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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달러 코인→2만 달러 성공 스토리 만든 ‘비트코인 제왕’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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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5호 14면

[월스트리트 리더십] ‘갤럭시 디지털’ CEO 노보그라츠

암호화폐 전문 투자은행 ‘갤럭시 디지털’의 최고경영자(CEO) 마이클 노보그라츠(Michael Novogratz)는 전형적인 ‘매크로 트레이더’다. 매크로 트레이더는 정치·경제·사회 요인들을 분석해 채권·환율·상품 등의 방향성을 예측하고 리스크를 감수한다.

자기만의 스토리로 방향성 예측 #골드만삭스 거치며 억만장자 돼 #2017년 비트코인으로 월가 복귀 #“1만 달러” 예측 뒤 2만 달러 돌파 #암호화폐 전문 투자은행 설립 #“올 10월까지 2만 달러 재탈환”

매크로 트레이더는 ‘스토리 텔러’라고도 할 수 있다. 동일한 데이터와 뉴스를 놓고도 어떤 각도에서 조합해 스토리를 전개하는가에 따라 서로 다른 결론을 내린다. 시장의 움직임이 자신의 스토리와 맞아 떨어지면 승자가 될 수 있다. 예컨대 이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놓고도 매크로 트레이더 간에 설왕설래가 있었을 것이고, 주식시장의 급락이 매수의 기회라는 스토리를 쓴 이들이 지금 웃고 있을 것처럼 말이다. 여기에 자신의 스토리를 설득력 있게 소통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매 순간 쏟아지는 수많은 스토리 가운데 자신의 것을 따르는 사람이 많아야 같은 방향으로 힘이 실려 적중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정부·금융사 배제한 거래 수단에 매혹

마이클 노보그라츠

마이클 노보그라츠

모두 노보그라츠가 지닌 강점이다. 매크로 트레이더의 직관과 본능으로 스토리를 쓰고 이를 공개적으로 풀어내는 데 매우 능수능란하다. 노보그라츠는 이런 강점으로 투자은행 골드만삭스와 자산운용사 포트리스에서 화려한 트레이더 경력을 쌓을 수 있었고, 2017년부턴 ‘비트코인 제왕’으로 탈바꿈해 자신에 대한 거대한 ‘팬덤’을 형성할 수 있었다.

노보그라츠가 스타 트레이더로 떠오른 계기는 1990년대 후반의 아시아 외환위기다. 골드만삭스 홍콩에서 아시아 매크로 트레이딩 데스크를 이끌며 절묘한 스토리 텔링으로 막대한 수익을 올리면서다. 한국·태국·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국가들의 부실한 기초 체력이 민낯을 드러내며 촉발된 달러화 수요에 공격적으로 대응해 강한 인상을 남긴 것이다.

아시아 외환위기의 경험은 최근 노보그라츠가 암호화폐를 트레이딩 관점에서 접근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그에게는 암호화폐의 난폭한 출렁임이 낯설지 않다. 최근 몇년 동안의 암호화폐 시장과 외환위기 당시의 아시아 외환시장은 매우 닮아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사람들의 관심 밖에서 잔잔한 물결같이 움직이던 가격이 변곡점을 맞아 에너지를 분출하며 변동성이 치솟는 모습이 아주 유사하다. 이런 시장에서는 적정 가치를 평가해 대응하는 건 별 의미가 없다. 심리가 주도하는 장세이고 가격은 극단으로 치달을 수 있다. 모두 매크로 트레이딩의 기본기가 정교한 분석력에 비해 우위를 갖는 시장이다.

외환위기 직후 골드만삭스를 떠난 노보그라츠는 2002년에 매크로 헤지펀드 사업에 뛰어들었다. 대체투자 전문 자산운용사 포트리스의 핵심 파트너로 참여하면서다. 그후 포트리스는 2007년에 300억 달러에 이르는 운용자산을 앞세워 주식시장에 화려하게 상장했다. 금융위기 직전, 최적의 시점에 이뤄진 주식 상장 덕에 노보그라츠는 억만장자 반열에 오르게 됐다. 그해 노보그라츠는 개인 자산 23억 달러로 미 경제지 포브스의 세계 부호 순위 407위에 이름을 올릴 정도였다.

그런데 포트리스의 끝은 좋지 않았다. 노보그라츠의 스토리가 엇박자를 내기 시작하면서 운용자산과 수익이 쪼그라든 탓이었다. 결국 노보그라츠는 누적된 손실로 2015년에 포트리스를 떠나야만 했고, 회사 주가마저 폭락하며 그의 이름은 부호 리스트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한동안 월스트리트를 떠나 있던 노보그라츠가 다시 돌아온 건 포트리스를 떠난 지 2년 만이었다. 이전부터 워낙 이름을 널리 알린 까닭에 은둔 생활을 접고 돌아온 그에게 월스트리트의 관심이 쏠렸다. 이전 경력을 감안하면 다시 투자금을 유치해 매크로 헤지펀드를 출범시킬 거라는 관측이 우세했다. 하지만 월스트리트 재입성과 함께 그가 던진 화두는 비트코인 투자였다. 노보그라츠는 “비트코인은 곧 1만 달러 갈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며 시장 심리를 자극하고 나섰다.

당시는 2017년 들어 막 1000달러 벽을 돌파한 비트코인에 대해 세간의 관심이 증폭되던 시기였다. 그후 비트코인은 노보그라츠의 시나리오대로 같은 해 여름 4000달러를 훌쩍 넘더니 12월에는 1만 달러에 이어 연거푸 2만 달러까지 돌파하는 기염을 토했다. 마치 노스트라무스와 같은 예측 적중에다 자신의 스토리를 실천해 개인적으로 약 2억5000만 달러를 벌어들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비트코인에 대한 노보그라츠의 영향력은 더욱 공고해졌다. 그런데 그동안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결코 평범하지 않은 투자 대상을 공개적으로 지지하고 나섰던 걸까.

비트코인 가치는 ‘금’ 궤적 따를 것

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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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보그라츠는 포트리스 시절인 2013년에 처음 비트코인의 존재를 알게 됐다. 직장 동료의 소개로 비트코인을 처음 접한 후 그 스토리에 매혹됐다. 금융위기와 유럽 재정위기를 겪으며 정부와 금융회사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하던 시기에 그들의 개입을 배제한 거래 매개 수단의 등장은 경이로움 자체였다. 노보그라츠는 매크로 트레이더답게 투자 대상으로서 비트코인의 가능성을 간파했고 이를 행동에 옮겼다. 같은 해 7월 비트코인 가격이 100달러도 채 되지 않던 때부터 개인적으로 매수하기 시작한 것이다.

또 다른 계기는 절친의 스타트업을 방문한 일이었다. 포트리스를 떠난 후인 2015년 어느날, 노보그라츠는 프린스턴대 기숙사 룸메이트였던 조 루빈의 사무실을 방문했다. 잘 알려진 대로 루빈은 ‘이더리움 블록체인’의 창업자 중 한 명이다. 그날 루빈이 들려준 블록체인의 가능성은 노보그라츠의 트레이딩 본능을 자극했다. 그 때부터 노보그라츠는 암호화폐의 기반 기술인 블록체인으로 투자의 시야를 넓힐 수 있었고, 블록체인의 미래에 편승하려는 목적으로 루빈의 암호화폐 이더리움을 매수해 자신의 투자 포트폴리오에 추가했다. 이더리움의 가격이 1달러에도 미치지 않던 때였다.

2018년부터 노보그라츠의 발걸음은 더욱 빨라졌다. 아예 금융회사를 창업하며 제도권으로 돌아왔다. 암호화폐와 블록체인 기술 전문 투자은행 갤럭시 디지털을 세우고 투자의 규모와 범위를 확장하고 있다. 사업 구조를 트레이딩, 자기자본 투자, 자산운용, 자문의 네 가지로 구축해 웬만한 월스트리트 투자은행 같은 외연도 갖췄다.

노보그라츠는 지난 4월부터 “비트코인은 루비콘강을 건넜다”라고 말하며 비트코인 투심에 연일 불을 지피고 있다. 그의 강점인 설득력 있는 스토리 구성과 입담으로 올해 10월까지 2만 달러 재탈환을 자신하고 있다. 스토리의 골자는 비트코인의 가치가 ‘금’의 궤적을 따른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뒷받침할 삼박자가 모두 갖춰졌다고 주장한다. 코로나19 사태에 대응한 각국의 돈 찍어내기, 5월 12일 무렵으로 예상되는 비트코인 반감기, 기관투자자의 매수 유입이 그것이다.

이 가운데 특히 마지막 배경에 눈이 간다. 구체적으로 헤지펀드와 패밀리오피스의 시장 진입을 목격하고 있다며 스토리의 새 등장인물로 기관투자자를 내세웠기 때문이다. 2017년의 2만 달러 도달을 가능케 한 개인투자자들의 바통을 2020년엔 기관투자자들이 이어 받는다는 스토리다. 만약 실현된다면 투자의 새 지평이 열릴 뿐 아니라, 노보그라츠는 억만장자 리스트에 화려하게 복귀할 것이다.

아마 레슬링 통해 강한 승부사 기질 키워

노보그라츠의 매크로 트레이더 자질에는 두 가지가 절대적 영향을 미쳤다. 첫째 ‘아마추어 레슬링’이다. 대학 시절에 팀 주장으로 활동했고, 현재는 미국 레슬링 협회 명예 회장을 맡아 올림픽 대표팀을 후원하고 있다. 50대 중반의 나이에도 틈나는 대로 매트에 오른다. 뼛속까지 레슬러임을 자부하는 노보그라츠는 삶의 가장 중요한 원동력으로 레슬링을 꼽는 데 주저함이 없다. 레슬링을 통해 형성된 ‘강인한 승부사 기질’이 그의 파란만장한 월스트리트 경력을 이끄는 힘이다.

둘째는 ‘군 복무’ 경험이다. 노보그라츠는 대학 졸업 후 군에서 헬기 조종사로 복무했다. 군은 규율이 엄격하다. 특히 전투기나 헬기를 조종하고 정비하는 일은 자신은 물론 동료의 생명과 직결된 일이라 더욱 그렇다. 트레이딩도 마찬가지다. 회사의 리스크 관리 규정은 물론이고 자기 자신의 엄격한 원칙을 반드시 지켜 거래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회사는 물론이고 경제 전체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음은 수많은 사례에서 볼 수 있다.

갤럭시 디지털 (Galaxy Digital)

설립연도 2018년
설립자 마이클 노보그라츠
업종 암호화폐 및 블록체인 기술 전문 투자은행
자산 규모 4억2000만 달러 (2019년 12월 기준)

마이클 노보그라츠 (Michael Novogratz)

갤럭시 디지털 창업자 겸 CEO
전 포트리스 사장 겸 최고투자책임자
전 골드만삭스 파트너
출생연도 1964년(56세)
최종 학력 프린스턴대학 경제학과(1987년 졸업)

최정혁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 jung-hyuck.choy@sejong.ac.kr
골드만삭스은행 서울 대표, 유비에스, 크레디트 스위스, 씨티그룹 FICC(Fixed Income, Currencies and Commodities, 채권·외환·상품) 트레이더로 일했다. 세종대 경영학부에서 국제금융과 금융리스크를 강의하며 금융서비스산업의 국제화를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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