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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판 작계 5029 “북·중 조약 내세워 미국 막고 친중세력 지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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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북한 급변사태, 중국 개입 형태와 한국 대비책

신상진 광운대 국제학부 교수

신상진 광운대 국제학부 교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건강이상설이 오보로 막을 내리긴 했지만, 북한 급변사태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키는 계기가 된 것이 사실이다. 김정은 유고(有故)는 북한과 한반도에 이해관계가 깊은 국가의 개입을 불러올 개연성이 높다. 코로나19 사태로 대외문제에 신경 쓸 겨를이 없는 상황에서도 미국은 정보자산을 총동원해 원산 인근 지역에 대한 정보수집 활동을 강화했고, 중국은 당 중앙 대외연락부 간부가 이끄는 의료지원단을 북한에 파견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김정은 유고 가능성을 탐지해 선제 대응하려는 미국과 중국의 경쟁적 행보는 북한 급변사태에 개입하기 위한 사전 준비작업의 일환이었다.

“미·중 모두 군사충돌을 원치 않아 북한 분할지배 구상이 현실화할 #우려가 있다. 미국과 긴밀히 협력하고, 중국의 군사개입까지 고려해 #‘작계 5029’를 정비하고, 사태 이전에 중국과 안보신뢰를 쌓아야 한다. #준비 없이 평화와 통일이라는 행운은 찾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김정은이 정상적으로 통치할 수 없는 상황이 도래한다면, 북한 내부의 불안이 고조되고 한반도 안보에 엄중한 위협을 야기할 수 있다. 북한은 국제사회의 강력한 압박조치로 극심한 경제난을 겪고 있다. 핵 무장력을 고도화한 북한이기 때문에 우려는 가중된다. 정통성을 인정받을 만큼 양성된 후계자도 없다. 김일성·김정일 사후보다 북한 내부와 국제질서에 훨씬 거대하고 험난한 파고가 예상되는 이유다.

특히 중국은 북한 급변사태에 신속하고 깊숙이 관여할 많은 요인을 가지고 있어 우려된다. 북한에서 정치·경제 불안이 고조되어 피난민이 발생하면 대부분은 중국으로 유입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북한 피난민이 대거 유입되면 중국 동북지역의 사회경제적 안정을 흔들 수 있다. 중국은 피난민 구호를 빌미로 북한 지역에 군사력을 진입시켜 난민과 무기를 휴대한 탈영병의 유입을 차단하려 할 수 있다.

중국은 북한 내 광물자원 개발권과 나진항 임차권 등 경제 이권을 지켜야 한다. 북한의 변화 징후를 신속하게 포착하는 데에도 유리하다.

북, 중국 접경에 핵·미사일 2/3 밀집

북한이 핵·미사일 개발에 주력하던 2017년 8월 16일 하이청(海城) 주둔 북부 전구 기계화 보병사단의 전술 훈련을 조지프 던퍼드(왼쪽) 미 합참의장이 쑹푸셴 당시 북부전구 사령관(오른쪽)의 안내로 참관하고 있다. 미 하원 자문기구인 미·중 경제안보검토위원회(USCC)는 2018년 연례보고서에서 당시 훈련이 북한 급변사태를 직접 겨냥하지는 않았지만 유사시 미·중 군사 최고 레벨의 오판을 줄이기 위해 전략적으로 마련한 자리였다고 평가했다. [사진=미합참 페이스북]

북한이 핵·미사일 개발에 주력하던 2017년 8월 16일 하이청(海城) 주둔 북부 전구 기계화 보병사단의 전술 훈련을 조지프 던퍼드(왼쪽) 미 합참의장이 쑹푸셴 당시 북부전구 사령관(오른쪽)의 안내로 참관하고 있다. 미 하원 자문기구인 미·중 경제안보검토위원회(USCC)는 2018년 연례보고서에서 당시 훈련이 북한 급변사태를 직접 겨냥하지는 않았지만 유사시 미·중 군사 최고 레벨의 오판을 줄이기 위해 전략적으로 마련한 자리였다고 평가했다. [사진=미합참 페이스북]

북한 핵무기와 생화학무기 등 대량살상무기 기지 대부분이 중국 국경 인근 지역에 배치되어 있어 중국에 위협을 주고 있다. 북한 핵시설과 미사일 기지 3분의 2가량이 중국 국경 100㎞ 반경 내에 은닉·배치되어 있다. 북한 정권이 핵무기 통제력을 상실하거나 핵물질 유출 사고가 발생하면 최대 피해자는 중국이다. 이에 신속대응군을 진입시켜 북한 핵시설을 장악하고 핵물질 유출 방지조치를 취할 가능성이 높다.

자동개입조항이 포함된 군사동맹조약이 아직 유효하다는 점도 중국에 북한 급변사태에 개입할 명분을 제공해 줄 수 있다. 북한 내 친중세력의 요청 형식을 빌려 북한에 독자적으로 군사력을 진입시키거나 유엔(UN) 안보리 협의를 거쳐 북한 내에 완충지대를 설치해 북한 정권의 안정을 지원하고 대북 영향력 확대를 도모할 것이다. 중국 북부 전구에 배치된 군사력을 한반도에 신속하게 전개하는 것도 한·미에 비해 용이하다. 반대로 남북한은 각기 다른 국가 명의로 유엔에 가입했다는 점에서, 한국은 북한 내부사태에 직접 개입할 국제적 명분을 확보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국가통합과 영토주권 수호를 리더십 강화의 핵심 기제로 활용하고 있다. 북한 정권의 안정유지를 중국의 중대한 전략이익으로 인식한다. 더구나 미·중 대립이 심화하면서 중국은 북한의 전략적 가치를 더욱 중요하게 인식한다. 시진핑은 북·중 관계를 ‘순치(脣齒·입술과 이)관계’, ‘운명공동체’, ‘하나의 참모부’로 부르며, 북한의 합리적 안보·발전에 관한 관심사를 해결하는 데 흔쾌히 도움을 제공하겠다고 확약했다. 최근 북·중의 밀착은 북한 급변사태에 대한 중국의 적극적 개입 가능성을 높이는 요인이다.

징후→폭발→복구 단계별 개입 준비

이처럼 중국이 북한 급변사태에 개입할 유인은 많다. 하지만 한국전쟁처럼 대규모 군사력 투입을 결정하고 이를 실행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군사개입을 한 뒤 단기간 내에 북한 사태를 해결하지 못하고 북한에 오랜 기간 군 병력을 주둔시켜야 하는 감당하기 어려운 난관에 봉착할 수 있고, 한·미와 군사 충돌 등 부정적 파장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중국은 북한 급변사태에 신속하고 적극적이면서도 무척 신중하게 대처할 것이다.

중국은 북한 급변사태를 징후기→폭발기→복구기 등 세 단계로 나눠 대처한다는 단계별 내부 비밀 위기관리 대응방안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15년 전 국가안전영도소조 지시로 입안된 ‘국가 섭외 돌발사건 응급대비방안’이다. 중국판 ‘작계 5029’인 셈이다. 북한 급변사태 징후가 포착되는 초기 단계에는 북한 내부정세 파악과 사태 악화 방지에 역량을 집중한다. 북한의 정치·경제 불안정이 심화하지 않도록 북한 정권에 대한 지지와 경제 지원을 제공하는 조치를 취할 것이다.

북한 급변사태가 폭발한다면 우선 사태가 더욱 악화하지 않도록 지원을 제공한다. 북·중 우호 관계가 이어지길 바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면서 친중세력의 집권을 도울 것이다. 또 국경 지역 무장역량을 증강 배치하고 경계를 강화해 중국 내 파급 영향을 차단하고, 북·중 동맹조약을 강조해 미국 등 외부세력의 개입 가능성을 막을 것이다. 북한 핵무기와 생화학무기 유출 방지 조치도 이 단계에서 취해진다. 미국이 북한 핵시설과 생화학무기 시설을 타격 또는 접수하거나 핵물질 유출 사고가 발생한다면, 중국은 무장력을 북한 지역에 진입시켜 상황을 조속히 통제·종료하려 할 가능성이 높다. 이 과정에서 미·중 군사충돌 가능성이 있다.

사태가 진정 국면에 진입하면, 후계체제가 안착하도록 지원하고 중국에 유입된 피난민 송환조치에 나설 것이다. 북한에 중국식 개혁개방의 길을 선택하도록 권유하고, 일정 기간 유엔 등 국제기구가 주도하는 복구와 평화유지 활동을 제안할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 급변사태가 반드시 북한 정권의 해체와 한국에 의한 통일을 가져다주지 않는다. 북핵 접수와 통제를 둘러싸고 미국과 중국의 군사적 개입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 미·중 모두 한반도에서 대규모 군사충돌을 원치 않기 때문에, 미국 전문가 사이에서 논의되는 미·중 북한 분할지배 구상이 현실화할 우려도 있다. 동맹국 미국과 긴밀히 협력하고, 중국의 군사개입 가능성까지 고려해 ‘개념계획 5029’를 정비하고, 사태 발생 이전에 중국과 안보신뢰를 쌓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준비 없이 평화와 통일이라는 행운은 찾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미얀마 코캉 사태 처리로 본 중국의 북한 난민 대책

지난 2009년 9월 중국과 국경을 접한 미얀마 코캉지역에서의 무장충돌로 4만 여 의 난민이 중국 윈난성 난싼현으로 진입했다. 당시 중국 정부가 마련한 난민 캠프에 수용된 미얀마 난민들이 식수를 받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 [난싼=신화통신]

지난 2009년 9월 중국과 국경을 접한 미얀마 코캉지역에서의 무장충돌로 4만 여 의 난민이 중국 윈난성 난싼현으로 진입했다. 당시 중국 정부가 마련한 난민 캠프에 수용된 미얀마 난민들이 식수를 받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 [난싼=신화통신]

중국은 영내로 유입된 북한 주민을 난민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불법 입국자로 다룬다. 1990년대 말 식량난으로 최소 5만여 명의 북한 주민이 국경을 넘었다. 해외 공관에 진입한 일부 탈북자는 외교교섭을 거쳐 한국을 비롯한 자유 세계로 탈출했지만, 대부분은 중국 공안에 체포돼 북한으로 송환됐다.

김정은 신변에 변고로 발생한 혼란을 북한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면, 대량의 난민이 중국에 유입될 수 있다. 이때 중국의 난민 대응 방식은 기존과 달라질 수 있다.

중국의 북한 대량 피난민 대응에 시사점을 줄 수 있는 사건이 있다. 2009년 중국 윈난(雲南)성과 접경한 미얀마 코캉 지역에서 정부군과 반군 사이에 무장충돌이 발생했다. 4만 명의 주민과 7백 명의 무장세력이 일시에 중국 영내로 진입했다. 윈난의 치안유지와 경제에 큰 피해를 야기한 급변사태였다. 중국은 가장 위급하고 광범위한 대응을 요구하는 1급 급변사태로 판단하고 대응했다.

먼저 국무원 내 중앙지휘본부를 설치했다. 현장에는 일선 지휘부를 설치해 24시간 가동했다. 윈난성 정부도 자체 대응방안을 마련했다. 무장경찰부대를 증파하고, 인민해방군 변경관리부대에 도로를 엄격히 통제하도록 지시했다. 마약과 무기 반입을 철저히 통제하고, 무장세력이 휴대한 무기와 탄약을 압수했다. 국경에 피난민 수용소를 설치해 식품·음료·의약품 등을 제공하고 위생·방역 조치를 취했다.

미얀마 정부를 상대로 외교·안보 조치도 들어갔다. 미얀마 정부에 국경 안정 유지를 주문하고, 미얀마 내 중국인의 안전과 재산권 보호를 요구했다. 중국군 총참모장을 미얀마에 보내 중국의 입장을 전달했다. 사태가 종료된 뒤에는 피난민의 미얀마 복귀 설득작업을 전개했다.

코캉 사태는 실제 난민의 규모에 따라 북한과 다를 수 있겠으나 중국이 난민 대처 방식을 보여준 드문 참고 사례다.

◆신상진

대만 국립정치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통일연구원에서 북·중 관계를 연구했고, 노무현 정부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외교·안보 실무를 경험했다. 저서로 『한중 교류협력 발전사』 등이 있다.

신상진 광운대 국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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