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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관과 소송, 많이 배웠다" 지휘자로 돌아오는 '해직 단장'

중앙일보

입력

윤호근 전 국립오페라단 단장. 이단 17일 지휘자로 돌아온다. [사진 윤호근 제공]

윤호근 전 국립오페라단 단장. 이단 17일 지휘자로 돌아온다. [사진 윤호근 제공]

“지휘하는 사람은 항상 이 작품으로 돌아오게 되는 것 같다.” 전 국립오페라 단장 윤호근(53)씨가 지휘자로 돌아온다. 이달 17일 서울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열리는 베토벤 탄생 250주년 음악회다.  베토벤의 첫 번째 교향곡을 지휘하며 서울튜티앙상블과 함께 무대에 선다.

윤호근 전 국립오페라 단장

윤씨는 문화체육관광부를 상대로 한 해직 무효 소송에서 최근 승소했다. 문체부는 2018년 3월 국립오페라 단장으로 윤씨를 임명했고 지난해 5월 채용 비리를 근거로 해임했다. 윤씨가 문체부 장관에게 제기한 소송에서 올해 3월 법원은 “채용 관련자들과 협의를 거쳐 공개 채용했으므로 채용 비리가 아니다”라고 주장한 윤씨의 손을 들어주며 복직시켰다. 윤씨는 내년 2월까지인 임기를 채울 수 있게 됐지만 복직 18일 만에 스스로 사직서를 내고 국립오페라단을 나왔다.

“귀한 공부였다.” 전화 통화에서 그는 “장관을 상대로 소송까지 했으니 엄청난 일이었지만 성장하는 시기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소송을 10개월 했는데 마음이 어지러워 철학책을 많이 읽고 오페라단에 있을 때 시간을 못 냈던 악보 공부에도 매진할 수 있었다.” 스스로 사퇴한 데 대해서는 “진흙탕을 만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의 음악가 복귀 공연은 원래 3월로 예정돼 있었다. “바이올린ㆍ첼로와 함께 피아니스트로 무대에 서려고 했는데 코로나 19로 취소됐다. 당시에도 베토벤을 연주하려 했는데 이번 무대에 다시 베토벤을 하게 돼 신비롭다.” 윤씨는 본래 피아니스트였다. 이후 독일에서 유학하며 지휘자가 됐고 2009년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에게 발탁돼 베를린 국립오페라의 부지휘자로 4년 동안 활동했다.

베토벤 연주를 ‘신비롭다’하는 이유는 작품의 내용 때문이다. “베토벤의 음악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항상 해피엔딩으로 간다. 단조로 시작하는 5ㆍ9번 교향곡도 결국에는 승리를 이야기한다. 굴복하지 않는 정신으로 용기를 주는 음악이다.” 윤씨는 이러한 베토벤의 음악이 어려운 시기에 위안을 줬고 청중에게도 그러하리라 믿는다. “삶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을 절실히 배웠다. 나는 개인적으로 그랬지만 지금 세계가 코로나라는 재난 앞에 절망하고 있다. 나는 음악이 있어서 견딜 수 있었고, 청중에게도 그 에너지를 전하고 싶다.”

이번에 연주하는 베토벤의 첫 교향곡은 C(다)장조다. 가장 기본적인 조성이다.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새로운 생각을 해야 하는 조성이고 완전히 새로운 세상을 그릴 수 있는 곡이다. 지휘하는 사람에게는 초심을 일깨운다.” 작곡가 정승재가 베토벤(Beethoven)의 이름을 둘로 나눠 재해석해 만든 곡 ‘베트(Beet)와 호벤(Hoven)’도 이번 연주에서 초연할 예정이다.

윤씨는 “앞으로 국내에서 피아니스트, 지휘자, 기획자로 활발히 활동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좋은 연주자들과 함께하는 공연을 준비해보는 중이다. 오페라단 단장으로 일하고 또 국가와의 소송을 하면서 한국에서 음악 활동을 할 때 무엇이 중요한지 알게 되는 계기가 됐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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