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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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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박진석 기자 중앙일보 기획취재담당
박진석 사회에디터

박진석 사회에디터

“선배, 죄송한데 제가 좀 따라다니면 안 되겠습니까?”

1999년 10월 30일 밤 인천의 한 대형병원 장례식장 앞에서 기자는 다른 언론사의 한 선배 기자에게 이렇게 읍소했다. 그 직전인 그날 저녁 6시 무렵 인천 인현동의 4층짜리 상가건물 지하 공사 현장에서 불이 났다. 삽시간에 번진 불과 유독가스로 2층 ‘호프집’에서 가을 축제 뒤풀이를 하던 고교생 55명이 생때같은 목숨을 잃었다.

갓 입사했던 기자는 현장으로 급파됐고 유족을 취재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사실상의 첫 현장 취재였지만 난이도는 최상급이었다. 20여년이 지난 현재 시점에서의 경험칙에 따르면 사고 유족에 대한 취재는 가장 어려운 편에 속한다. 모든 것을 잃어버린 이들의 가슴을 다시 한번 모질게 후벼 파야 해서다.

취재의 ABC도 몰랐던 기자는 좀처럼 엄두가 나지 않아 장례식장 앞을 서성거리기만 했다. 그때 나타난 선배 기자는 구원자나 마찬가지였다. 염치 불고하고 다가가 인사한 뒤 “취재를 방해하지 않을 테니 동행하게 해달라”고 사정했다. 그 선배가 선뜻 받아준 덕택에 함께 한 빈소를 찾아 영정에 절한 뒤 한 유족 앞에 무릎 꿇고 앉았다. 눈물도 메말라버린 듯 넋이 나간 표정으로 질문을 듣던 유족의 표정은 아직도 뇌리에서 잊히지 않는다.

그 사건에는 비상구와 소방시설의 부재, 무허가 불법 영업, 허술한 법규 등 유사 사건들에서 봤던 인재(人災)적 요소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높은 분들의 다짐도 있었다. 하지만 그때뿐이었다. 이후 우리 사회는 많이 발전한 듯 보이지만 인재성 재난은 좀처럼 근절되지 않고 있다.

황금연휴 직전 경기도 이천의 물류센터 공사 현장에서 또 한 번의 대형 화재 참사가 발생했다. 38명의 아버지, 아들, 남편, 동생이 목숨을 잃었다. 대통령의 말대로 ‘후진적이고 부끄러운 사고’였다. 코로나19 사태 극복의 모범사례로 칭송받으면서 잔뜩 고무된 우리에게 이번 참사는 사회의 수준을 냉정하게 되돌아보도록 만들었다. 다짐과 약속은 그 정도면 됐다. 이번에야말로 법적·제도적 장치를 완비해 최소한 ‘사람에서 비롯된 재난’의 재발만큼은 막아야 하겠다. 다시 한번 희생자들의 명복을 빈다.

박진석 사회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