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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매물 있어요?" "급매 취소"···용산 또 들썩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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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정부가 8000가구의 주택공급 계획을 발표한 서울 용산역 정비창 부지의 모습. 코레일과 SH공사가 시행사로 참여해 절반은 공공주택, 나머지 절반은 민간 아파트로 공급할 계획이다. 이 중 공공 임대주택 물량은 2000가구 이상이다. [연합뉴스]

정부가 8000가구의 주택공급 계획을 발표한 서울 용산역 정비창 부지의 모습. 코레일과 SH공사가 시행사로 참여해 절반은 공공주택, 나머지 절반은 민간 아파트로 공급할 계획이다. 이 중 공공 임대주택 물량은 2000가구 이상이다. [연합뉴스]

7일 서울 용산동5가의 코리아나공인중개사 사무실은 아침부터 바쁜 표정이었다. 전날 국토교통부가 용산역 철도 정비창 부지에 8000가구를 공급한다는 계획을 공개하면서다. 이 중개업소 관계자는 “지난 2월 말에 매매 계약서를 쓴 뒤로는 일이 거의 없었다”며 “두 달여 만에 가장 바빴다”고 말했다. 그는 “아파트를 팔려고 내놓은 집주인들이 호가를 올려야 하지 않느냐고 문의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정비창 부지에 미니신도시 후폭풍 #중개업소 아침부터 문의 쏟아져 #“일 없다가 두달만에 가장 바빴다” #국제업무지구 좌초 후 개발 재시동 #“서울 한복판, 청약경쟁 치열할 것”

서울 서부이촌동 인근에 있는 거성부동산중개사무소의 정봉주 대표도 “아침부터 개발 부지 인근에 매물이 있느냐는 문의로 정신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정비창 부지 코앞에 있는 용산구 이촌동 중산시범아파트 단지의 집주인들이 급매물을 거둬들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지은 지 50년이 넘은 이 아파트 단지의 전용면적 59㎡ 시세는 올해 초 7억원대 초반이었다. 그런데 용산 정비창 개발 소식에 호가가 다시 뛰려고 한다는 설명이다.

용산구 일원의 부동산 시장이 들썩이고 있다. 용산 정비창 부지(면적 약 51만㎡)의 개발이 재시동을 걸기 때문이다. 원래 이곳은 예상 사업비 30조원 규모인 용산 국제업무지구 개발사업에 포함됐던 구역이다. 오세훈 서울시장 시절인 2007년 서울시는 용산 국제업무지구에 150층 안팎의 초고층 빌딩 건설과 고급주택, 문화시설이 있는 복합도시의 청사진을 그렸다. 당시 오 시장은 용산역 인근 한강변을 포함한 ‘한강 르네상스’ 계획을 제시했다. 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한 뒤 개발사업은 결국 좌초했다. 한국철도공사(코레일)와 민간 개발사는 책임 소재를 놓고 법적 분쟁을 겪기도 했다.

8000가구 주택 들어설 용산정비창 부지.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8000가구 주택 들어설 용산정비창 부지.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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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부 관계자는 “코레일과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가 시행사로 참여해 주택 공급에 집중하는 사업”이라며 “과거 국제업무지구 사업과는 성격이 다르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에는 공공 주도의 도시개발사업으로 진행한다”며 “내년까지 구역 지정을 끝내고 2023년께 분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용산 정비창 부지에 들어설 8000가구 중 절반은 공공주택으로 공급하고 나머지 절반은 민간 아파트로 분양할 계획이다. 공공주택에는 임대 물량이 포함된다. 임대주택 목표치는 2000가구 이상이라고 국토부는 설명했다. 개발구역 주변은 서울 지하철 1·4호선(용산역·신용산역)과 KTX 노선에 연결된다. 역세권 주거 단지로 투자 가치가 있다는 기대감이 나오는 배경이다.

김연화 IBK기업은행 부동산팀장은 “용산 일원은 이미 교통망이 잘 갖춰져 있다. 여의도·광화문 등 주요 업무 지역과도 가깝다”고 말했다. 그는 “향후 분양할 때 청약 경쟁이 치열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상우 인베이드투자자문 대표는 “서울 도심에 주택 공급 물량이 늘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말했다.

최근 서울에선 주요 재건축 아파트 단지의 사업 추진이 지지부진하면서 앞으로 새 아파트 공급 물량이 부족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김 팀장은 “용산 정비창 부지의 주택 공급 물량은 서울 송파구 헬리오시티(9510가구)나 3기 신도시 과천지구(약 7000가구)와 비슷하다. 서울 한복판에 있어 미니 신도시 같은 파급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의 부동산 투자 관련 카페에선 “8000가구를 분양하면 주변 집값에 영향이 있나” “분양가는 얼마일까” 같은 글이 올라왔다. 서울 용산역 인근 부동산중개업소의 강건우 사장은 “아직 구체적인 계획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오랫동안 개발을 기다려왔던 곳이라 (국토부 발표에) 반색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금싸라기 땅에 아파트만 개발은 비효율” … 서울 공급난 해결도 역부족

용산 정비창 부지에 들어설 아파트는 분양가 상한제의 적용을 받는다. 분양가는 주변 시세보다 저렴하겠지만 입주 후 상당 기간 집을 팔지 못한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구체적인 개발 계획이 나와 봐야 알겠지만 중대형보다는 99㎡(30평대) 안팎의 중소형 아파트로 공급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며 “서울 강남권 수요를 흡수하는 고급주택이라기보다는 신혼부부나 젊은 층을 위한 주택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른 지역의 개발사업에 비해 임대주택 물량이 많은 점도 고려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과거 용산 국제업무지구보다 사업계획이 쪼그라든 것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도 있다. 용산 정비창에서 한강변까지 넓은 지역을 함께 개발하는 게 도시계획 측면에서도 바람직하고 주택 공급 효과도 클 것이란 지적이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대학원 교수는 “서울 도심 한복판을 아파트 단지로만 개발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라며 “입지 여건을 최대한 살려 서울을 대표할 수 있는 랜드마크로 조성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용산 주민들 사이에서 불만의 목소리도 나온다. 용산역 인근에 있는 신계동 e신계소망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주민들 사이에선 언젠가는 이 지역이 개발될 것이란 기대가 있었다. 막상 임대주택이 많은 아파트촌이 된다고 하니 되레 집값이 내려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중개업소 대표는 “3.3㎡당 1억원이 넘는 비싼 땅을 공공 임대를 섞은 아파트촌으로 덮는다고 한다. 일부 주민들은 주변 아파트 시세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지 않을까 걱정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염지현·최현주·한은화 기자 yj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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