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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선동 정치, 중국서 싹 트는 자율적 시민사회 위협”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미국의 비영리 싱크탱크인 베르그루엔 연구소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놓고 중국 때리기에 나선 백악관과 공화당에 경고했다. 외부에서의 중국 압박은 오히려 중국 내 시민사회의 출현을 저해한다는 비판이다.

미 싱크탱크 ‘베르그루엔’ 경고 #“중국 사이버공간은 21세기 천안문 #트럼프 정부의 중국 때리기는 #자생적 여론 등장 막는데 악용 우려”

베르그루엔 연구소의 공동설립자이자, 이 연구소와 워싱턴 포스트가 제휴해 만든 매체인 월드포스트의 편집장인 네이선 가델스는 지난 8일(현지시간) “중국에서 싹트기 시작한 자율성에 대한 가장 큰 위협은 중국 당국이 아닌 미국의 선동 정치”이라고 지적했다. 가델스는 월드포스트 기고에서 최근 폴리티코가 보도했던 공화당의 이른바 ‘코로나 빅 북(Corona big book)’ 문건을 거론하면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나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공화당 전략가들이 하는 것처럼 중국을 악마화할 경우 다가오는 선거에선 지지층에 효과적일지는 몰라도 중국에서 막 등장하는 시민사회의 연약한 기초를 약화하는 유해한 효과를 초래한다”고 비판했다. 폴리티코에 따르면 해당 문건은 공화당 인사들에게 중국을 바이러스 은폐와 전파의 책임자로 공격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가델스는 중국 때리기를 바이러스에 비유하며 “미국 정치 지도자들이 소개한 국수주의자들의 희생양 만들기라는 정치적 바이러스는 중국 내 맞상대라는 항체를 움직이게 만들 뿐”이라고도 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등은 코로나19를 놓고 중국 우한 바이러스 연구소 발원설을 내놓으며 중국 압박 수위를 높여왔다.

미·중 충돌 속 가델스는 코로나19를 겪으면서 등장한 중국인들의 목소리 찾기에 주목했다. 그는 기고에서 “중국 당국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극히 활동적인 중국의 사이버 공간은 21세기의 천안문 광장이 됐다”고 진단했다. 실제로 중국 당국의 엄격한 통제에도 불구하고 우한(武漢)의 의사 리원량(李文亮)이 신종 바이러스의 출현을 처음으로 알린 게 중국의 소셜미디어인 웨이보였고, 그를 괴담 유포자로 몰았던 당국에 대한 비난이 퍼진 공간도 웨이보였다. 물론 중국 당국은 여전히 오프라인은 물론 온라인 공간에서도 엄격한 통제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중국 때리기는 중국 내 자생적 여론의 등장을 막는 데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다. 가델스는 “(중국 당국에) 화를 낼만도 한 네티즌들은 중국이 세계에 위협이라고 주장하는 미국 손아귀에서 놀아나고 있다고 쉽게 비춰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이 개입하거나 압박할 경우 오히려 소련 내 강경파를 자극해 개혁·개방에 나선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입지를 약화시킬 것으로 여겼던 조지 H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사례를 들며 “자제가 역사를 전진하게 했다”고 평가했다.

물론 가델스는 “미국이 물러서 있으면 중국이 자유 민주주의로 진화할 것이라는 얘기는 아니다”라고 했다. 그럼에도 그는 “중국에서 표현의 자유 보장과 더 자율적인 시민사회로의 변화는 변화를 주도한 이들이 얻어야 가능하다”며 “외부에서 때리는 것은 오랜 문명의 역사를 가진 중국은 커녕 자존심을 가진 어떤 나라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없다”고 강조했다.

채병건 정치외교안보 에디터 mfem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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