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부처님의 내리까는 눈길에 담긴 깊은 뜻

중앙일보

입력 2020.05.07 13:00

[더,오래] 윤경재의 나도 시인(60)

사랑의 시작은 바라봄에서 비롯한다. 첫눈에 반한다는 말도 있지만, 자주 볼수록 사랑이 깊어가는 것 역시 진실이다. [사진 Pxhere]

사랑의 시작은 바라봄에서 비롯한다. 첫눈에 반한다는 말도 있지만, 자주 볼수록 사랑이 깊어가는 것 역시 진실이다. [사진 Pxhere]

비스듬히 마주친 그의 눈

사람은 누구나 거짓말 못 하는 눈을 지니고 있다
두 눈 맞추어 보면 그의 생각이 언뜻 스친다

더 두려운 건
내 그를 사랑하는 맘마저 그의 눈에 새겨진다

눈길 피하는 사람은
속마음 들킬까 염려하는 것이다
얼마나 사랑하는지
감추고 싶어 하는 수줍음이다

그냥 빤히 바라보는 사람은 오히려 두렵지 않다
그런 눈은 나를 가늠할 뿐
아픈 사랑으로 맺어질 리 없다

어느 날인가
비스듬히 기운 그의 눈에서 사랑을 읽었다
오른편으로 고개 떨구고
오래도록 내 이름 부르며 기다리고 있었다고

고요히 흐르는 눈빛
찾지 않는 나를 원망하기보다
얼마나 사랑하는지
감추고 싶어 하는 아픔이었다

사랑 외에는
아무것도 빚지지 말라고

해설
장미향이 짙게 배인 오월은 계절의 으뜸이다. 무엇보다 근로자의 날, 어린이날로 시작하여 어버이날, 스승의 날, 부부의 날까지 연이어 찾아온다. 오월은 자신과 인연을 맺고 있는 관계와 주변인을 깊이 생각해보고 찾아보라는 뜻이겠다. 우리는 이런 관계를 사랑의 관계라고 부른다.

사랑의 시작은 바라봄에서 비롯한다. 첫눈에 반한다는 말도 있지만, 자주 볼수록 사랑이 깊어가는 것 역시 진실이다. 영어로도 친숙하다는 표현은 ‘familiar’ 라고 하지 않는가. 누군가를 가족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친숙하고 사랑이 묻어나는 것이다.

뇌 과학에서도 이런 사실이 입증되었다. 사람은 어떤 외부 사물을 바라볼 때 사물과 사람의 얼굴을 인식하는 뇌 구역이 다르다는 게 밝혀졌다. 안구를 통해 본 시각정보는 후두엽에서 처리되는데 어디서 봤는지에 대한 장소 정보는 두정엽으로 들어가고, 무엇을 보았는가에 대한 인식정보는 중앙측두엽(MTL)에서 처리된다. 이때 사물과 사람 얼굴을 인식하는 부위가 전혀 다르다. 사람의 얼굴은 오직 ‘방추형 얼굴영역(FFA,Fusiform Face Area)에서 처리한다. 이것은 우리가 어떤 인물에 대한 인식을 할 때 얼굴에 대한 정보를 우선으로 처리한다는 뜻이다. 어떤 사람을 평가할 때 얼굴모습이 우선이라는 뜻이다. 어디서 본 듯하게 익숙하고 선한 느낌이 들 때 우리는 상대방을 믿게 된다. 이런 걸 초두 효과, 또는 후광효과라고 부른다.

뇌는 사람의 얼굴을 오직 ‘방추형 얼굴영역(FFA,Fusiform Face Area)에서 처리하는데 이것은 우리가 어떤 인물에 대한 인식을 할 때 얼굴에 대한 정보를 우선으로 처리한다는 뜻이다. [사진 Pixabay]

뇌는 사람의 얼굴을 오직 ‘방추형 얼굴영역(FFA,Fusiform Face Area)에서 처리하는데 이것은 우리가 어떤 인물에 대한 인식을 할 때 얼굴에 대한 정보를 우선으로 처리한다는 뜻이다. [사진 Pixabay]

어떤 사람을 평가할 때 FFA가 받아들인 1차적 정보만으로 평가하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지만, 실제로 살다보면 그런 게 자칫 고정관념이자 편견에 지나지 않았음을 뼈저리게 깨닫게 된다. 그래서 사람을 잘 판단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역사는 늘 말하고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물을 잘 알아보는 것을 제왕학에서 으뜸으로 삼았다. 임금의 주변 인물이 충신인지 간신배인지에 따라 나라의 흥망성쇠가 달렸다.

인물을 잘 구별하기 위해 동양에서는 관상학이, 서양에서는 골상학이 발달하기도 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그런 건 우리가 잘 모르겠으니 쉽게 오류에서 벗어나고자하는 사후확증편향에 지나지 않는다. 어쩌면 그런 편의주의적 믿음이 도리어 타인의 운명을 좌우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한때 우리나라에서는 애플의 창업주 스티브 잡스를 배우자는 열풍이 불었다. 그러나 냉정히 따져보면 잡스는 인간적 허점이 무척 많았다. 동업자 위즈니악이 만든 회로를 아타리사에 5000달러에 팔고도 700달러만 받았다고 속이곤 동업자에게 350달러만 지불했다. 여자 친구 크리스 브랜낸과 사이에 난 딸이 친자가 아니라며 법정소송까지 했다. 또 말로는 인생이란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사는 게 정답이라 말하면서도 정작 애플사 직원이 자기 말에 반기를 들면 쫒아내었던 이중인격자였다.

로마 시대 부흥기를 누렸던 5현제 시대 마지막 황제이자 철학자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능력 있는 사람에게 왕권을 물려주었던 제도를 허물어뜨리고 자신의 아들 코모두스에게 직접 왕권을 물려주어 로마 몰락의 길을 열어놓았다. 자신이 사람을 제일 잘 알아본다는 교만이 싹튼 것이다.

과연 어떤 인물에게서 무엇을 배우자는 것인가? 결론은 완벽한 인물은 없으며 기대해서도 안 된다. 다만 그런 인물을 통해서라도 어떤 혁신을 이루어 낸 구조적 시스템을 배우자는 것뿐이다. 인물을 판단하는 것은 FFA의 즉각적 본능이 아니라 이성적 판단을 내리는 전전두엽의 종합적 판단에 딸린 것이란 진리를 받아들여야 한다. 익숙함과 부채감에 누군가를 판단한다면 오류에 빠질 위험성이 그만큼 높다. 측두엽에서 전전두엽으로 연결하는 것은 오로지 인내와 훈련을 통해서만 배울 수 있다.

그런데 다행히 인류사에서 본받을 만한 성인들이 있다. 논어에 나오는 공자의 언행은 우리에게 사람을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 기준을 정해준다. 첫 번째가 “듣기 좋은 말과 보기 좋은 얼굴로 꾸미는 사람치고 인간의 최고 가치인 인(仁)을 갖춘 자가 드물다”라고 말했다. 또 공자는 아들 백어(伯魚)에게도 특별히 어떤 비법을 전하지 않았다. 관계의 친소로서 누구를 가르치지 않았다. 단지 아들에게 시(詩)와 예(禮)를 배웠느냐고 보편적 질문으로 가르쳤다. 시는 사람의 마음과 사리분별을 통달하는 바탕이 되고 예는 인간으로 설 수 있는 조건이 된다고 말했다.

오월은 자신과 인연을 맺고 있는 관계와 주변인을 깊이 생각해보고 찾아보라는 뜻이겠다. 우리는 이런 관계를 사랑의 관계라고 부른다. [사진 Pixabay]

오월은 자신과 인연을 맺고 있는 관계와 주변인을 깊이 생각해보고 찾아보라는 뜻이겠다. 우리는 이런 관계를 사랑의 관계라고 부른다. [사진 Pixabay]

부처와 예수의 언행은 따로 말하지 않아도 익히 알 수 있다. 다만 절에 모신 부처상을 보면 언제나 눈을 그윽이 내리 깔고 있다. 그 앞에 서면 도저히 두 눈을 마주칠 수 없는 위엄과 사랑이 번져나온다. 십자가에 매달려 우리를 굽어보는 예수 고상을 우러르면 우리의 시선을 비끼는 듯한 모습이 눈에 띈다. 한쪽으로 고개를 숙이며 눈길을 피하는 게 마치 우리의 허물을 다 알면서도 용서하는 듯하다. 누가 감히 그 두 눈을 마주칠 수 있겠는가.

내리까는 눈길과 비끼는 두 눈에는 익숙함과 부채감에서 자유로운 사랑이 담겼다. 그분들이 우리에게 빚을 지었을 리 만무하다. 도리어 빚을 탕감해주는 눈길이 아니겠는가.

신약성경 로마서 13장 8절에 “아무에게도 빚을 지지 마십시오. 그러나 서로 사랑하는 것은 예외입니다”라는 말이 있다. 즉 “사랑도 빚이니 사랑 외에는 빚을 지지 말라”는 말이다.

한의원 원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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