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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가 불러온 탈중국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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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이상렬 기자 중앙일보 수석논설위원
이상렬 콘텐트제작 Chief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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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통화기금(IMF)이 최근 한국 경제의 올해 성장률을 -1.2%로 전망했다. 외환위기 이후 22년 만의 마이너스 성장이다. 하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 회원국 중 가장 낫다. IMF 분류상 선진국 그룹 39개국 전망치 평균 -6.1%를 압도한다. 세계 경제가 코로나19로 얼마나 무너지고 있는지, 한국의 대처가 얼마나 효과적이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코로나19 계기 탈중국화 대두 #당장의 경제적 이익만 보지말고 #공급망 리스크 감안한 전략 짜야

내년엔 사정이 좀 달라진다. 2021년 한국의 성장 전망치는 3.4%로 선진국 평균 4.5%에 못 미친다. 다른 선진국의 경우 올해 국가적 봉쇄 여파로 경제가 급락한 데 따른 ‘V’자형 반등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IMF의 전망은 앞으로 2년간 한국 경제 실적이 세계 선두권에 있을 것임을 예고한다. 그렇다고 해도 마이너스 성장은 우리 국민 모두를 괴롭힐 것이고, 안정적 일자리와 자산이 없는 취약계층은 가혹한 고통을 겪을 것이다.

바이러스야 결국 잡히겠지만, 코로나 이후 세상은 이전으로 결코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자유무역의 후퇴와 강경 보호무역의 대두, 글로벌 공급망의 파괴와 조정이 예견된다.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 경제로는 치명적인 변화다.

그 불확실성을 헤쳐나가기 위해 한국 경제가 치열하게 고민해야 할 이슈 중 하나가 탈중국화다. 세계 석학들은 서방 선진국들이 중국의 ‘지구촌 공장’ 역할을 더 이상 용인하지 않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중국에 집중해 놓은 생산기지와 부품 조달처를 중국 밖으로 옮길 것이라는 얘기다. 각국은 중국이 멈춰 서자 자국 경제까지 얼어붙는 참화를 겪었다. 중국의 불투명성도 똑똑히 봤다. ‘팍스 시니카(Pax Sinica·중국 중심의 세계 질서)’에 대한 서방의 불신은 확산일로다. 차이나머니의 자국 기업 인수합병(M&A) 차단을 비롯한 중국 견제가 서방 곳곳에서 노골화되고 있다.

서소문포럼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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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의 두 수퍼파워인 미국과 중국의 충돌은 매우 격렬해질 것이다. 4일 현재 미국의 코로나 사망자는 6만7674명. 미국의 역사를 바꿨다고 평가받는 베트남 전쟁 사망자(5만8220명)보다 훨씬 많다. 미국의 심장 뉴욕에서 시신을 보관할 공간이 부족해 트럭에 시신 수십구가 쌓여있는 사례까지 보도됐다. 미국은 코로나 충격을 절대로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3000여명이 목숨을 잃은 9·11테러 직후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통해 알카에다 등 테러 세력을 철저히 응징했다. 이번엔 미국 전역이 바이러스에 철저히 짓밟혔다. 트럼프 행정부가 코로나 확산에 대한 책임을 물어 중국에 1조 달러 규모의 징벌적 관세를 물리겠다고 하는 것은 정치적 엄포로 그치지 않을 공산이 크다. 미·중의 충돌이 격화되면 두 나라 모두를 주요 시장으로 삼는 한국 기업의 샌드위치 신세는 더 고달파진다. 어느 순간 두 나라가 우리 기업들에게 "어디 편이냐”고 선택을 강요할지 모른다.

사실 중국은 한국의 통상과 산업 전략에서 가장 어려운 변수다. 2019년 한국 무역에서 중국 수출 비중은 전체의 25.1%, 수입 비중은 21.3%로 각각 1위다. 그같은 밀접한 관계가 차이나 리스크를 높여놓았다는 사실이 이번에 확인됐다. 현대차는 코로나19 초기 중국 부품공장의 ‘와이어링 하네스’(차량 내 배선 묶음 장치) 공급이 끊기는 것만으로 전 공장을 셧다운해야 했다.

중국의 몽니는 또 어떤가. 2017년 사드 사태 때 중국은 금한령과 영업제한 등으로 롯데 등 우리 기업들에 수조 원의 피해를 입혔다. 우리 정부는 그때 우리 기업들을 보호해주지 못했다. 한국 기업들이 중국 내 공장을 빼내 옮기고 싶다고 해도 수월하게 진행될 가능성은 낮다고 봐야 한다. 자국의 일자리를 지켜야 하는 중국 당국이 ‘보이지 않는 보복’으로 우리 기업들을 괴롭힐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

중국을 대체할 생산기지가 어디냐는 점도 문제다. 탈중국과 함께 기업본국회귀(리쇼어링)가 본격화할 것이란 전망이 쏟아지지만, 우리 기업들이 국내 복귀를 택할지는 불확실하다. 2014~2018년 해외에서 국내로 돌아온 기업 수는 연평균 10.4개로 미국(482개)과 비교된다(전국경제인연합회 자료). 중국보다 훨씬 비싼 인건비, 기업가들의 의욕을 질식시키는 각종 규제, 악명 높은 노동조합의 이기주의 등이 기업들을 일찌감치 해외로 내보냈고, 지금도 그들의 복귀를 가로막고 있다.

지금 당장의 경제적 이익만 따져 손 놓고 있어선 안 될 문제가 탈중국화다. 국제질서의 충격, 지정학적 리스크, 글로벌 공급망 대전환까지 염두에 둔 경제 전략이 있어야 한다.

이상렬 콘텐트제작 Chief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