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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개발 시작돼도 못 떠나는 길고양이…지자체 구조 나선다

중앙일보

입력

재개발정비구역으로 지정된 수도권 지하철 1호선 외대역 부근. 캣맘 등에 따르면 철거를 앞두고 쓰레기 등이 방치된 이곳에는 고양이 수백마리가 남아 있다. 심석용 기자

재개발정비구역으로 지정된 수도권 지하철 1호선 외대역 부근. 캣맘 등에 따르면 철거를 앞두고 쓰레기 등이 방치된 이곳에는 고양이 수백마리가 남아 있다. 심석용 기자

지난 2일 오후 3시 서울시 동대문구 이문동 한 건물 4층. 고양이 망 60여개가 쌓여 성채를 이루고 있었다. 망을 덮은 담요를 걷어내자 웅크려 있던 고양이가 몸을 일으켰다. 모두 이문동 재개발 정비사업지구에서 동물 보호 활동가에게 구조된 고양이다. 재개발 지역으로 지정된 수도권 지하철 1호선 외대역 부근은 건물 뼈대만 남아있는 곳이 많다. 캣맘(길고양이에게 밥을 챙겨주는 이) 등에 따르면 주민들이 떠난 이곳에는 고양이 수백 마리가 오간다. 캣맘 문성실(55·여)씨는 “재개발 지역에 고양이가 남아 있다는 말을 듣고 구조에 나섰지만 수가 많고 포획틀 ‘통덫’ 등 장비가 부족해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서울시 동대문구 이문동 재개발 지역에 있던 고양이 중 일부는 동물 보호 활동가에 의해 구조됐다. 심석용 기자

서울시 동대문구 이문동 재개발 지역에 있던 고양이 중 일부는 동물 보호 활동가에 의해 구조됐다. 심석용 기자

인천시 남동구 구월동에도 철거 예정인 재개발 구역이 있다. 지난 3월 구월동 농산물 도매시장이 이사하면서 빈 건물만 남은 곳이다. 사방이 가림막으로 둘러싸인 이곳엔 길고양이 수십 마리만 남았다. 이들은 가림막 사이 빈 틈새로 오가며 주로 밤에 모습을 드러낸다. 끼니는 이틀에 한 번 이곳을 찾는 캣맘이 책임진다. 캣맘 유은영(48ㆍ여)씨는 “폐쇄된 시장에 고양이가 방치돼 있다는 소식을 듣고 12명이 번갈아 가며 고양이를 돌보고 있다”며 “철거 날짜가 정해지고 중성화가 이뤄지기 전까진 계속 돌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주 매뉴얼·포획 후 중성화… 대응 나선 지자체

 구월동 농산물 도매시장이 떠난 자리에 남은 고양이들은 캣맘들이 돌보고 있다. 심석용 기자

구월동 농산물 도매시장이 떠난 자리에 남은 고양이들은 캣맘들이 돌보고 있다. 심석용 기자

재개발 지역 내 길고양이 문제 해결을 위해 각 지자체가 나섰다. 영역 동물인 고양이는 재개발이 시작돼도 스스로 구역을 떠나지 않아 이주를 위한 지자체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면서부터다.

서울시는 이번 달부터 재개발 구역 내 길고양이를 구조하는 시범사업을 시작한다. 시 내 재개발 구역 중 두 곳의 길고양이를 포획해 중성화 수술을 한 뒤 분양을 하고 남은 이들은 풀어주는 방식이다. 시는 동물 행동권 카라를 사업자로 선정하고 수의학 교수 등을 포함한 협의체를 만들어 사업을 진행할 계획이다. 시 관계자는 “이 사업으로 재개발 내 길고양이 등을 보호할 수 있는 매뉴얼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며 “구청·활동가와 협력해 올해 안에 사업을 마무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경기도는 경기도 동물 보호 조례 내 ‘재건축 재개발지역 길고양이 관리에 관한 사항’과 관련된 세부적 지침을 마련해 실시할 방침이다. 인천시는 각 구에 재개발 지역 등에 거주하는 중성화 수술이 필요한 고양이 수 파악에 나섰다. 부산시 동래구는 재개발구역 내 고양이 구조를 위해 지난해 7월 민간 동물단체 협의체인 ‘온천냥이 구조단’과 함께 온천냥이 구조센터를 열었다. 동래구에 따르면 지난해 말까지 고양이 500여 마리를 포획해 중성화했고 올해도 이번 달부터 345마리를 포획해 중성화할 예정이다.

“지자체, 갈등 조절 역할 해야”

캣맘들이 서울시 동대문구 이문동 재개발 정비구역에서 구조한 고양이들. 파란색으로 표기된 고양이는 입양을 가거나 임시보호처를 구한 이들이다. 심석용 기자

캣맘들이 서울시 동대문구 이문동 재개발 정비구역에서 구조한 고양이들. 파란색으로 표기된 고양이는 입양을 가거나 임시보호처를 구한 이들이다. 심석용 기자

그러나 조례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정우 동물 문화 네트워크 캣통 대표는 “조례가 있더라도 시나 구청에서 조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라며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에 재개발 구역 내 유기동물을 보호할 의무가 포함돼야 실효성이 있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관련 법이 제정되지 않으면 재개발 지역 내 고양이로 인한 갈등을 비롯한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재개발 지역인 서울 백사마을을 연구한 김성호 한국 성서대학교 교수는 “재개발 지역이 철거에 들어가면 습성상 철거 현장을 떠나지 못한 고양이는 지하로 들어가 매몰되는 등 사고가 날 우려가 크다”면서 “재개발 지역 내 고양이를 옮기는데 시간과 인력이 많이 드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조희경 동물자유연대 대표는 “길고양이 구조사업이 재개발 일정을 늦추는 등 주민에게 실질적 피해를 주는 경우는 드물다”며 “지자체가 재개발 이주 지역 내 갈등 조정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심석용·편광현·윤상언 기자 shim.seok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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