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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자녀 앞에서 분노 폭발, 무엇을 가르쳐 줬을까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손민원의 성인권이야기(35)

긍정적 훈육 두 번째 글에서 자녀 양육이라는 긴 여행 중에 부모와 자녀 사이에 어떤 청사진(장기적 목표)을 가져야 하는지, 부모의 가치관과 신념이 자녀가 성장하는 데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이야기했다. 이번엔 긍정적 훈육에 다가가기 위해 피할 수 없는 스트레스, 분노를 어떻게 받아들일지를 고민해 보자.

중학교 1학년인 아들은 어제 감기 기운이 있다고 조퇴했다. 오늘도 미열이 조금 있고 아파서 학원을 하루 쉬어야겠다고 한다. 엄마는 내일 중요한 발표가 있어서 오늘도 일찍 잠들기는 틀린 것 같다. 새벽 2시까지 겨우 일을 마치고 잠시 눈을 붙였다. 며칠째 제대로 잠을 못 자 몸의 컨디션은 아주 엉망이다.

천근만근인 몸을 이끌고 일어나 간단하게라도 아침을 준비해 아들에게 먹이고 학교에 보낸다. 오늘은 날씨가 영하로 떨어진다고 하던데…. 아들이 얇은 교복만 입고 나서기에 옷 때문에 실랑이를 벌였지만,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입고 나가버린다. “추운데 지가 고생하지 뭐!”라고 하면서도 내심 감기가 더 심해지지 않을까 걱정이다.

회사에서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쳐 퇴근했는데, 학원을 빠지고 게임에 열중하고 있는 아들이 눈에 들어왔다. 순간, 오늘 내내 쌓여 있던 스트레스를 만만한 아들에게 폭발하고 말았다. [사진 pexels]

회사에서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쳐 퇴근했는데, 학원을 빠지고 게임에 열중하고 있는 아들이 눈에 들어왔다. 순간, 오늘 내내 쌓여 있던 스트레스를 만만한 아들에게 폭발하고 말았다. [사진 pexels]

회사에 가서 어제 준비한 자료를 한번 살펴보고 발표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이미 그러기에는 늦었다. 서둘러 버스정류장까지 뛰어갔지만 내가 타야 할 버스는 저 앞에 지나갔다. 10분을 더 기다려야 한다. 회사에 도착해 숨을 돌리고 발표 자료를 열기 위해 USB를 꽂았는데, 아! 이를 어째. 어제 늦게까지 준비한 자료가 하나도 저장돼 있지 않았다….

그렇게 어찌 하루를 보내고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쳐 퇴근했다. 현관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가니 오늘도 학원을 빠지고 피자, 콜라와 함께 게임에 열중하고 있는 아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 순간, 나는 오늘 내내 쌓여 있던 스트레스의 시뻘건 분노가 만만한 나의 아들에게 폭발하고 말았다. 단지 내가 원하는 공부 대신 피자를 먹으며 게임을 했다는 이유로…. 그 이후의 상황은 상상에 맡기도록 하겠다. 이 상황은 수년 전 내가 겪은 상황이다. 이런 비슷한 일이 수십 가지도 넘지만 나뿐 아니라 모든 부모가 아이의 양육 과정에서 부딪치게 되는 현실적인 문제들이다.

이때 나타나는 내 몸의 현상은 어떤 모습일까? 얼굴이 붉어지고 심박 수가 올라가 호흡이 빨라진다. 동공이 커지고 혈압은 높아진다. 머리털은 곤두서고 입과 목이 마르다. 속이 울렁거리고 식욕은 떨어지며 땀샘이 열린다. 경계심과 반응도도 증가하고 통증의 내성을 높이기 위해 엔도르핀이 분비된다. 감정은 짜증과 화, 물리력을 행사하고 싶은 충동, 복수심에 휩싸이고 목소리는 날카로워지고 커진다. 인간의 몸은 아주 원시적이어서 감정이 과열된 때 자동으로 내 앞에 무기를 든 적이 나를 위협하고 있는 상황과 똑같은 시스템으로 경보기를 작동하고 있는 상태가 된다.

감정은 내 몸의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1960년대의 예일대 신경과학자 폴 매클린(Paul MacLean)은 ‘뇌의 삼위일체’ 이론을 발표했다. 이 이론은 복잡한 뇌를 너무 단순화한 경향성이 있긴 하지만, 인간의 뇌를 아주 단순화시켜 설명해 사람의 감정과 스트레스를 이해하는 데는 아주 유용하다.

'뚜껑이 열리면' 포유류의 뇌와 파충류의 뇌가 전면에 나서서 원시적 생존의 메커니즘이 작동한다. 영장류의 뇌에서 담당하는 언어 능력, 사고 능력, 공감 능력은 기능하지 않는다. [사진 pixabay]

'뚜껑이 열리면' 포유류의 뇌와 파충류의 뇌가 전면에 나서서 원시적 생존의 메커니즘이 작동한다. 영장류의 뇌에서 담당하는 언어 능력, 사고 능력, 공감 능력은 기능하지 않는다. [사진 pixabay]

이 이론은 뇌가 세 층위를 이루고 있다고 말한다. 뇌의 가장 앞에는 신피질이 있는데 그것은 언어, 사고, 공감, 자기 통제 같은 고차원적 기능을 담당한다. 이를 우리는 전두엽이라 부르고 ‘영장류의 뇌’라고 부른다. 그 아래에 위치한 대뇌변연계는 ‘포유류의 뇌’라고 칭하는데 행복감, 슬픔, 분노, 좌절감, 흥분, 기쁨 등을 느끼게 하는 편도체, 시상하부, 해마 등이 있다. 그리고 가장 아래에는 ‘파충류의 뇌’라 불리는데 숨쉬기, 체온 조절, 갈증을 느끼는 것 등 사람이 사는 데 가장 기본적인 기능을 담당한다. 인간의 뇌는 뒤쪽의 하층의 뇌에서 상층의 뇌로 점차 발달하며 성장한다. 전두엽은 20세 후반까지 발달을 멈추지 않는다.

내가 뚜껑이 열리는 순간 나는 포유류의 뇌와 파충류의 뇌가 전면에 나서서 원시적 생존의 메커니즘이 작동한다. 그래서 영장류의 뇌에서 담당하는 언어 능력, 사고 능력, 공감 능력은 기능하지 않는다. 감정이 시키는 대로 소리를 지르고, 명령하고, 협박하고, 문을 세게 닫기도 하고 심지어 때리기까지 한다.

그런 부모의 행동을 보는 아이의 감정은 어떨까? 아이는 부모보다 더 하층 뇌로 움직인다. 퇴근하고 돌아온 부모가 감정을 폭발시켜 소리를 지르고, 감사 운운하며 설교하고, 명령하고, 협박했을 때 아이는 “우리 엄마(아빠)가 오늘 스트레스가 많으신가 보네. 내가 반성하고 잘해야지”라고 생각할까? 천만의 말씀이다. 아이는 더욱 자신의 감정과 몸을 통제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 왜냐하면 영장류의 상층 뇌는 20세가 넘도록 발달하는 중이기 때문이다.

그럼 우리는 부모라고 해서 무작정 참아내는 것이 옳은 방법인가? 분명히 그렇지 않다. 부모가 건강하지 못한 상태라면 그것은 아이에게도 연관이 된다. 누구나 감정적으로 화가 날 수 있다. 그렇지만 그에 따르는 행동은 내가 선택해야 한다.

그럼 나는 정말 화가 많이 날 때 어떤 행동을 취할 것인가? 상층 뇌가 통제를 잃고 감정이 폭발해 어마무시한 말을 마구 날릴 것인가? 머릿속 뚜껑이 열리는 순간 내가 어떻게 평정심을 되찾아 생각의 뇌가 작동하도록 할 것인가? 그러고 나서 내가 정말 힘들다는 감정을 어떻게 아이에게 전달할 것인가? 이것이 자기조절이다. 나의 자기조절 기술을 어떻게 발달시킬 것인가? 쉽지 않지만 해야 하는 과제다.

아이는 성장 과정에서 수년에 걸쳐 부모가 어떻게 자기 조절을 하는지 그것을 보고 또 배운다. [사진 pixabay]

아이는 성장 과정에서 수년에 걸쳐 부모가 어떻게 자기 조절을 하는지 그것을 보고 또 배운다. [사진 pixabay]

내 아이와 한바탕 소동을 벌이고 나서 얼마 후 초등학교 학생들의 2박 3일 캠프에서 만난 한 학생의 행동은 스트레스 상황에서 내가 어떻게 대처할지를 깊게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됐다. 그 당시 5학년이던 여자아이는 하루 종일 즐겁게 지냈는데, 저녁식사를 하고 저녁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내내 표정이 어둡고 불안한 모습이었다. 무슨 일인지 물어보니 그 아이는 부모와 떨어져서 잠자는 것이 처음이라 겁이 나고 흥분되기도 한다는 것이었다.

“그럼 어떻게 도와주면 좋을까?” 궁리하는데 아이는 놀라운 말을 했다. “그렇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선생님, 저 엄마랑 ‘비밀신호’ 연습했어요. 그거 해볼래요. 보실래요? 먼저 손을 가슴과 배에 얹으세요. 그리고 숨을 들이쉬고 내쉬면서 걱정덩어리를 날려버리는 거예요. 간단하죠? 벌써 엄마랑 며칠 동안 연습해 봤어요”라면서 미소를 지었다.

이 아이와 부모는 감정에 휩싸여 평정심을 잃지 않는 도구를 생각하고 아마 본인 또한 실천하는 중이었을 거라고 짐작한다. 나는 며칠 전 내가 했던 행동을 떠올리며 그때 ‘한 숨 돌리기’를 해야 했는데… 하는 생각에 다다르게 됐다. 그 이후 정말 분노가 한계 상황까지 올라갈 때 나만의 ‘한 숨 돌리기’를 하려고 한다. 여기서 힘이 나온다. 나는 한 숨을 돌리고 나면 모든 상황이 달라지는 경험을 많이 한다.

‘생각의 뇌’로 가기 위해 이 아이는 호흡했고, 어떤 이는 물을 마시기도 한다. 기도하기도 하고 마당으로 나가기도 하며…. 무엇이든 생각의 뇌로 들어오게 하는 나의 방법을 취하는 도구를 갖고 부딪치는 상황에서의 연습이 필요하다.

아이는 성장 과정에서 수년에 걸쳐 부모가 어떻게 자기 조절을 하는지 그것을 보고 또 배운다. 그 아이는 살아가면서 힘들고 분노의 감정이 밀려와도 무의식적인 충동을 맹목적으로 따르기보다는 책임감 있는 행동을 하게 된다. 긍정적 훈육을 한다는 것은 부모가 아이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이 아니라 자녀 스스로가 문제 해결 능력을 키울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자신의 감정을 잘 컨트롤할 수 있는 중요한 기술을 배우도록 돕는 것이다.

성·인권 강사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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