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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비즈니스 현장에 묻다

“AI 기반으로 피자업계 맥도날드 되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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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이현상 기자 중앙일보 논설실장

1인용 피자 시장 개척 임재원 고피자 대표

이현상 논설위원

이현상 논설위원

충돌. 1인용 화덕 피자업체인 고피자의 젊은 창업자 임재원(31) 대표는 싱가포르에서 대학을 나와 KAIST에서 경영공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대학원 동기 대부분은 KAIST 출신답게 빅데이터·게임·바이오 같은 기술 기반 업체에 취업했다. 나처럼 외식업 창업을 선택한 경우는 없다”고 말했다. 이런 이미지 충돌이 투자자나 프랜차이즈 가맹주들의 호기심을 자극해 사업에 도움이 됐음을 굳이 감추지 않는다.

KAIST 나와 외식업 뛰어든 이단아 #포브스 ‘아시아 젊은 리더 30인’에 #사업 시작 2년만에 해외진출까지 #“기술로 외식 창업의 벽 낮추겠다”

혁신. 그러나 이런 이미지 전략이 전부가 아니다. 젊은 경영자답게 업계의 관행을 깨는 참신한 아이디어와 실행력을 인정받는다. 1인용 피자 시장 개척을 위해 전용 오븐과 도우(피자의 바탕이 되는 밀가루 반죽)를 개발했다. 피자 만드는 과정을 빠르고 간단하게 바꾸며 프랜차이즈 점주들의 매장 운영 부담을 줄였다. 최근에는 인공지능(AI)과 로봇 개발에 도전장을 던졌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2019 아시아의 영향력 있는 30세 이하 리더 30인’에 선정하며 주목하는 이유다. 주로 기술 기반 스타트업에 관심을 갖는 벤처 캐피털의 투자도 받았다. 창업 2년 만에 국내외 60여개의 매장(직영점 7개 포함)을 내는 등 프랜차이즈 업계의 신예로 떠오르고 있다. 서울 여의도 한강 밤도깨비 야시장에서 푸드트럭 하나로 장사를 시작한 지부터는 4년 만이다.

서울 상수동 본사 옆 직영점은 임 대표에겐 일종의 실험장이다. 테이블이 10여개쯤 놓여있는 매장에 들어서자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카운터에 설치된 로봇 팔이었다. 피자를 올려놓으면 로봇 팔이 알아서 소스 통을 집어 뿌려준다. 아직은 실험 단계지만 손님들에겐 색다른 재밋거리다. 주방에는 AI 데이터 수집용 카메라가 설치돼 있었다. 주방 직원의 토핑(도우 위에 각종 재료를 얹는 일) 작업을 데이터로 축적하고 있었다.

고피자 임재원 대표는 젊은 경영자답게 AI나 로봇 같은 새 기술을 개발하는 데 적극적이다. 임 대표가 피자에 소스를 뿌려주는 로봇 팔을 시연하고 있다. 최정동 기자

고피자 임재원 대표는 젊은 경영자답게 AI나 로봇 같은 새 기술을 개발하는 데 적극적이다. 임 대표가 피자에 소스를 뿌려주는 로봇 팔을 시연하고 있다. 최정동 기자

피자와 AI는 좀 이질적이다.
“피자 만들기가 간단해 보이지만 꽤 복잡하다. 주문에 맞춰 수십 가지가 되는 재료를 재빨리 얹어야 한다. 주문이 대여섯개 몰리면 경험 많은 직원이라도 순서가 엉킨다. 이때 AI가 도움된다. 알고리즘에 따라 토핑 재료 칸에 불빛을 깜빡이게 해 순서를 알려주는 식이다. 양이 적거나 많을 경우엔 센서가 이를 감지해 바로잡게 한다. AI 기술력을 통해 누구든지 첫날부터 똑같은 결과를 내는 알바생을 만들어 내는 것이 궁극적 목표다. 지금은 알고리즘 개발을 위해 AI용 빅 데이터를 모으고 있다. 재료의 모양·순서·소스 등을 기계 스스로 학습하게 하는 단계다. 앞으로 1년 반 안에 실용화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창업 초기인데 연구 역량이 되는가.
“기업 부설 연구소를 만들어 AI를 연구하고 있다. 전문가들이 각 매장에서 들어온 데이터를 기반으로 ‘GOVIS’라는 AI 기반 매장 운영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1인용 피자에 이런 기술까지 필요한가.
“피자의 ‘패스트푸드화’가 우리 컨셉이다. 피자업계의 맥도날드가 되는 것이 우리 목표다. 이를 위해서는 주문 후 늦어도 10분 이내에 나와야 한다. 프랜차이즈 점주들이 손쉽게 창업할 수 있도록 ‘숙련도의 벽’도 낮춰야 한다. 단순히 크기를 줄이고 가격을 낮추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기술적 혁신이 뒷받침하지 않으면 안 된다.”
AI 외 다른 기술은.
“‘고븐(Goven)’이라는 전용 오븐이 대표적이다. 일반 대형 피자 가게는 컨베이어식 오븐을 이용한다. 부피가 큰 데다 열풍을 이용하기 때문에 굽는 데만 10분 이상이 걸린다. 우리가 개발한 오븐은 3분 이내면 된다. 빙빙 돌아가는 6장의 판 위에 토핑이 된 도우를 올려놓으면 자동으로 구워진다. 디지털 온도계를 달아 일정 온도가 되면 자동으로 불이 꺼져 피자를 태울 염려도 없다. 경험 없는 매장 주인이나 아르바이트생도 쉽게 구울 수 있다.”
매장에서 도우를 준비하는 것도 만만찮다고 들었다.
“보통 본사에서 매장으로 볼 모양의 반죽을 보내 주면 주인이나 직원이 손으로 펴 도우를 만든다. 시간이 걸리고 숙련도도 필요하다. 우리는 강원도 원주 공장에서 만든 전용 도우를 공급한다. 특별한 배합 기술이 필요하다. 3년 가까이 시행착오를 거쳐 배합을 완성했다.”
고피자 직원이 AI 데이터 수집 카메라 앞에서 토핑을 하고 있다. 수집된 데이터는 피자 제작 알고리즘 개발에 쓰인다. [사진 고피자]

고피자 직원이 AI 데이터 수집 카메라 앞에서 토핑을 하고 있다. 수집된 데이터는 피자 제작 알고리즘 개발에 쓰인다. [사진 고피자]

실제로 1인용 피자 제작 과정은 간단해 보였다. 비닐 포장을 뜯어 꺼낸 도우 위에 각종 토핑을 한 뒤 ‘고븐’에 올려놓자 완성된 피자가 나온다. 주문 후 7~8분 걸렸다. 가격은 5000원 내외. 1인용 세태를 겨냥한 요식업의 변신이다. 매장에는 1인용 테이블이 서너개 설치돼 있었다. 인터뷰 장소인 상수동 직영점에는 기존 ‘고븐’을 개량한 ‘고븐 2.0’이라는 기계가 설치돼 있었다. 회전용 원판 대신 컨베이어를 채택했다. 토핑한 도우를 투입구에 넣으면 2분여 만에 완성품이 나온다. 임 대표는 “아직 개선점을 찾아가고 있는 중”이라며 “조만간 완성돼 새 가맹점부터 설치될 것”이라고 말했다.

코로나 타격이 있었을 것 같다.
“2, 3월은 정말 어려웠다. 마음을 편하게 먹고 확장보다 내실 다지기에 힘썼다. 기술 개발 투자를 늘리고, 대형 패스트푸드 본사에서 유능한 중견 인력도 스카우트했다. 코로나19가 소강상태에 접어들면서 4월 중순부터 사업 지표가 올라오기 시작한다. 가맹점 확보도 다시 속도가 난다. 4월 하순 7건의 가맹점 가입 계약을 했다.”
해외 진출도 시도한다는데.
“지난해 인도 중남부 중심도시 벵갈루루에 4개 매장, 지난달에는 싱가포르에 3개 매장을 열었다. 인도는 지금 코로나 때문에 어려움을 겪지만, 곧 상황이 나아질 것으로 본다. 싱가포르는 개점 준비를 위해 자주 갔지만, 막상 개점 때는 봉쇄령 때문에 가지 못해 아쉽다.”
해외 진출이 과욕 아닌가.
“해외 진출에 많은 돈을 들인 것은 아니다. 공유 주방을 이용하는 등 최소한 투자만 하고 있다. 아직 실험 내지 공부 단계다. 맥도널드·도미노 같은 세계적 외식업 브랜드가 되기 위해서는 AI 기술은 필수적이다. 글로벌 외식업체는 세계에 깔린 매장의 효율적 운영이나 제품 표준화를 위해 AI 같은 4차 산업혁명 기술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작지만 우리도 그 투자를 시작했다.”
창업을 준비하는 청년들에게 조언한다면.
“사실 내가 ‘스펙’을 쌓은 것은 취업을 위해서였다. 싱가포르에서 2년, 한국에서 1년 정도 직장 경험이 있다. 그러다 1인용 피자라는 아이템에 주목하고 창업 공부를 시작했다. 아이디어만으로는 아무 소용 없다. 회사에 다니면서 거의 1년간 주말 내내 피자집에서 아르바이트하며 경험을 쌓았다. 야시장 푸드 트럭과 백화점 팝업 코너에서 직접 피자도 팔았다. 3년 가까운 준비 끝에 창업했으나 초기엔 망할 뻔했다. 현장 경험 쌓기로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격변하는 피자 시장, 아직 세계는 넓다

한때 간편 외식업의 대명사였던 국내 피자 시장은 격변을 겪고 있다. 1인 가구 증가, 배달 앱 등장, 간편 냉동피자 급성장이 시장 환경을 바꿨다.

시장조사기관 링크아즈텍에 따르면 냉동피자 시장은 2016년 265억원에서 2018년 1200억원 규모로 커졌다. CJ제일제당·오뚜기·풀무원 등 대형 식품업체들의 시장 진출 때문이다. 반면 프랜차이즈 피자 시장은 2017년 2조원에서 2018년 1조8000억원으로 줄어들었다. 시장 변화에 따라 국내 1위 도미노피자(청오디피케이) 등 대형 프랜차이즈 업체들도 도전을 겪고 있다. 미스터피자는 상장 폐지 위기에 시달리고 있고, 피자알볼로·피자에땅 등도 지난해 영업 손실을 봤다. 2000년대 국내 선두 한국피자헛은 5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업체들은 가성비 높이기, 1인용 세트 개발, 배달 강화 등으로 돌파구를 찾고 있지만 설 자리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그러나 글로벌 시장은 사정이 다르다. 미국에서 발행된 ‘피자 파워 리포트’는 현재 1500억 달러(180조원) 정도인 글로벌 피자 시장은 향후 5년간 10.7% 성장할 것으로 예상한다. 특히 아시아 시장은 예상 성장률이 22.7%에 이르는 등 전망이 밝다. 이미 7조원의 시장이 형성된 인도의 경우 매년 20% 이상 성장할 것으로 예측된다. 더구나 도미노 같은 글로벌 브랜드의 지배력이 아직 낮아 고피자 같은 신예 업체가 뛰어들기 유리한 환경이다.

이현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