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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n번방 추적 디지털 장의사, 그도 성착취 기생충이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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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자인가, 무법자인가.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의 주범 조주빈(25)을 추적했다고 밝혀 화제가 된 '디지털 장의사(온라인 기록 삭제 전문가)'가 여러 음란물 사이트와 결탁해 음란물 유통을 방조했다는 의혹이 추가로 제기됐다.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들을 도우며 주목받은 디지털 장의사가 성착취 산업에 기생해 돈을 벌고 있다는 비판이 점점 커지고 있다.

2018년 5월 서울 마포경찰서에 '유명 유튜버' 성추행 및 노출사진 유출 피해 사건 관련 참고인 신분으로 출석한 박형진 이지컴즈 대표 [연합뉴스]

2018년 5월 서울 마포경찰서에 '유명 유튜버' 성추행 및 노출사진 유출 피해 사건 관련 참고인 신분으로 출석한 박형진 이지컴즈 대표 [연합뉴스]

'박사 추적자'의 민낯

중앙일보가 최근 입수한 디지털 장의업체 '이지컴즈'의 카카오톡 그룹채팅방 기록과 복수의 이지컴즈 관계자 증언에 따르면, 이 회사 박형진(38) 대표가 2018년부터 업계 장악을 위해 여러 음란 사이트 운영자와 '독점 삭제 제휴'를 맺어온 정황이 확인됐다. 박씨는 지난 1년여간 텔레그램 '박사방'을 추적해왔다고 주장해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박씨는 지난 2018년 회사 직원들에게 보낸 일련의 카톡 메시지에서 국내 최대 음란물 사이트 '야○티비(이하 야○)'와 '유○센터(이하 유○)'를 언급하며 독점 계약을 맺었다고 했다.

"야○에 2개월 제휴비 비트코인 200만원 입금 중~ 야○ 삭제는 우리만 가능! 독점!(3월 8일)", "야○ 운영자가 (피해 게시물을) 안 지워주네. 수위 높고 인기 게시물이야 운영자라면 늦게 삭제해주는 게 맞아서(4월 16일)", "제휴 갱신했다. 야○ 200만원, 유○ 200만원. 2개월. 월 10건까지, 3일 안에 삭제. 11건부터는 건당 10만원(5월 1일)" 등의 내용이었다.

다른 디지털장의업체의 삭제 요청은 받아주지 말라며 음란 사이트 두 곳에 제휴 명목으로 수백만원을 건넸다는 의미다. 박씨는 해당 대화에서 "스튜디오 사장이 (미리) 말해줬다"며 촬영물이 불법 유포될 예정인 피해자 7명의 명단을 공유하기도 했다.

피해자 리스트 미리 올린 박형진.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피해자 리스트 미리 올린 박형진.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인천지검은 이 같은 사실을 파악해 지난달 27일 박씨를 정보통신망법상 음란물 유포 방조 및 성폭력처벌법상 카메라 등 이용 촬영 방조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박씨가 2018년 3월부터 6월까지 음란 사이트 운영자에게 자신이 운영하는 업체의 배너 광고비 600만원을 지급한 혐의다. 당시 인천지검은 "음란물 유포 피해자로부터 게시물 삭제 요청을 받는 자가 사실은 음란 사이트 운영을 방조해 피해자를 양산해온 점을 고려해 엄정 처리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박씨는 2018년부터 자사 홈페이지에 "음란 사이트 운영자가 사진 삭제를 대가로 배너 광고를 요구했다"며 "피해자의 요청으로 돈을 입금했으며, 사진 삭제가 주목적이었다. 디지털 장의사 광고는 하지 않았고, (자신이 운영하는) 토토사이트 등의 배너 광고를 했다"고 밝혀왔다.

박형진씨가 지난달 9일 자사 홈페이지에 올린 음란사이트 제휴 관련 해명문 [사진 디지털장의사.kr 캡처]

박형진씨가 지난달 9일 자사 홈페이지에 올린 음란사이트 제휴 관련 해명문 [사진 디지털장의사.kr 캡처]

다른 성착취 사이트와도 결탁 의혹

이지컴즈 전 관계자들은 박씨가 또 다른 음란 사이트 '꼬○넷'과 제휴했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비트코인 거래 대행업체를 통해 꼬○넷 운영자에게 삭제 비용을 입금했다는 것. 피해자가 요청하면 무료로 게시물을 삭제해주던 곳들도 박씨의 개입 이후 돈을 내야 성착취물을 삭제해주는 식으로 바뀌었단 얘기다. 꼬○넷은 '제2의 소라넷'을 표방하던 대형 성착취물 사이트다.

음란 사이트‘꼬O넷’과 독점 제휴 의혹.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음란 사이트‘꼬O넷’과 독점 제휴 의혹.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동종업계 종사자였던 A씨는 "박씨가 당시 꼬○넷과 건당 30만원에 제휴하고 2건을 삭제해주는 조건으로 의뢰인에게 100만원을 받아 본인은 40만원을 챙겼다"며 "실제 꼬○넷에 올라온 게시물 삭제를 요청하면서100만원을 박씨에게 입금한 의뢰인이 검찰에 해당 내용을 진술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A씨는 또 "꼬○넷, 야○티비 등은 (피해자 등이 요청하면) 피해 게시물을 무료로 삭제해주던 곳이었는데, 이지컴즈 제휴 이후 유료 삭제로 바뀌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제휴 전인 2016년 5월부터 2017년 9월까지 다른 디지털 장의사들이 무료 삭제한 기록이 있다"고 말했다.

이지컴즈 직원 관리를 맡았었다는 B씨도 "박씨가 음란 사이트와 독점 제휴를 맺으려다 잘 안 되면 그 사이트 운영자의 IP를 추적해 경찰에 넘기는 식으로 보복하곤 했다"고 말했다.

음란물 유포 정황도

박씨는 별도로 운영한 사이트에서 음란물 게시판을 운영하기도 했다. '토토리치(totorich.co.kr)', '토토플레이(totoplay.co.kr)' 등 그가 운영한 여러 스포츠토토 정보 사이트에는 '안구정화'라는 음란물 게시판이 있었다. 이 게시판에는 주로 여성 모델·인터넷 방송 진행자(여캠 BJ)들의 노출 사진이 게시됐다. 토토플레이에는 지난해 8월까지 음란물·불법 도박사이트·성매매업체 광고 등 총 5700여개의 게시물이 올라와 있었다. 현재 이 사이트들은 접속이 되지 않는다.

토토플레이에 올라와있던 음란물(왼쪽)과 불법 성매매업체 홍보글

토토플레이에 올라와있던 음란물(왼쪽)과 불법 성매매업체 홍보글

박씨는 이 게시물들에 대해 직원들에게 카톡으로 "30분마다 '블○티비(음란물도 올라오는 스포츠 중계 사이트)'에서 자동으로 가져온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신진희 변호사는 "동의 없는 유포로 보이는 일반인 사진, 여성의 주요 부위 부각 사진 등은 정보통신망법상 음란물 유포 또는 성폭력처벌법상 촬영물 반포로 적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

직접 운영했던 토토 사이트로 음란물 긁어온 정황.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직접 운영했던 토토 사이트로 음란물 긁어온 정황.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이에 대해 박씨는 지난달 28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성기 노출이 없으니 (판례상의) 음란물이 아니지 않냐"고 했다가 1시간 뒤엔 말을 바꿔 "토토플레이는 실제로 운영한 적이 하루도 없다"며 반박했다. 꼬○넷과의 제휴 의혹에 대해서도 다음날 "30만원은 피해 게시물 삭제를 위한 것이었고, 나머지 30만원은 다른 장의업체(를 대신해서 냈다)"라고 말했다. 피해자 리스트를 직원들에게 미리 공유한 것과 관련해선 "야○(음란사이트) 운영자한테 해당 리스트를 올리지 말아달라고 하려던 것"이라고 말했다. 중앙일보는 박씨에게 토토사이트 미운영 증거 등 추가 해명과 입장을 듣기 위해 수차례 연락했으나 받지 않았다. 박씨는 5일 그간 운영해온 '디지털장의사.kr' 홈페이지를 폐쇄하고 네이버 블로그로 이전했다.

디지털 장의사 박형진씨가 '토토플레이(위)'와 '토토리치'를 운영했다는 증거. 사이트 대표자명 및 입금 계좌주가 '이지컴즈 박형진'으로 되어있다. 토토플레이는 2018년 4월 14일부터, 토토리치는 2016년 5월 24일부터 운영됐다(사이트 등록일 기준). 토토리치는 지난해 8월까지 박씨가 운영하다가 다른 업체가 넘겨받았으며, 토토플레이는 검찰이 올해 3월 박씨를 불구속 기소한 뒤 사이트가 열리지 않고 있다.

디지털 장의사 박형진씨가 '토토플레이(위)'와 '토토리치'를 운영했다는 증거. 사이트 대표자명 및 입금 계좌주가 '이지컴즈 박형진'으로 되어있다. 토토플레이는 2018년 4월 14일부터, 토토리치는 2016년 5월 24일부터 운영됐다(사이트 등록일 기준). 토토리치는 지난해 8월까지 박씨가 운영하다가 다른 업체가 넘겨받았으며, 토토플레이는 검찰이 올해 3월 박씨를 불구속 기소한 뒤 사이트가 열리지 않고 있다.

성인몰 운영·협박…업계윤리 어디로

이 같은 문제는 디지털 장의업계 전반의 문제이기도 하다. 현재 국내 디지털 장의업체 한 곳당 연 매출은 2400만원~5억원으로 천차만별이다. 운영자도 과거 '컴맹'이었던 사람부터 부업으로 하는 사람 등 다양하다. 진입과 운영에 제도적인 틀이 없던 탓에 업계 관리가 되지 않고 있단 지적이 나온다.

실제 디지털 장의업체 B사는 성인 인증 없이 들어갈 수 있는 성인용품 사이트 T몰을 불법 운영 중이다. 이승혜 변호사는 "아동·청소년 여성의 성기를 연상케 하는 남성용 자위기구 등의 판매는 정보통신망법·청소년보호법 위반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네이버 블로그·네이버TV를 통해 디지털 장의사로 홍보 중인 이 회사 대표는 지난달 29일 "성인용품 사이트의 명의만 내 것이고 실제 운영은 동생이 한다"고 해명했다.

또 지난해까지 디지털 장의업체에서 일한 사람이 성관계 동영상이 불법 유포된 피해자에게 해당 영상명을 언급했다가 협박 혐의로 고소당한 사건도 있었다. 해당 사건은 현재 송파경찰서가 수사 중이다.

디지털 장의업체 B사가 운영 중인 것으로 추정되는 성인용품 판매 사이트 [사진 T몰 캡처]

디지털 장의업체 B사가 운영 중인 것으로 추정되는 성인용품 판매 사이트 [사진 T몰 캡처]

김현경 서울과기대 IT정책전문대학원 교수는 "일부의 잘못이 업계 전체에 대한 규제로 이어지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면서도 "현재 디지털 성착취 산업 관계자에 대한 사법당국의 미미한 처벌이 범죄 억지력을 약화하고 있다.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피해자가 사설업체에 고가의 삭제비를 내고 자력으로 성착취물을 삭제해야 하는 상황 자체가 잘못됐다는 지적도 있다. 서승희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대표는 "디지털 장의업계만 콕 집어 도덕적 기준을 강화하는 것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일 뿐"이라며 "장기적으로 디지털 장의사의 대안이 될 수 있는 정부·시민단체의 피해자 지원기구를 전국 규모로 확대해 피해자 지원 체계를 수립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정민 기자 kim.jungmin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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