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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교수 왜 스파이 됐나···中서 금기어 된 '천인계획 마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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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지RG'는 '알차고 지혜롭게 담아낸 진짜 국제뉴스(Real Global news)'라는 의미를 담은 중앙일보 국제외교안보팀의 온라인 연재물입니다.

“중국 인터넷에서 ‘천인계획(千人計劃)’이란 키워드로 검색이 안 된다.”

지난달 28일 중국 베이징에 주재하는 한 베테랑 외신기자가 일기처럼 쓰고 있는 자신의 인터넷 연재물에 이런 글귀를 남겼습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바뀌고 있는 중국의 일상을 기록하면서죠.

정식 명칭이 '해외 고등인재 초청 정책'인 중국 정부의 '천인계획'을 소개하는 홈페이지. [중앙포토]

정식 명칭이 '해외 고등인재 초청 정책'인 중국 정부의 '천인계획'을 소개하는 홈페이지. [중앙포토]

중국 당국의 인터넷 검열이 어제오늘 일은 아닙니다만…. 12년 전 중국이 “세계 정상급 과학기술 인재를 유치하겠다”며 시작한 국가 프로젝트인 천인계획이 무슨 이유로 금기어가 돼 버린 걸까요.

그것도 하필 전염병으로 온 세상이 시끄러운 이 시점에 말입니다.

◇中 정부의 파격적인 대우  

천인계획의 정식 명칭은 ‘해외 고등인재 초청 정책’입니다. 이름만 봐도 의도가 선명합니다. 나노기술과 같은 최첨단 과학기술을 연구하는 고급 두뇌를 모셔와 재빨리 기술을 이식하겠다는 겁니다.

중국이 최근 반도체 등 IT 분야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룬 토대도 이런 프로젝트와 무관치 않습니다. 산업뿐만 아닙니다. ‘강군몽(强軍夢)’으로 불리는 중국의 군사력 강화에도 큰 몫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최근 요미우리신문에 천인계획과 관련해 아주 흥미로운 사례가 소개됐습니다. 베이징 중심가 고층 아파트에 사는 한 일본인 노교수의 얘기인데요. 올해 70세인 그는 도쿄공대 교수 출신의 인공지능(AI) 전문가입니다.

 “중국 정부의 천인계획에 응모하지 않겠습니까?”

그가 이런 내용의 이메일을 받은 건 연말 정년퇴직을 앞두고 있던 6년 전입니다. 일본에서 함께 연구했던 베이징이공대 교수가 보낸 것이었죠. 노교수는 고심 끝에 이를 수락했습니다.

그를 맞아준 건 5년간 1억 엔(약 11억5000만원)의 연구지원금과 급여, 두터운 복리후생이었습니다. 일례로 지금 사는 아파트의 월 임대료 400만원 중 거의 대부분을 중국 정부가 댑니다.

전 세계에서 매년 수천 명이 천인계획에 지원하지만, 실제 채용되는 경우는 극소수인데요. 중국이 애써 이 일본인 노교수를 모셔온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겁니다.

그래픽=심정보 shim.jeongbo@joongang.co.kr

그래픽=심정보 shim.jeongbo@joongang.co.kr

당초 그는 베이징이공대에서 15여명의 중국인 학생을 지도하고, 논문 발표 및 특허 신청, 국제회의 개최 등 중국 정부가 요구하는 20여 가지 업무를 5년간 수행하기로 계약했습니다. 이처럼 겉으로 봐선 중국의 속셈을 알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베이징이공대는 베이징항공항천대·하얼빈공대 등과 함께 중국 인민해방군과 깊숙이 연결된 대표적인 연구기관입니다. 이 교수의 연구도 군사 전용이 가능한 분야이고요.

그는 요미우리와 인터뷰에서 “군사 연구는 절대 수행하지 않는다”면서도 “(내 연구를) 응용한다면 무인기(드론)를 이용한 공격이나 자폭이 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

◇스파이가 된 하버드대 교수  

“천인계획은 핵심 기술정보를 훔치고, 수출관리를 위반하는데 대가를 지급했다.”

지난 1월 미국 사법 당국은 나노기술의 세계적인 권위자인 찰스 리버 하버드대 교수(화학ㆍ생물학과장)를 체포해 기소하면서 공소장에 이런 내용을 적시했습니다. 리버 교수는 중국 우한이공대가 주도하는 천인계획에 참여한 사실을 미 정부에 은폐하고 허위 보고를 한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펜타곤의 비밀 프로젝트를 위탁 수행하고 있던 그의 이같은 행동은 미국 과학계를 충격에 빠뜨렸습니다. 앞서 미국 정부와 의회가 천인계획에 대해 지속적으로 경고했는데도 벌어진 일이기 때문이죠.

지난 1월 30일 중국의 '천인계획'에 참여하고도 미국 정부에 보고하지 않은 혐의로 기소된 찰스 리버 하버드대 교수. 그는 나노기술의 세계적인 권위자로 미 국방부의 연구 프로젝트도 수행하고 있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1월 30일 중국의 '천인계획'에 참여하고도 미국 정부에 보고하지 않은 혐의로 기소된 찰스 리버 하버드대 교수. 그는 나노기술의 세계적인 권위자로 미 국방부의 연구 프로젝트도 수행하고 있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해 미 상원은 “미국의 경제ㆍ안보상 국익을 해친다”며 천인계획을 상세히 분석한 보고서를 내놨습니다. 보고서는 천인계획의 위협적인 면모를 크게 세 가지로 봤습니다.

① 연구를 보조하는 미 정부ㆍ단체에 거짓말한다.
② 미국의 연구시설을 그대로 재현한 ‘섀도 랩(shadow lab)’을 만든다.
③ 입수하기 어려운 지적 재산을 이전한다.

보고서에는 미국의 최첨단 군사기술이 집적된 F-35 스텔스 전투기의 엔진 관련 데이터를 중국에 유출한 사례도 등장합니다.

수상한 움직임은 연구자들의 계약서에도 엿보입니다. 중국 측과 계약서에 “천인계획 참가 사실이나 중국에서의 연구성과를 공표하지 않는다”는 조항을 포함하는 경우도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중국의 해외 인재 초청 프로그램은 천인계획 외에도 200개가 넘습니다. 여기에 참가한 외국인 연구자가 2018년까지 7000명을 넘은 것으로 보고됩니다.

이중엔 자신도 모르는 새 중국의 눈과 귀, 즉 스파이가 돼 버린 연구자가 많다는 게 서방의 시각입니다.

◇모국으로 돌아온 ‘바다거북’ 

“유학생이 수출이 규제된 약품 병을 무단으로 들고 귀국하려고 했다.”  

“귀국한 유학생이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하려는 단체에 속해 있는 것이 확인됐다.”

이는 지난 1월 일본 경제산업성이 홈페이지에 올린 ‘위험천만 사례집’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중국은 개혁ㆍ개방이 본격화된 1990년대부터 해외로 나간 유학생들을 바다거북을 뜻하는 ‘하이구이(海歸)’로 불러왔습니다. 넓은 바다에서 성장한 거북이 고향으로 돌아와 다시 알을 낳는 행동에 유학생을 빗댄 것이죠.

이처럼 중국은 오래전부터 유학생을 이용해 조직적ㆍ전략적으로 서방의 기술을 빼내려 노력했습니다. 미 연방수사국(FBI)은 지난해 10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중국은 유학생이나 연구자를 미국에 보내 기술정보를 탈취하기 위한 표적을 물색하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런데 그중 상당수 유학생이 군사기술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호주 전략정책연구소(ASPI)는 2017년까지 지난 10년간 중국 인민해방군에 소속된 해외 파견 과학자가 2500명을 넘을 것으로 봅니다.

물론 중국 유학생들을 모두 스파이로 모는 것은 당치도 않죠. 문제는 중국이 법(국가정보법)으로 국가의 정보활동에 민간기업과 국민이 협력해야 한다고 강제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중국 당국이 유학생에게 정보 누설을 요구할 경우 거부하기 힘들다는 얘기죠.

하지만 자국 유학생으로는 기술 접근에 한계가 있기 마련. 경제력 성장으로 자신감을 갖게 된 중국은 국적 불문, 해외 인재까지 포섭하기로 방향을 틉니다. 2008년 천인계획을 시작한 배경인 셈이죠.

◇‘중국제조 2025’와 ‘군ㆍ민 융합’  

두뇌뿐만 아닙니다. 중국은 국부펀드를 투입해 세계 유수의 첨단 기업을 사들이고 있습니다. 2015년 5월 중국 정부가 발표한 하이테크 산업 육성 전략인 ‘중국제조 2025’가 그 방향성을 상징하죠.

시진핑(習近平) 정권은 여기에 숟가락을 하나 더 얹었습니다. ‘군ㆍ민 융합’이란 슬로건을 내건 겁니다.

첨단 기술력을 빨아들여 산업을 발전시키면서 군사력도 강화하는 ‘두 마리 토끼’ 전략입니다. 2017년 1월엔 시 주석을 위원장으로 하는 ‘중앙 군ㆍ민융합 발전위원회’까지 세웠습니다.

시진핑 정권은 '군·민융합'을 강조하고 있다. 군복을 입은 시 주석이 남중국해의 인민해방군 해군 함정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이 사진은 2018년 4월 12일 신화사가 공개한 것이다. [신화=연합뉴스]

시진핑 정권은 '군·민융합'을 강조하고 있다. 군복을 입은 시 주석이 남중국해의 인민해방군 해군 함정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이 사진은 2018년 4월 12일 신화사가 공개한 것이다. [신화=연합뉴스]

지난해 1월 파이낸셜타임스(FT)가 추적 보도한 사례를 보면 그런 징후가 잘 드러납니다.

중국의 위성항법 업체인 나브텍은 가속도 센서, 자이로스코프 등 극소 센서를 만드는 스웨덴의 사이렉스 마이크로시스템즈를 2015년 인수ㆍ합병했습니다. 당시 중국이 취약했던 MEMS(미세전자기계시스템ㆍ나노머신)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서였죠.

이런 센서들은 스마트폰ㆍ의료기기 등은 물론 정찰위성ㆍ전투기와 같은 각종 군사장비에도 사용됩니다.

지난해 10월 1일 중국 베이징 천안문광장에서 열린 건국 70주년 기념 군사퍼레이드에 무인 공격기(드론)가 등장했다. 중국은 천인계획 등으로 확보한 최첨단 기술을 군사력 강화에 쓰고 있다. [EPA=연합뉴스]

지난해 10월 1일 중국 베이징 천안문광장에서 열린 건국 70주년 기념 군사퍼레이드에 무인 공격기(드론)가 등장했다. 중국은 천인계획 등으로 확보한 최첨단 기술을 군사력 강화에 쓰고 있다. [EPA=연합뉴스]

나브텍은 베이징에 3억 달러를 들여 공장을 짓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건설 자금은 중국 국부펀드인 베이징 집적회로산업 기금이 대고, 부지는 국영 공업단지에 마련됐습니다.

중국 시장조사회사인 카베칼 드래고노믹스의 애널리스트인 랭스 노블은 "수많은 중국의 국부펀드가 사이렉스와 같은 투자처를 찾고 있다"며 "민간투자가를 자처하는 법인도 알고 보면 중국 정부가 관여한 펀드로부터 출자를 받고 있다"고 FT에 말했습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나브텍의 창업자 양윈춘(楊雲春)이 중국 정부의 ‘천인계획’ 입안에 관여한 전문가란 점입니다. 본인 역시 2001년 미국에서 박사과정을 마치고 돌아온 ‘하이구이’이기도 합니다.

◇美에 팽 당한 中 유학생은 어디로  

중국의 기술 탈취 음모 차단을 가장 열심히 하는 건 도널드 트럼프 미 정부입니다. 지난 2월 FBI의 한 간부가 강연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중국 관련 기술유출 사건으로 2018년 10월부터 지난 2월까지 체포한 인원만 43명에 달합니다.

백악관은 지난해 5월 과학기술 시스템에 대한 외국의 부정행위를 방지하기 위한 공동위원회를 세웠습니다. 한 달 뒤 미 에너지부는 소속 연구자와 에너지부의 예산을 지원받는 기업ㆍ대학 관계자가 외국의 인재 초청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을 아예 금지했습니다.

미 정부는 대학ㆍ연구기관이 다루는 첨단 기술의 수출 규제조치도 강화하고 있습니다. 바이오 기술, AI와 딥 러닝(deep learning), 로보틱스, 극초음속 등 안보 관련 주요 기술이 대상인데, 연내 법제화할 계획입니다.

그래픽=심정보 shim.jeongbo@joongang.co.kr

그래픽=심정보 shim.jeongbo@joongang.co.kr

또 정보기관이 중국인 유학생의 경력이나 개인정보를 조회해 연구자용 비자 발급을 거부하는 사례도 대폭 늘었습니다. 2018년 6월 이후 중국인 대상 비자 발급 건수는 이전보다 45%나 줄었습니다.

문제는 미국에서 거부당한 유학생들의 행선지입니다. 이들이 유럽ㆍ일본 등지로 향하고 있다는 겁니다.

일본 정부도 중국의 전략에 대응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습니다. 요미우리는 일본 정부 고위관계자의 입에서 “이대로면 첨단 기술을 연구하는 미국 대학들이 일본 대학과 공동 연구를 끊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고 전합니다.

일본 정부는 지난달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국인 국가안전보장국(NSS)에 ‘경제반’을 신설했습니다. 총리관저가 직접 경제안보까지 챙기겠다는 뜻입니다.

“일본 기술이 중국의 군사력 강화에 공헌하는 상황을 더는 방치하지 않겠다”는 겁니다. 비슷한 처지의 한국 정부는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지 궁금하네요.

천인계획이 중국 인터넷에서 사라진 건 결코 우연이 아닐 겁니다. 코로나19 사태로 미국의 '중국 때리기'가 더 강력해진 시점에 나온 조치라는 점에서 혹자는 미국에 대한 '유화 제스처'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중국의 본심이 바뀔 리가 없다'는 게 더 중론입니다.

김상진 기자 kine3@joongang.co.kr

알지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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