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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방 트로트 과열 경쟁…SBS·TV조선 성명전까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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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13일 첫 방송을 앞둔 ‘뽕숭아학당’. 레전드가 트로트 노하우를 전수하는 형식이다. [사진 TV조선]

13일 첫 방송을 앞둔 ‘뽕숭아학당’. 레전드가 트로트 노하우를 전수하는 형식이다. [사진 TV조선]

트로트 열풍을 둘러싼 기 싸움이 치열하다. 13일 수요일 오후 10시에 TV조선 신규 예능 ‘뽕숭아학당’ 편성 소식이 알려지자 SBS ‘트롯신이 떴다’ 측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현재 ‘트롯신’에 출연 중인 가수 주현미·설운도·김연자·장윤정과 MC 붐 등 출연진 5명이 겹친 것. 같은 시간대 각기 다른 방송사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겹치기 출연’을 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양측은 각각 입장문을 통해 불쾌감을 표시했다. 중량급 트로트 가수를 ‘트롯신’ ‘레전드’ 로 부르며, 모셔가기 경쟁을 벌이며 빚어진 일이다.

TV조선의 트롯맨 F4 ‘뽕숭아학당’ #SBS ‘트롯신’과 같은날 동시 편성 #설운도·장윤정 등 5명 겹치기 출연

‘트롯신이 떴다’. 베트남 등 해외 공연을 통해 K트로트의 매력을 전파하는 것이 목적이다. [사진 SBS]

‘트롯신이 떴다’. 베트남 등 해외 공연을 통해 K트로트의 매력을 전파하는 것이 목적이다. [사진 SBS]

SBS 측은 11일 “네 분의 트롯신은 동시간대에 편성되지 않는다고 전해 듣고 촬영을 마쳐 겹치기 출연 논란이 야기된 점에 황당해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이에 TV조선 측은 “네 분의 레전드가 각각 1회씩 특별출연하는 것 외에도 다수 레전드가 출연하는 전혀 다른 포맷”이라며 “해당 레전드의 출연 분량이 동시간대 송출되는 상황은 없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SBS는 12일 “출연자들이 심각한 심리적 고통을 호소한다”며 “이들이 더는 피해를 보지 않게 TV조선 측이 대승적 차원에서 적절한 조치를 취하길 바란다”고 추가 입장을 발표했다.

지난해 ‘내일은 미스트롯’을 시작으로 트로트 붐을 일으킨 TV조선 측은 이를 활용한 기획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지난 3월 ‘내일은 미스터트롯’ 종영 이후 임영웅·이찬원·영탁·정동원·김호중·김희재·장민호 등 톱 7을 앞세워 ‘신청곡을 불러드립니다-사랑의 콜센타’를 지난달 론칭했고, 이번엔 임영웅·이찬원·영탁·장민호 등을 ‘트롯맨 F4’로 묶어 작사 작곡을 비롯해 무대매너·패션 감각·퍼포먼스 등을 배우는 ‘뽕숭아학당’을 만든 것이다. 이번 겹치기 출연으로 문제가 된 가수들은 ‘미스트롯’과 ‘미스터트롯’에도 마스터와 레전드 등으로 출연한 바 있다.

‘악인전’에 출연한 송가인. ‘오! 나의 파트, 너’(MBC) 등 다양한 음악 예능에 출연 중이다. [사진 KBS]

‘악인전’에 출연한 송가인. ‘오! 나의 파트, 너’(MBC) 등 다양한 음악 예능에 출연 중이다. [사진 KBS]

35.7%(닐슨코리아 기준)로 종영한 ‘미스터트롯’에 이어 ‘사랑의 콜센타’까지 20%대 시청률을 기록하자 결승진출자 ‘톱 7’을 향한 타 방송사의 러브콜도 이어졌다. JTBC ‘아는 형님’과 ‘뭉쳐야 찬다’는 이들의 출연으로 각각 15.5%, 10.8% 등 자체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 김교석 대중문화평론가는 “영탁·남승민·정동원 등 결혼 생활과는 전혀 관계없는 출연자가 ‘아내의 맛’(TV조선)까지 나오는 건 지나치다”며 “이런 겹치기 출연이 계속되면 최고조를 맞은 트로트 유행을 되려 단축시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평론가는 “‘트롯신’은 ‘미스터트롯’과 ‘비긴어게인’(JTBC)을 합친 포맷이었지만 해외 버스킹으로 K트로트를 알린다는 명분이 있었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해외 공연이 불가능해지면서 정체성을 잃고 표류하게 됐다”고 밝혔다. 베트남 이후 온라인 버스킹으로 대체되면서 시청률도 1회 14.9%에서 9회 9.5%로 내려가고 있다.

하나가 뜨면 너도나도 베끼는 ‘미투’ 전략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높다. 지난해 주부 대상 오디션 ‘보이스퀸’을 선보인 MBN은 오는 7월 ‘보이스트롯’ 론칭을 알렸다. 일반인이 아닌 스타 참여 오디션이다. 심사위원은 남진·김연자·혜은이·진성·박현빈으로 트로트 예능 단골손님.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모두 한쪽으로 쏠리면 시청자도 금세 식상해진다. 제살깎아먹기”라고 지적했다. 이어 “트로트 가수의 경우 예능인보다 인력풀이 더 좁아 이런 현상이 두드러지는 것”이라며 “지금의 트로트 열풍이 송가인·임영웅 등 새 얼굴을 발굴해 가능했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런 현상은 사그라지지 않을 듯하다. ‘미스트롯’ 우승자 송가인의 소속사인 포켓돌스튜디오는 지난 3월 “제안받은 트로트 예능만 20개”라고 공식 발표했다. 소속사 측은 지난달 “SBS와 신규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 제작을 논의 중”이라고 밝혔으나 이달 초 “KBS와 손잡고 ‘트롯 전국 체전’을 제작하게 됐다”고 발표했다. ‘트롯 전국 체전’에 대해 “전국 각 지역에 숨어있는 진주 같은 신인을 발굴해 가수와 작곡가들의 선의 경쟁 속 새로운 트롯 신인을 탄생시키는 신선한 구성”이라고 설명했지만, 이 역시 미스트롯 후속인 ‘뽕 따러 가세’(TV조선)와 크게 다를 바 없는 포맷이다.

특정 프로그램 출신이 모든 행사를 독점하면서 외려 신인이 클 수 없는 구조가 됐다는 지적도 있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일부 출연자를 빼면 이미 데뷔해 활동하던 기성 가수가 태반”이라며 “결국 누가 스타성이 더 큰가, 더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는가의 싸움이 된 셈”이라고 밝혔다. 그는 “트로트 부흥 측면에서 보면, 모든 가수가 같은 보컬 트레이너 밑에서 훈련받은 듯한 스타일로 획일화되면서 퇴화한 부분도 있다”며 “이 기회를 못 살리면 또 다른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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