관조적 태도를 지닌 만큼 나이가 들수록 더 무르익은 음악을 선보일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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