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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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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장혜수 기자 중앙일보 콘텐트제작에디터
장혜수 스포츠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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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아라 새들아 푸른 하늘을/달려라 냇물아 푸른 벌판을/오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오늘은 어린이날 우리들 세상’. 1948년 윤석중이 가사를 쓰고 윤극영이 곡을 붙인 ‘어린이날 노래’다. 가사만 봐도 경쾌한 멜로디가 머릿속에서 흐른다. 어린이날이 처음 만들어진 건 1922년이다. 기념행사는 소파 방정환 주도로 색동회가 발족한 1923년 처음 열렸다. 당시 어린이날은 5월 1일이었다. 노동절과 겹쳐 관심이 분산되자 1927년, 5월 첫째 일요일로 옮겼다. 일제는 민족의식 고취를 이유로 1937년 어린이날을 중단시켰다. 광복 이듬해인 1946년 부활했다. 그해 5월 첫째 일요일이 5일이었고, 그때부터 5월 5일로 굳어졌다. 법제화는 1961년 제정된 아동복지법 6조에서다.

어린이날 하면 선물이다. “그날에는 우선 어린이를 위하여 모든 일을 도모하는 것이 마땅할 줄 압니다. 몇 가지 본보기를 들면, 그날에는 헌것으로라도 정한 옷을 입히고, 아이의 나이와 정도에 따라 장난감이라든가, 그림책이라든가, 무엇이든지 조그마한 것이라도 선물을 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97년 전 어린이날을 앞두고 나온 신문 보도(1923년 4월 29일)다. 장난감의 경우 소소한 수공품에서 첨단 전자기기로 바뀌었지만, 크게 보면 요즘과 큰 차이 없다. 오히려 1923년 어린이날 등장한 구호가 눈길을 끈다. “욕하지 말고, 때리지 말고, 부리지 말자.” 뭔가 해주기보다 뭔가 하지 말아 달라는 외침에서 고달팠던 당시 어린이의 삶을 엿볼 수 있다.

어린이날 행사하면 청와대 초청이다. 이승만, 박정희 정권에서도 초청행사는 간혹 있었다. 대개 영부인 행사였다. 대통령 행사는 전두환이 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뒤 첫 어린이날이었던 1981년부터다. 서울시가 뽑은 300여명의 ‘모범’ 어린이가 청와대를 찾았다. 1986년에는 5월 2일에 행사를 진행한 뒤, 이를 녹화해 어린이날 당일 전국에 방송했다. 노태우 정권 들어 초청대상자는 소년소녀 가장, 낙도 어린이 등 소외계층으로 바뀌었다. 대통령에 따라 행사 디테일은 조금씩 바뀌었어도 큰 틀은 이어졌다. “대통령 할아버지는 … ”으로 시작하는 어린이 질문에, 미소 지으며 인자한 표정으로 소박하게 대답하는 지도자. 인간적 이미지를 연출하는 연례행사로 이만한 게 없기는 하다.

장혜수 스포츠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