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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최선희의 문화 예술 톡

코로나와 에드워드 호퍼의 고독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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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최선희 초이앤라거 갤러리 대표

최선희 초이앤라거 갤러리 대표

스위스에서 5월 11일을 아이들의 재 등교 날짜로 공식 발표했다. 5주간의 자가 격리가 해제되는 것이다. 같은 날, 임시 휴관했던 미술관이 11일 다시 문을 열면서 중단됐던 미국 화가 에드워드 호퍼(1882~1967) 전시(바이엘러 미술관·그림)를 7월 말까지 개최한다는 뉴스레터를 받았다. 임시 휴관전 7주 동안 이미 10만 명의 방문객이 다녀간 이 전시에 다시 몰려들 관람객들을 생각하면 코로나 재발에 대한 우려가 앞서지만, 집에서 3시간 거리의 바젤 행을 계획하는 이 마음을 막을 길이 없다. 호퍼의 전시는 늘 최다 관람객 기록을 세운다. 인간의 고립과 고독을 그린 화가 호퍼의 전시에 수십만의 군중이 몰리니 참 아이러니하다.

에드워드 호퍼 ‘케이프 코드의 아침’.

에드워드 호퍼 ‘케이프 코드의 아침’.

호퍼의 그림들은 전 세계가 록다운을 진행하며 더 유명해졌다. 뉴욕이나 파리와 같은 대도시의 아파트에 외롭게 갇혀버린 많은 사람들의 모습은 호퍼가 즐겨 그렸던 고독한 개인들의 초상화들과 너무도 많이 닮았다. 텅 빈 아파트 창가에 홀로 앉아 있는 여인, 어두운 밤에 희미한 불빛이 비치는 주유소에서 주유를 하는 남자, 뉴욕의 아파트 거실에서 각자 신문을 보는 남자와 책을 읽는 여자의 모습 등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호퍼의 그림은 호황을 누리던 미국 경제가 1930년대 대공황을 겪으면서 미국 사회에 만연했던 개인의 빈곤과 상실감, 미래에 대한 불안 등을 엿보게 해준다. 현대에 와서는 현대화와 세계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길을 잃고 고독해져만 가는 우리 자신들의 모습을 거울처럼 비춰주기도 한다.

하지만 코로나로 인한 격리와 사회적 거리 두기가 호퍼의 그림처럼 고독만 가져다준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가장 가까운 사람들과의 거리를 좁혀주기도 했다. 아침에 출근하고 저녁에 퇴근하고 밥 한 끼도 같이 못하면서 살아온 가족들이 함께 모여 밥을 먹고 요리를 하고 산책을 하게 되었다. 주말 저녁에는 오랫동안 못 만났던 가족들 혹은 친구들과 화상 채팅을 하며 밀린 소식을 나누기도 한다. 멀어졌던 동물들마저 사람들이 사라진 거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잊고 살았던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 뿌연 먼지 속에 희미하게 보였던 자연과의 거리는 한층 더 가까워졌다. 사람들은 자신과 가족, 그리고 타인의 생존을 보호하기 위한 격리 상황 속에서 희망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해왔다.

호퍼의 그림들이 옛날을 생각해보라고, 인간 본연의 존재를 들여다보라고 이야기하듯, 코로나 시대의 현대인들의 초상은 우리 삶에서 정말 중요한 것들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사는 삶이 가능하지 않았냐고, 우리 같이 생각해보자고 말을 건넨다. 고립이나 외로움을 표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목격한 것을 그렸을 뿐이라고 했던 호퍼의 고요한 그림은 정작 인간의 실존을 두드리는 커다란 울림을 내포하고 있다.

최선희 초이앤라거 갤러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