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국격 맞는 새 삼성" 82년 고수한 무노조 원칙 버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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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이재용 부회장이 내놓은 대국민 사과문의 핵심은 '과거에 대한 반성과 미래의 변화'이다. 특히 이 부회장은 스스로 “대한민국의 국격에 맞는 새로운 삼성을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이 부회장이 경영 전면에 나선 직후 강조하던 '뉴 삼성호'을 향해 삼성을 바꾸기 위한 혁신이 뒤따를 것이란 분석이다. 재계에서는 이 부회장이 이사회 중심의 경영 체제 확립과 노조 활동의 완전한 보장, 성과를 낼 수 있는 신사업 발굴에 매진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6일 삼성승계 과정과 관련한 ‘대국민 사과문’을 직접 발표하고 고개를 숙이고 있다. 장진영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6일 삼성승계 과정과 관련한 ‘대국민 사과문’을 직접 발표하고 고개를 숙이고 있다. 장진영 기자

이재용의 '뉴삼성호' 경영권 승계에 발목 잡혀 

이 부회장이 삼성의 경영 전면에 나선 건 이건희 회장이 와병에 들어간 2014년 5월부터다. 올해로 사실상 삼성의 총수에 오른 지 7년째다. 이 부회장은 경영에 나선 직후 '뉴 삼성'을 표방했다. 먼저 전자·금융·물산 중심의 사업 재편을 추진했다. 잘 할 수 있는 사업에 몰두하고 이외의 사업은 매각한다는 실용주의 경영이다. 그래서 나온 게 한화그룹과의 방산 부문 계열사(삼성테크윈·삼성탈레스)의 ‘빅딜’이다. 또 삼성토탈 등을 롯데에 넘겼다. 이 부회장은 또 삼성의 수직적인 문화를 수평적으로 바꾸려고 했다. 이 부회장이 잡은 뉴 삼성호의 방향이 사업 재편과 조직 문화의 혁신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이 부회장의 뉴 삼성호는 경영권 승계 작업에서 발목이 잡혔다. 삼성은 2015년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을 합병했다. 하지만 이 합병으로 이 부회장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에 연루돼 구속됐다. 이 부회장이 삼성전자에 대한 지분을 늘리기 위해 두 회사의 합병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삼성물산의 주주인 국민연금의 찬성을 받기위해 뇌물을 줬다는 혐의다. 이 부회장은 이 사건으로 현재 파기환송심 재판을 받고 있다.

"경영권 승계로 더 이상 논란 생기지 않게 할 것" 

이 부회장이 사과문에서 “저와 삼성은 승계 문제와 관련해서 많은 질책을 받아왔다”며 “이제는 경영권 승계 문제로 더 이상 논란이 생기지 않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또 “법을 어기는 일은 결코 하지 않고, 편법에 기대거나 윤리적으로 지탄받는 일도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부회장이 실질적인 경영권을 확보하려면 이건희 회장의 삼성전자 지분을 상속받아야하는 만만치 않은 과제가 남아있다. 이 부회장이 "아이들에게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을 생각"이라고 밝혔지만 자신의 경영권 승계작업을 어떻게 추진할지에 대한 방안은 언급하지 않았다.

이건희 회장이 현재 갖고 있는 지분은 삼성전자 4.18%, 삼성생명 주식 20.76%, 삼성물산 2.84% 등이다. 이 부회장의 삼성전자 지분은 0.7%에 불과하다. 재계 관계자는 "이 부회장이 합벅적으로 부친의 지분을 상속받을려면 약 12조~13조원의 상속세를 내야한다"며 "따라서 이 부회장이 상속에 구애받지 않고 삼성을 이사회 중심의 전문 경영인 체제로 전환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이 부회장은 사과문에서 "삼성전자는 기업 규모로 보나 IT업의 특성으로 보나 전문성과 통찰력을 갖춘 최구 수준의 경영만이 생존을 담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사회 중심경영·신사업 발굴 강화할 듯 

이 부회장은 그동안 삼성의 이사회 중심 경영체제를 강꾸준히 추진해왔다. 삼성전자는 2018년 3월 이사회 의장과 대표이사를 분리한 데 이어 지난 2월에는 사외이사인 박재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을 의사회 의장에 선임했다. 삼성 관계자는 "이 부회장은 경영인의 책임경영과 경영인을 감시·견제하는 이사회 강화를 계속 주장해왔다"며 "이사회의 역할이 앞으로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고 전했다. 이 부회장 본인도 책임경영을 위해 2016년 삼성전자 등기이사에 이름을 올린 바 있다. 현재는 파기환송심을 이유로 사내 이사에서 사임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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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회장은 이번 사과를 계기로 그동안 주춤했던 신사업 발굴과 과감한 투자 행보도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이 부회장은 이날 "끊임없는 혁신과 기술력으로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하면서도 신사업에 과감히 도전하겠다"고 밝혔다. 이 부회장은 경영에 나선 직후인 2016년 미국 자동차 전장 회사 하만을 인수해 키웠듯 인공지능(AI)이나 사물인터넷(IoT) 등에 관심을 보여왔다. 또 미국에 세운 삼성 리서치 아메리카(SRA)를 통해 AI와 자율주행차, 사물인터넷(IoT) 전문가를 영입을 주도했다.

창립 후 82년간 고수한 '무노조 경영' 폐기  

삼성이 80여년간 이어온 무노조 경영은 완전히 폐기할 것으로 보인다. 삼성은 1960년 제일모직 노조, 1977년 제일제당 미풍 공장 노조 등을 강제 해산하는 등 철저히 무노조 경영 원칙을 고수했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이상훈 전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이 삼성전자서비스 노조 와해 혐의로 구속된 후 이미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당시 삼성전자와 삼성물산은 “과거 회사 내에서 노조를 바라보는 시각과 인식이 국민의 눈높이와 사회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고 공식 사과했다. 이 부회장 역시 이번 대국민 사과에서 “이제 삼성에선 더 이상 무노조 경영이 없도록 하겠다”며 “노동 3권을 확실히 보장하겠다”고 다짐했다. 삼성에는 이미 노조원 수는 소수지만 삼성전자 내에 4개 노조와 삼성전자서비스, 삼성SDI, 삼성생명, 삼성증권 등에 노조가 설립돼 있다.

서울 서초구 삼성생명 서초타워에서 2월 5일 열린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첫 회의에서 김지형 위원장(오른쪽)이 위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서초구 삼성생명 서초타워에서 2월 5일 열린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첫 회의에서 김지형 위원장(오른쪽)이 위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삼성의 준법경영 노력 역시 더욱 강화할 전망이다. 특히 이 부회장의 대국민 사과를 끌어낸 삼성준법감시위원회(이하 삼성준법위)가 감시자 역할을 떠맡을 것으로 보인다. 준법감시위는 이 부회장의 파기환송심을 맡은 재판부가 삼성 측에 준법 경영에 대한 특단의 조치를 요구한 직후인 지난해 2월 출범했다. 이 부회장은 준법감시위와 관련해 “준법이 삼성의 문화로 확고하게 뿌리내리도록 하겠다”면서 “저와 관련된 재판이 끝나더라도 준법감시위는 독립적 위치에서 계속 활동하고 중단없이 이뤄지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김태윤 기자 pin2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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