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코로나발 美·中 신냉전 현실됐다…한국은 어디 줄서야 하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미국과 중국, 신냉전(新冷戰) 시대에 접어들었다."

지난 3월 러시아 모스크바 상점 앞에 전시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사진 입간판에 마스크가 씌워져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3월 러시아 모스크바 상점 앞에 전시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사진 입간판에 마스크가 씌워져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스인홍(時殷弘) 인민대 국제관계학원 교수가 5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미·중 신냉전'. 미국에선 자주 언급된 말이다. 중국이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지위를 위협한다고 느끼면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가속화됐다. 그러나 중국 쪽 전문가는 이 단어를 좀처럼 공개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섣부르게 미중 대립 구도를 인정해 미국과 국제사회를 자극하지 않으려는 생각에서다.

[신화통신 트위터 캡처]

[신화통신 트위터 캡처]

중국도 이번엔 물러서지 않을 기세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우한 연구소에서 비롯됐다는 트럼프의 공격에 정면 맞대응이다. 지난 3월 신화통신은 미국 내 코로나19 감염 상황을 ‘트럼프 팬데믹(대유행)’이라고 규정했다. 환구시보는 그 이튿날 사설에서 “우한 실험실에서 바이러스가 시작됐다는 것은 근거가 없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을 위해 폼페이오 장관이 중국을 악당으로 만들고 있다”고 비난했다.

[사진 셔터스톡]

[사진 셔터스톡]

위기감이 반영된 행동이다. 로이터 통신이 입수한 중국 정부 싱크탱크 중국현대국제관계연구원(CICIR) 보고서에선 “중국의 부상을 국가 안보의 위협이자 서구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으로 보는 미국은 중국 공산당의 신뢰를 떨어뜨리려고 애쓰고 있다”며 “(코로나19 사태 이후) 세계 각국의 반중 정서가 천안문 사태 이후 최악의 수준으로 치솟았기에 중국은 미국이 주도하는 반중국 정서 확산을 경계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미국을 때려서라도 반중 정서 확산을 막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지난 3일 미국 뉴욕 브루클린의 한 공원에서 시민들이 줄을 서서 입장을 기다리고 있다. [신화망 캡처]

지난 3일 미국 뉴욕 브루클린의 한 공원에서 시민들이 줄을 서서 입장을 기다리고 있다. [신화망 캡처]

미국도 멈출 생각이 없다. 트럼프의 마음은 급하다. 미국은 전 세계에서 코로나19 희생자와 감염자가 가장 많은 나라다. 트럼프가 치적으로 내세우던 경제 성과도 물거품이 될 위기다. 그로서는 대통령 재선이 힘들까 초조해질 수밖에 없다. 트럼프 대통령과 폼페이오 국무장관이다 직접 나서 “(중국이 코로나19 발원지라는)거대한 증거가 있다”고 공개 선언까지 한 배경이다. 11월 대선 전까지 극적 반전이 없다면 중국에 대한 공세는 더 강해질 수밖에 없다.

양국 전문가들이 "미·중 신냉전은 이미 굳어졌다"고 공통적으로 진단한 이유다.

미국 싱크탱크인 세계안보연구소 칼 루프트 소장은 "코로나19 위기가 지금껏 봐온 어떤 것보다 미·중 관계에 해로운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진단했다. 스인홍 교수도 “미·중 신냉전은 과거 미소 냉전과 다르다”며 “미·중 관계는 더는 몇 년 전, 아니 몇 달 전의 모습과 더 같지 않다”라고 말했다.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는 것이다.

신냉전은 어떻게 전개될까.

[사진 셔터스톡]

[사진 셔터스톡]

스 교수는 신냉전의 특징을 “무한경쟁과 급속한 디커플링(탈동조화)”로 정의했다. 정치적 수사에 그치지 않고 모든 분야에서 미국과 중국이 경쟁할 것이란 뜻이다. 글로벌 공급망으로 엮였던 두 나라의 공생도 어렵다. ‘첨단 기술은 미국, 제조업 대량 생산은 중국’이란 역할 분담이 이뤄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인공지능과 5G 분야 등에서 중국이 자신들을 넘보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코로나 사태로 방역물품 부족에 시달리면서 중국에 싼값에 ‘제조업 외주(外注)’를 준 일을 뼈저리게 후회하고 있다.

지난 1월 15일 미국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류허 중국 부총리가 미중 1단계 무역합의에 서명한 뒤 서류를 들어보이고 있다.[로이터=연합뉴스]

지난 1월 15일 미국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류허 중국 부총리가 미중 1단계 무역합의에 서명한 뒤 서류를 들어보이고 있다.[로이터=연합뉴스]

구체적으론 당장 지난 1월 이뤄진 미국과 중국의 1단계 무역 합의가 깨질 공산이 크다. 중국의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 올 초만 해도 중국은 미국과의 1단계 무역 합의 내용인 '향후 2년간 2000억 달러(약 245조 원)어치 미국산 제품과 서비스 추가 구매' 약속을 지키기 위해 미국산 농산물을 적극적으로 사들였다. 하지만 3월 이후 급격하게 줄었다. 3월 2주째엔 대두 수출이 아예 없었다.

미국 역시 1단계 무역 합의에 큰 미련이 없는 듯 보인다. 홍콩 비영리 연구 단체 하인리히 재단의 스티븐 올슨 연구원은 “트럼프 대통령은 1단계 무역 합의가 재선에 유용한 자산이라고 생각했지만, 코로나 이후 상황은 완전히 뒤바뀌었다”며 “중국에 온건하다는 인상을 주지 않으려면 중국과의 합의를 깨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한국이다.

지난 2017년 독일 함부르크 엘부필하모니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문화공연을 마치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문재인 대통령의 손을 잡고 있다. 뒤쪽에 있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바라보고 있다.[사진 청와대]

지난 2017년 독일 함부르크 엘부필하모니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문화공연을 마치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문재인 대통령의 손을 잡고 있다. 뒤쪽에 있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바라보고 있다.[사진 청와대]

한국으로서는 미국과 중국이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 중국의 제조업 생산 능력, 미국의 소비 시장이 만들어 내는 국제 분업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미·중 두 나라와 모두 FTA를 체결한 나라다. 우리의 기술력만 받쳐준다면 중국과의 제조업 협력도, 미국 시장 진출에도 유리한 구도다. 미국과 중국을 잇는 산업 브리지 역할도 할 수 있다.

아직 괜찮아 보인다. 전염병 확산을 안전하게 차단한 한국은 미·중 양국에 몸값이 높다. 중국은 1일부터 한국 기업인의 중국 입국 시 격리를 최소화하는 등 입국 절차를 간소화하는 ‘신속 통로’(패스트 트랙)를 실시하고 있다. 시진핑 주석의 하반기 방문도 기대된다.

미국도 '러브 콜'을 보낸다.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지난달 29일 “호주, 인도, 일본, 뉴질랜드, 한국, 베트남 등과 협력해 세계 경제를 전진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미·중 모두 코로나19 이후 경제 동맹으로 한국을 염두에 둔다는 말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4일 오후 청와대에서 수석·보좌관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4일 오후 청와대에서 수석·보좌관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나 미·중 대립이 격화되고, '신냉전 체제'가 굳어진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미국과 중국으로 부터 오는 러브 콜은 '내 편에 서라'는 압박으로 변할 수밖에 없다. 양측으로부터 선택을 강요받게 되면 한국과 중국, 미국 간 경제 공조 구조는 작동하기 어렵다.

경험이 있다. 우리는 미·중 사이에 끼여 이미 몇 차례 ‘경제적 몸살’을 앓았다.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체계 배치 때와 미·중 무역갈등이 대표적이다. 코로나 발 신냉전은 그때만큼, 아니 더 어려운 상황이 될지도 모른다.

전문가들은 미·중 싸움에 흔들리지 않을 경제 체력을 갖추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입을 모은다. 그런 한편으로는 '러브 콜'이 '압박'으로 변하지 않도록 외교 역량을 발휘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꼭 해야 할 일이기도 하다. 이렇듯 미·중 양국에서 제기되고 있는 '미·중 신냉전 체제' 주장은 우리 정부와 기업에 어려운 과제를 던지고 있다.

차이나랩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사진 차이나랩]

[사진 차이나랩]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