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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율과 자율 사이…유재학은 90년대생도 움직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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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에 위치한 울산 현대모비스 훈련장의 감독실. 선수단 휴가기간에도 유 감독이 외국인선수 동영상을 보고 있다. 유 감독은 매일 출근해 오전 10시~12시, 오후 3시~5시까지 비디오를 본다. 김성룡 기자

경기도 용인시에 위치한 울산 현대모비스 훈련장의 감독실. 선수단 휴가기간에도 유 감독이 외국인선수 동영상을 보고 있다. 유 감독은 매일 출근해 오전 10시~12시, 오후 3시~5시까지 비디오를 본다. 김성룡 기자

1일 경기도 용인시에 위치한 울산 현대모비스 훈련장.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탓에 프로농구가 종료된 지 한 달이 넘었다. 코트와 사무실이 모두 깜깜한 가운데, 감독실에서 불빛이 새어 나왔다.

현대모비스 19년 이끄는 유재학 감독 #야구 김응용 기록 깬 '최장수 사령탑' #휴가 중에 홀로 출근해 비디오 분석 #아침은 함께, 사생활은 철저히 보장

유재학(57) 감독은 돋보기 안경을 쓴 채 외국인 선수 영상을 보고 있었다. 책상에 미국·스페인·호주 등 각국 리그 선수들 자료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구단 관계자는 “감독님은 매일 아침 출근해 오후 5시까지 동영상을 본다. 감독님 일과는 시즌 때와 똑같다”고 귀띔했다.

유 감독은 지난달 21일 현대모비스와 3년 재계약했다. 2023년까지 계약 기간을 채우면 유 감독은 19년 2개월 동안 같은 팀 유니폼을 입는 셈이다. 프로야구 해태를 17년 11개월(1982년 11월~2000년 10월) 동안 지휘한 김응용 감독의 재임 기간보다 길다. 유 감독은 국내 4대 프로스포츠(야구·축구·농구·배구)를 통틀어 가장 오랫동안 한 팀을 이끄는 감독으로 기록될 예정이다.

김응용 전 감독은 '국보 투수' 선동열을 일본 주니치로 떠나보낸 뒤 “우~. 동열이도 없고~”라는 유행어를 남겼다. 유 감독도 “나는 ‘동근이도 없고~’라고 해야 하나”라며 웃었다. 지난 17년 동안 6차례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합작한 가드 양동근(39)이 지난 3월 31일 은퇴했다.

만 가지 수(手)를 지녔다는 뜻에서 만수(萬手)로 불리는 유재학 감독. 김성룡 기자

만 가지 수(手)를 지녔다는 뜻에서 만수(萬手)로 불리는 유재학 감독. 김성룡 기자

유 감독이 매일 동영상을 보는 이유는 ‘양동근의 후계자’를 찾기 위해서다. 유 감독은 “프로 입단 때 동근이는 특급 선수가 아니었다. 2005년 크리스 윌리엄스를 만나 농구에 눈을 떴다. 내가 좋은 외국인 선수를 뽑으면, 가드 김국찬(24)·서명진(21)이 양동근처럼 성장할 수 있지 않겠나”라고 했다. 최근 현대모비스는 2016-17시즌 미국프로농구(NBA)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에서 활약한 숀 롱과 계약했다.

‘해태 왕조’를 만든 김응용 전 감독은 스타를 특별 대우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 ‘모비스 왕조’도 비슷하다. 유 감독은 “내가 모비스를 맡았을 때 우지원이 간판스타였다. (그를 주전에서 제외했고) 우지원이 그해 식스맨상을 받았다. 2014년 국가대표팀을 맡아 모비스를 떠난 사이, 로드 벤슨이 코치에게 대들었다는 말을 들었다. 그를 바로 내보냈다”고 말했다.

신치용(65) 진천선수촌장도 2005년부터 2015년까지 프로배구 삼성화재를 이끈 명장이다. 유 감독은 “지도자의 모범인 그분도 선수단을 타이트하게 운영했다고 들었다. 우리 팀은 16년째 아침 식사를 함께한다. 대신 난 한 번도 선수 방에 가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규율과 자율의 균형점을 찾는 것이 유 감독의 오랜 고민이었다.

1999년 대우 제우스 감독 시절 유재학. 그는 1998년 35세에 대우증권 감독을 맡았다. 2000년에는 신세기 빅스(전자랜드 전신)에서 꼴찌도 해 봤다. 그런 시절을 거쳐 지금의 명장이 됐다. [중앙포토]

1999년 대우 제우스 감독 시절 유재학. 그는 1998년 35세에 대우증권 감독을 맡았다. 2000년에는 신세기 빅스(전자랜드 전신)에서 꼴찌도 해 봤다. 그런 시절을 거쳐 지금의 명장이 됐다. [중앙포토]

1989년 농구대잔치 최우수선수(MVP)였던 그는 28세에 은퇴했다. 그는 “3차례 무릎 수술을 받았지만, 재활에 실패했다. 이듬해 연세대 코치를 맡았다. 선수 스카우트를 위해 고교 팀 감독의 가방을 들어주기도 했다. 식당에 가면 학부모의 신발을 정리했다”고 회상했다.

농구 명문 경복고·연세대 출신이지만 그는 학연에 얽매이지 않았다. 현대모비스 베스트5에 연세대 출신이 없다. 전준범은 지난 2월 상무에서 제대했다. 경복고 출신은 함지훈, 이종현 정도다. 그는 “학연에 얽매이면 오래 일하지 못한다”라고 했다.

유재학 감독은 2004년 현대모비스를 맡아 16시즌간 정규리그와 챔피언결정전을 각각 6차례 제패했다. KBL 최초 3시즌 연속 챔프전 우승을 이뤄냈고, 최초로 개인통산 600승을 달성했다. 김성룡 기자

유재학 감독은 2004년 현대모비스를 맡아 16시즌간 정규리그와 챔피언결정전을 각각 6차례 제패했다. KBL 최초 3시즌 연속 챔프전 우승을 이뤄냈고, 최초로 개인통산 600승을 달성했다. 김성룡 기자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그의 농구는 쉬지 않고 변했다. 유 감독은 수비 범위를 ㎝ 단위로 지정하는 디테일을 자랑한다. 수비 농구를 하다가 한 템포 빠른 ‘얼리 오펜스’로 전환하기도 했다. 지난해 11월 통합우승 주역이었던 이대성(30)·라건아(31)를 전주 KCC에 주고, 김국찬·김세창(23) 등 4명을 받는 트레이드를 지휘하기도 했다.

70년대생을 지도했던 유 감독은 요즘 90년대생을 가르친다. 그는 “요즘 신입사원이 퇴사할 때 엄마가 와서 대신 사표를 내기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젊은 선수들에게 옛날 방식을 강요하면 안 된다”고 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훈련장을 나오다가 김국찬을 우연히 만났다. 오프시즌인데도 그는 홀로 나와 웨이트트레이닝을 하고 있었다. 유 감독은 1996년생을 움직이는 방법도 배워가고 있었다. 그의 별명이 괜히 ‘만수(萬手·만 가지 수를 가졌다)’가 아니다.

용인=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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