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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간 54번 흔들렸다…지진 공포에 떠는 ‘땅끝마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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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지난 4일 오후 전남 해남군 산이면 산이초등학교 학생들이 지진이 난 상황을 가정해 책상 아래로 몸을 피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지난 4일 오후 전남 해남군 산이면 산이초등학교 학생들이 지진이 난 상황을 가정해 책상 아래로 몸을 피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지진이다. 모두 책상 아래로 대피!”

해남서 지난달 26일부터 지진 발생 #주민 “한밤중 쾅, 문자보고 알아” #지진 원인 미스터리…불안감 확산

4일 오후 3시 전남 해남군 산이면 산이초등학교 교실. 돌봄학교에 참여한 1~3학년 학생 10명이 수업 도중 재빨리 책상 아래로 몸을 숨겼다. 학교에 지진이 났을 때를 대비한 가상 대피훈련 모습이었다. 이 학교는 전날 규모 3.1의 지진이 발생한 지점에서 불과 10㎞가량 떨어진 곳이다.

해남군 지진 발생 현황.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해남군 지진 발생 현황.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책상 아래 몸을 웅크린 학생들은 시종 진지한 얼굴로 지진이 끝날 때를 기다렸다. 이후 학생들은 인솔 교사를 따라 차례로 건물 밖으로 나가는 훈련까지 마친 뒤에야 자리로 돌아왔다. 심재호 산이초 교장은 “어젯밤 해남에서 유례없던 지진이 발생해 학부모들의 걱정이 큰 상황”이라며 “학생들에게 지진의 심각성을 알려주기 위한 훈련”이라고 말했다.

‘땅끝마을’이 있는 국토 최남단 해남이 지진 공포에 떨고 있다. 40년이 넘도록 지진 한 번 없었던 곳에서 최근 9일 동안 54차례나 지진이 발생했다. 이곳에서는 4월 26일 규모 1.8 지진을 시작으로 이날 오전 11시까지 끊임없이 지진이 났다.

주민들은 지난달 28일(규모 2.1)과 지난달 30일(규모 2.4), 지난 2일(규모 2.3)까지도 지진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분위기였다. 기상청이 통보하는 규모 2.0 이상의 지진이 잇따랐음에도 직접적인 지진 피해를 느끼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3일 규모 3.1의 지진이 발생한 후 상황이 달라졌다. 상당수 주민이 간척지인 해남군 서북서쪽 21㎞ 지점에서 발생한 지진을 직접 체험한 것이다. 이날 지진은 지난 1월 30일 경북 상주에서 발생한 지진(규모 3.2) 이후 올해 들어 두 번째로 강한 지진으로 기록됐다.

지진 발생 시 행동 요령.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지진 발생 시 행동 요령.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이날 해남 주민들은 영문을 몰라 잠에서 깬 뒤 기상청의 긴급재난문자를 보고서야 지진이 발생한 사실을 알았다. 주민 정선기(58)씨는 “한밤중에 ‘쾅’ 하는 굉음과 집안 전체가 흔들리는 것에 놀라 잠에서 깼는데, 2~3분 뒤 지진이 났다는 문자메시지가 왔다”고 했다.

난생처음 겪는 지진 여파에 밤잠을 설친 주민도 많았다. 주민 박모(34)씨는 “잠자리에 누웠는데 땅속에서 뭔가 폭파되는 것 같은 소리가 났다”며 “‘쿵’하는 굉음 소리가 들린 후로는 ‘우우는’ 떠는소리와 함께 강한 진동이 느껴졌다”고 말했다.

지진이 반복적으로 발생한 원인이 규명되지 않고 있는 점도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통상적으로 지진은 단층이 있어야 발생하는데 해남은 아직 단층의 존재조차 확인되지 않았다. 해남은 1978년 기상청이 계기 관측을 시작한 후 단 한 차례도 지진이 발생하지 않아 단층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 이 때문에 일부 주민들 사이에선 “2017년 경북 포항 때 같은 대규모 지진이 나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최근 9일 동안에만 집중적으로 지진이 발생한 만큼 작은 규모의 지진이 향후 큰 지진으로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다.

기상청은 해남에 지진이 집중된 데다 규모(강도)도 커지는 점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기상청은 이번 지진이 발생한 진앙 주변에 실시간 임시 관측망 4개를 설치하고 원인 조사에 착수했다. 해남군도 진도군·목포시 등 인접한 지자체와 함께 지진 발생 상황에 대비하고 있다. 기상청 관계자는 “지진 분석 작업에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주민들은 지진이 발생할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경호 기자 choi.kyeong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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