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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노 젓다가 갑자기…말러 머릿속에 떠오른 교향곡 테마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이석렬의 인생은 안단테(14)

1908년 8월 19일 말러의 일곱 번째 교향곡이 프라하에서 초연되었다. 이때의 연주는 체코필하모닉오케스트라가 맡았다. 이날 공연에는 기라성 같은 음악인들이 참석하였는데 브루노 발터, 오토 클렘페러, 알렉산더 젬린스키 같은 인물들이 7번 교향곡의 초연을 지켜보았다.

그때 말러는 이 대작을 직접 지휘했다. 체코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기념연주회에서 지휘를 위촉받았던 말러는 그 연주회에서 자신의 새로운 교향곡을 선보인 것이다. 말러가 야심차게 준비한 이 무대는 많은 청중의 박수를 받았다.

이 교향곡이 음악의 수도 빈에서 연주된 것은 이듬해인 1909년 11월 3일이었다. 이때 그 유명한 아놀드 쇤베르크가 공연을 관람했다. 당시의 연주는 쇤베르크를 상당히 감동시켜서 공연을 본 후에 쇤베르크는 말러에게 이렇게 편지를 썼다.

“어떤 악장이 가장 마음에 들었는지는 도저히 얘기할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이 투명하게 보였습니다.”

말러의 교향곡 제7번은 ‘밤의 노래, Nachtmusik’이라고도 불린다. 이 교향곡은 진취적인 작곡 기법과 다채로운 분위기의 묘사가 빼어난 것으로 유명하다. [사진 Pixabay]

말러의 교향곡 제7번은 ‘밤의 노래, Nachtmusik’이라고도 불린다. 이 교향곡은 진취적인 작곡 기법과 다채로운 분위기의 묘사가 빼어난 것으로 유명하다. [사진 Pixabay]

쇤베르크는 이 교향곡의 모든 악장을 마음에 들어 했으며 음악의 인상들이 투명한 멋스러움으로 가득 차 있다고 보았다. 조성의 변화가 대담하게 펼쳐지고 여러 악장에서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는 양상들이 쇤베르크에게는 상당히 인상적이었던 것 같다.

말러의 교향곡 제7번은 ‘밤의 노래, Nachtmusik’이라고도 불린다. 이 교향곡은 진취적인 작곡 기법과 다채로운 분위기의 묘사가 빼어난 것으로 유명하다. 이 작품은 모두 5개의 악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중에서 ‘밤의 노래’라는 제목이 붙은 것은 2악장과 4악장이다.

작곡가 말러는 창작을 위해 휴가를 가곤 했다. 자연 속에서 휴식과 상상력을 즐기면서 작품을 만들곤 했다. 1904년에는 남부 티롤 지방을 여행했다. 이때 ‘밤의 노래’라는 두 개의 악장들이 떠올라 그것들을 악보에 적었다.

이듬해에는 이 두 개의 악장들과 함께할 다른 악장들을 작곡해야 했다. 말러는 그런 악장들을 만들기 위해 다시 여행길에 올랐다. 그렇지만 여행을 가서도 악상들은 쉽게 떠오르지 않아서 작곡가는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오스트리아의 작곡가이자 지휘자 구스타프 말러. [중앙포토]

오스트리아의 작곡가이자 지휘자 구스타프 말러. [중앙포토]

그러다가 작곡을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을 때의 일이다. 말러는 배를 타고 노를 젓기 시작했는데 그때 1악장의 악상이 떠올랐다고 한다. 창작의 과제가 풀리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마이에르니히로 돌아간 후에 4주 동안 1, 3, 5 악장을 작곡해 친구인 아틀러에게 곡의 완성을 알렸다.

교향곡 제7번 ‘밤의 노래’는 말러의 실험 정신이 고도로 발휘된 작품이라고 평가받는다. 이 작품은 난해하다는 이유로 여러 사람에게 혹평을 받기도 했다. 말러의 지인 중에서도 이 곡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보인 인물들이 있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교향곡 제7번은 진취적인 관현악법을 보여주었고, 다양한 음색들로 멋진 인상들을 펼쳐 보였기에 관현악 예술의 역사에서 걸작으로 남았다.

1908년 프라하에서 초연될 당시 말러의 지지자들은 이 교향곡에 ‘밤의 여행’이라는 제목을 붙이자고 제안했다. 낭만적인 밤의 상념과 이 교향곡을 연결하려고 했던 것이다.

말러의 교향곡 제7번은 커다란 상념의 세계이다. 이 교향곡은 빼어난 상념의 날개를 펼쳐서 거대한 음악의 세계로 이끈다. 말러가 남긴 탐미적인 ‘밤의 노래’가 우리에게 펼쳐지는 것이다.

음악평론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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